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궁 논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시켜 자신의 혈족인 유다지파가 이 일에 적극 나서 줄 것을 당부하였고, 이에 압살롬의 난 때 그들과 함께 다윗을 대적했던 군대장관 아마사를 오히려 자신의 군장으로 삼을 것을 약속함으로, 유다지파가 다윗에게 환궁기별을 보내 마침내 다윗이 환궁길에 오르고 유다지파는 길갈로 다윗을 맞으러 나갔던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다윗의 환궁길에 일어났던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16절을 읽겠습니다.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려 내려 올 때에"
유다지파만 나온 자리에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급히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뭔가 찜찜한 것이 있기 때문이죠? 뭡니까?
지난 번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도망을 갈 때 쫓아가며 돌을 던지며 저주를 했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제 그는 죽을까봐 겁이 나서 이렇게 비굴하게 나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나가지 않고 수많은 베냐민 사람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베냐민 사람 일천명이 저와 함께 하고 사울의 사환 시바도 그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으로 더불어 저와 함께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누구도 나오고 있습니까?
무려 천명이나 동원하고 있죠? 다 지도급으로 봅니다. 또 시바도 나왔다고 했는데, 시바가 누구입니까? 지난 번 다윗이 도망 갈 때, 그 시바가 모시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반역을 일으켰다고 해서 그의 재산을 빼았었던 자였죠?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마음에 찔리는 자들이 먼저 자진해서 나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8절을 보면, 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우리 말 성경을 보면, 나룻배가 건너가고 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렸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잘 안 되죠? 그런데 영어성경(NIV)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They crossed at the ford to take the king's household over and to do whatever he wished. When Shimei son of Gera crossed the Jordan, he fell prostrate before the king"
'prostrate' 이란 말은 바닥에 엎드려 몸을 가누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므이가 다윗이 요단을 건너기 전에 먼저 배를 타고 요단을 건너가 다윗 앞에 엎드렸다는 것이죠? 그는 너무나도 겁이 난 나머지 아주 다급하게 달려나와 직접 먼저 요단강까지 건너면서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다 계산이 있던 것입니다. 왜냐? 사실 당시 상황에서 다윗이 요단을 건너기 전에 베냐민의 실력자인 시므이를 처단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칫 베냐민 사람들의 반발로 이스라엘 전체에 반 다윗 정서가 생겨나서 다윗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었죠? 더군다나 지금 다윗이 길갈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은 베냐민 지파의 길이었고, 그곳에만 1000명이 나와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사실 위험부담이 많은 것이죠? 시므이는 이런 것들을 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죄를 고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20절을 읽겠습니다.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는 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여기 요셉의 온 족속은 사실 누구입니까? 에브라임과 므낫세이죠? 그런데 왜 베냐민지파인 시므이가 이런 말을 할까요? 이것은 당시 요셉지파라는 말이 유다 북쪽에 위치한 여러 지파들을 모두 지칭하던 포괄적인 의미로 쓰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쪽은 유다, 북쪽은 한마디로 요셉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북쪽 요셉 가운데 시므이가 가장 먼저 나왔다는 말을 합니다. 뭡니까? 다윗을 환궁시키려고 했던 시므이가 북쪽 이스라엘의 대표로 나왔다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 같습니까? 21절을 읽겠습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그냥 읽으면 아비새가 다윗에게 속삭인 것 같지만, 여기 대답했다는 말은, 사막에서 맹수가 부르짖는다는 표현을 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비새는 시므이의 말을 듣자마자 아주 흥분하여 시므이를 죽여야만 한다고 큰소리로 외쳤던 것이죠. 시므이도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시므이는 여호와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저주하였기에 응당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22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무슨 말입니까? 사실은 표현이 그래서 그렇지 다윗은 지금 자신의 뜻은 아비새의 뜻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다윗이 그들과 상관이 없다는 말은, 그들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뜻이 그들의 뜻과 다른 것을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이라고들 해석합니다.
그리고 타이르듯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는 말은, 뭔가 이유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시므이의 책략을 다윗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므로 시므이 처단문제가 자신의 왕권을 도로 찾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눈치챘던 다윗은 결국 시므이를 처단하지 않고 용서해 주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역시 지혜로운 사람이었음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즈음 므비보셋이 등장하여 왕을 맞고 있습니다. 그를 모함했던 시바가 와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입니까?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까, 말이 아닙니다. 수염도 깍지 않고 옷도 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다윗의 안위를 염려해서였겠죠?
이런 행위는 극한 슬픔과 고통 중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죠? 다윗은 오히려 시바의 모함으로 인해 그가 죄책감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25절에서 묻습니다.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그러자 므비보셋이 대답합니다. 26절과 27절을 읽겠습니다.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어떻습니까? 므비보셋이 시바가 한 일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죠? 므비보셋이 보고하고 있는 이런 시바의 참소행위는 율법에 의하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중대한 범죄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므비보셋은 왕이 하나님의 사자와 같다고 하면서 왕의 처분대로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뻔한 처벌이 있겠지만, 그래도 다윗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모습을 통해 다윗을 더 신뢰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28절은 자신에게 베푼 다윗의 은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떤 처벌을 내릴까요? 29절을 읽겠습니다.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이것은 또 무슨 말일까요?
므비보셋의 말을 들은 다윗이 좀 화가 났죠? 공동번역을 보면, '무슨 말이 그리도 많소?"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시바를 징계하는 일에 부담을 느낀 다윗의 곤혹스러움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실 지금 다윗이 시므이나 시바를 처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다윗이 지금 시므이나 시바가 죽는다면, 다른 유다지파나 다윗을 대적했던 모든 이스라엘은 당연히 다윗이 자기들도 죽일 것이라 생각할 것이죠? 그러므로 오히려 시바와 밭을 나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잘한 결정입니까? 잘못된 결정입니까?
사실은 잘못된 결정이죠? 그러나 지혜롭지 못하다고는 볼 수 없죠. 그렇지만, 므비보셋은 왕께 고하여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시바로 전부를 차지하게 하소서 라고 말함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자신은 다윗이 자신의 무죄를 알아준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 말은 다윗의 판결이 결코 정당하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지혜롭지 못했던 자는 누구였겠습니까? 사실 므비보셋이었죠? 그는 정황상 다윗이 자신을 부를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는 편이 오히려 더 나았던 것이죠?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아비새의 분별없는 정의감이나 므비보셋의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하소연이 아니라, 결국 잠잠히 기다리는 가운데 보다 원시안적인 판단으로 모든 사람을 포용했던 다윗의 지혜인 것이죠? 결국 그는 이런 판단들 때문에,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게 왕권을 유지하다가 세상을 떠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6절은,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 삶의 모든 어려운 일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맡기고 여러분은 지혜로운 길을 택하실 수 있게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