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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을 용서한 다윗(삼하14: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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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압살롬을 데려오기 위한 요압의 계략을 살펴보고 있죠? 요압이 압살롬을 데려오기 위하여 계략을 짰는데, 그것은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택하여 다윗에게 거짓으로 간언을 하게 함으로, 다윗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 그 여인으로 선택된 드고아 여인은, 다윗이 압살롬을 대하는 상황을 요압이 만들어서 말하라 한 스토리로 비유하면서 다윗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죠?

    

그 내용을 보면, 그녀의 상황은 남편이 죽고 아들 둘이 있었는데, 그들이 싸워 한 아들이 또 다른 아들을 죽였고, 그 남은 한 아들도 백성들이 죽음으로 죄값을 묻겠다고 하면서 내놓으라는 처지라는 말을 통해 자신을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구원해 달라고 간청을 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망을 간 상황에서 다윗이 압살롬의 죄값을 묻겠다고 한 것과 같은 상황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여인의 청대로 그녀의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 여인이 기회를 잡아 왕에게 여쭙게 해달라고 했는데, 왕이 허락하자 13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시간 시간 관계상 읽지 못하고 바로 14절로 들어갔던 것 같은데, 다같이 13절을 읽겠습니다.

    

"여인이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같은 도모를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셨으니 왕께서 죄있는 사람같이 되심은 그 내어 쫓긴 자를 집으로 돌아오게 아니하심이니이다."

    

드디어 본심을 드러내고 있죠? 만일 다윗 당신이 지금 나의 상황을 들어준다고 한다면, 당신은 왜 압살롬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14절에서 전혀 어울리지도 않게,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하는 것처럼 이미 죽은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지는 않으시지 않느냐?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말로 다윗에게 압살롬을 불러 올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15절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읽겠습니다.

    

"이제 내가 와서 내 주 왕께 이 말씀을 여쭙는 것은 백성들이 나를 두렵게 하므로 계집종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왕께 여쭈면 혹시 종의 청하는 것을 시행하실 것이라."

    

자신의 간청에 대한 왕의 판결을 상기시키면서, 그러므로 그가 왕에게 청하는 것을 왕이 시행하실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죠?

    

16절도 마찬가지로 왕이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다윗 왕이야말로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의 산업에서 끊으려 하는 백성과는 달리 선한 판결로 자신을 위로하여 줄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은 이런 대화 중에서 요압의 계략을 눈치채고 있습니다. 다같이 19절을 읽겠습니다.

    

"왕이 가로되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 여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 왕의 사심을 가르켜 맹세하옵나니, 무릇 내 주 왕의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옮길 자가 없으리이다. 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하였고, 저가 이 모든 말을 왕의 계집 종의 입에 넣어주었사오니"

    

뭐라고 하는 것입니까? 왕은 지금 이 일에 요압이 연류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고, 이에 여인은 확실히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가 이 모든 말을 입에 넣어 주었다는 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은 이것 조차도 요압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러므로 20절은 말합니다. "이는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변하려 하여 이렇게 함이니이다.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 하니라."

    

먼저 상반절은 요압이 압살롬을 데려오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이용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하반절은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알아느냐고 하면서 역시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모르는 것이 없다고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죠?

    

요압의 사주를 받아 다윗에게 전한 말이 혹시라도 다윗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함으로, 이에 극도의 아첨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다윗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들으면 이 여인이 괜찮겠지만, 다윗이 이 여인의 요청을 안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난리가 나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21절을 읽겠습니다.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소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다윗이 드고아 여인을 통한 요압의 청을 받아들여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였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압살롬이 여전히 다윗 왕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가 아버지에게 완전히 용서를 받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용서해서가 아니라, 혈육에 대한 정과 민심을 고려하여 그를 돌아오게 하였던 것이죠.

    

그러나 결국 그렇게 용서하지 못함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되고 있습니까? 압살롬의 난이라는 것이 생겨나죠? 그래서 결국 종래는 압살롬을 잃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상황은 압살롬의 난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압살롬을 묘사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25절을 읽겠습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압살롬의 외모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빼어났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온 백성의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허영심과 교만을 부추기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미 그 외모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에 머리털의 아름다움까지도 기록하였고, 27절에 가족관계도, 특히 딸의 아름다움도 기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 그 딸 이름을 자신의 동생과 같은 다말로 지은 것은, 그가 얼마나 동생을 사랑했음을 가르쳐준다고 할 수 있고, 그러나 저자의 입장에서는 거의 잊혀질만한 다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외모를 볼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외모를 봄으로 압살롬의 난이 일어나고 끝내는 그가 죽게 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아직은 아니고, 이제 28절로 33절에서는 요압의 주선을 통해 다윗과 압살롬이 극적으로 상봉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28절로 29절을 읽겠습니다.

    

압살롬이 이태 동안을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사람을 보내어 부르되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 지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온지 얼마 동안이나 압살롬이 다윗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이태동안이란, 2년 동안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도망간지 3, 못본지 2, 도합 5년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은 아비를 간절히 보길 원했을 것이고, 그래서 자신을 데려온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사람을 보냈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감감 무소식이었다는 것입니까? 다윗이 아니라, 요압이 감감 무소식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압살롬이 요압을 만나기 위해 계책을 썼는데, 30절을 보면, 요압의 밭에 불을 놓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31절을 보면, 정말로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을 찾아와 항의를 하고 있죠? 이에 압살롬이 말합니다. 32절을 읽겠습니다.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 사람을 네게 보내어 너를 이리로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어 고하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다. 이제는 네가 나로 왕의 얼굴을 보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가하니라.”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첫째, 예루살렘으로 온지 2년이 되어도 자신의 얼굴도 보지 않으니, 차라리 그술에 있던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말이고,

    

둘째, 그러나 자신은 반드시, 아비에게 죽더라도 아비를 보길 원하니 꼭 좀 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압살롬이 자신을 죄인취급하는 다윗에 대하여 상당한 불만과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요?

    

33절을 읽겠습니다.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 말을 고하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저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결국 다윗이 압살롬을 불러 입을 맞추고 있죠? 이것은 측은히 여기고 용서하고 받아준다는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누가 압살롬으로 다윗을 만나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까? 요압이 되는 것이죠? 그 이유는 뭘까요? 이것은 앞으로 계속되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하였든 이 모든 상황은 결국 압살롬의 반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즉시 봉합하지 못하면, 그것이 곯아터져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문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더는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관계가 문제가 있다면 당장에 가서 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있다면 즉시 엎드려 회개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2813절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늘 하나님과 사람들의 은총 속에 형통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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