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다윗은 압살롬의 민심을 완전히 사로잡은 반란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의 신복들과 함께 눈물로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희망적인 소식은, 다윗이 그런 상황에서도 다시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지게 됨으로,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있다고 했었죠?
고난이 없을 때에도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지만, 그러나 고난의 때에 만큼, 우리의 삶이 온전한 회개와 온전한 회복으로 이끌 수 있는 때는 없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은 다윗의 편이 되셔서 다윗에게 지혜를 허락하시고, 모든 상황을 다윗에게로 유리하게 이끄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무려 9년을 준비하여 성공한 압살롬의 반란이 이같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어떤 지혜와 상황들을 주시며, 그를 도우시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4절을 읽겠습니다.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지금은 무엇을 말해주려 하고 있는 것입니까?
다윗이 예루살렘을 빠져나올 때, 하나님의 언약궤도 빠져나왔고, 사독과 아비아달 대제사장을 비롯한 모든 레위 사람도 빠져나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아마 이들은 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왜냐? 다윗이 그 언약궤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실 그 언약궤 하나를 위하여 성전을 지으려 했던 것이죠? 그렇다면, 왜 다윗이 그 언약궤를 그렇게나 소중히 여겼겠습니까?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죠?
그러므로 시편을 보면, 그의 평생의 소원이 여호와의 전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사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그저 나무 상자 하나로 만족하겠다는 소박한 소원같죠? 그러나 이 소원이 다윗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그에게 다윗언약이라는 놀라운 축복을 영원토록 주시는 인간사에 전무후무한 엄청난 축복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열심'이 인간역사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에게 누구보다도 뛰어난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범죄하여 징계를 받는다 하여도, 그가 고난 가운데 완전히 돌이켰을 때, 놀라운 지혜를 주시는데, 그 다음 25절에 그 첫 번째 지혜가 나오고 있습니다. 읽겠습니다.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게나 하나님의 궤를 사랑하는 다윗이, 그 궤를 자신들과 함께 가게 하지 않고, 다시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메어가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그 궤가 나왔다는 것은, 처음에는 다윗이 그 궤를 가져나올 것을 명령하거나 인정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이 지금 이렇게 그 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물론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나만 고생하면 됐지, 하나님의 궤까지 고생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압살롬이 그 궤를 해할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궤와 대제사장들이 다윗에게 있다면, 사실 다윗에게 더 유익한 일인 것이죠? 그러나 다윗은 지금 그것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26절로 27절, 그리고 29절을 보면, 결국 사독이 다윗의 명령에 따라 두 아들과 함께 그 궤를 가지고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28절을 보면, 왜 다윗이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읽겠습니다.
"너희에게서 내게 고하는 기별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룻터에서 기다리리라."
무엇 때문에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보낸 것입니까? 사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 것은 하나의 구실이었죠?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독과 그의 아들들을 정탐꾼으로 심어놓으려 했다는 것이죠?
여기 광야 나룻터라는 말은, 요단강과 사해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기다리다가 만일 사태가 위협적인 상황이 되면, 바로 요단동편으로 도피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에, 다윗은 이곳에서 예루살렘에 심어놓은 정탐꾼들로부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대제사장이냐? 그것은 아마도 그라야만이 더 높은 고위층이나 지도자의 말들을 들을 수가 있고, 또한 상황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감람산길을 백성들과 함께 올라갈 때에 더 기가막힌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1절을 읽겠습니다. "혹이 다윗에게 고하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강누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무슨 소식입니까? 지난 시간에도 소개시켜드렸지만, 하나님께 물은 받은 것과 일반인 지혜를 발휘하는 아히도벨이 바로 지금 압살롬과 함께 있다는 소식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반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라고 한 것을 보면, 그의 모략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뛰어난 것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이제 어찌할 것인가? 그들은 군사들도 더 많았고, 거기에 가장 완벽하고도 뛰어난 모략가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닌가? 어떻습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아무리 모든 것이 불리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줄 믿습니다.
바로 이 때 앞으로 이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후새가 등장하고 있죠?
32절을 보면,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무릅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고 했는데, 이 후새는 팔레스타인 원주민이면서, 다윗의 친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위험한 상황에서 감람산 꼭대기까지 다윗을 찾아왔던 거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여기서 기발한 지혜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33절에서는 네가 지금 나와 함께 가면 너도 망한다고 하면서 말합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네가 만일 성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이왕에는 왕의 부친의 종이었더니, 내가 이제는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무엇을 말합니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의 편인척 하면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후새가 무엇인데,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이방인이었고, 따라서 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정권에 따라 충분히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할 수 있다고 판단될 수 있는 자였습니다.
게다가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그도 아주 뛰어난 지략가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누구를 더 믿었기 때문에 후새에게 이런 일을 시키고 있었을까요?
하나님이신 것이죠? 그가 신앙적으로 온전히 회복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도움이 바로 자신의 편에 있음을 확신하였을 것이고, 그러므로 후새가 왔을 때, 그를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으로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는 대로 그에게 일어주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지금 예루살렘에는 사독과 그의 아들들, 35절을 보면, 아비아달도 거기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쉽게 빨리 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의 연락망이 이미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었던 것이죠?
결국 후새는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게 되고, 때를 맞춰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다음은 내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다윗의 계산대로 후새의 모략이 아히도벨의 무략을 무력화시킴으로 결국 다윗이 승리하고 압살롬이 패하고 죽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승리는 인간의 형편과 지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에 달려 있는 줄 믿습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회개를 통하여 온전한 회복을 누림으로,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도우심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는 시편 118편 6절로 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편이 되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하나님의 도우심이 항상 여러분을 떠나지 않아 항상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