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아기스 왕으로 인한 이스라엘과의 전쟁 참여의 위기에서 벗어나 시글락으로 돌아온 다윗의 일행은 지난 시간, 또 다시 아말렉으로 인하여 성을 불타고 가족들이 모두 다 붙잡혀 가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로 인하여 돌을 맞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거기서 실망치 않고 에봇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묻고 응답을 받아 아말렉을 추격하게 되었는데, 바로 여기 하나님의 응답이 현재 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울과 다른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그는 아말렉을 무찌르고 다시 가족들을 되찾아 올 것인가? 6백명 가운데 2백명은 피곤하여 브솔 강을 건너지 못하고, 400명만 데리고 갔다고 했는데, 과연 다윗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아무리 상황이 열악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승리이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과 400명의 군사들이 아말렉을 쫓아가다가 도중에 애굽 사람 하나를 우연히 만나고 있습니다. 다같이 10절과 11절을 읽겠습니다.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우고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낮 사흘, 밤 사흘을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지금 다윗의 군사들이 다윗과 함께 아말렉을 쫓아가던 중에 사흘 낮, 사흘 밤을 먹지 못한 애굽 사람 하나를 데려다가 먹인 일을 말하고 있죠?
당연히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가난한 자, 연약한 자를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면에서보면,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저자는 왜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계속해서 13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뉘게 속하였으며 어디로서냐 가로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어떻습니까? 이 사람에게 있어서 적어도 다윗과 그 일행은 적어도 생명의 은인이 되고 있었던 것이죠?
지금 이 애굽 소년이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다는 말은, 바로 이 사람이 시글락을 쳤던 아말렉 사람들의 종이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겠고, 또 이런 자를 사흘 전에 병이 들었다고 주인이 버렸는데, 다윗의 군사들이 거두어 먹을 것을 주었다면, 이 소년이 다윗을 도와줄 가능성이 많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소년은 어떻게 다윗을 도울 수 있게 될까요? 14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멜 남방을 침로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어떻습니까? 정말 그렇죠? 바로 이 사람이 시글락을 침공했던 그 아말렉의 종이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이 사람을 만남으로 아말렉을 쫓아가 공격하는 일에 많은 유익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묻습니다. 15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에게로 인도하겠느냐 그가 가로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붙이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으로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이 군대에게로 인도하리이다.”
다윗은 그로 하여금 자신들을 아말렉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달라고 했고,
이에 그 애굽 소년은, 여기서는 용병이라고도 볼 수 있죠? 어쨌든 이 소년은 다윗에게 자신의 생명을 보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6절을 보면, 그 중간 과정은 생략이 되고, 그가 인도하여 내려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의 생명을 보호해 줄 것을 약속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곳에서 아주 좋은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탈취하였음을 인하여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여기 이들이 온 땅에 편만하였다는 말은, 이들의 숫자가 많았다는 말도 되겠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오히려 아주 무질서하게 방치된 모습을 표현한다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말렉은 이제 큰 승리를 거두었고, 또한 공격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서 굳이 전열을 정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방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먹고 마시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하여 흥청망청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죠.
결국 다윗은 숫자는 적었지만, 그들을 쉽게 쳐부술 수 있는 호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부대는 주저없이 그들을 공격합니다. 다같이 17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때까지 그들을 치매 약대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역시 다윗이 공격하니까, 약대를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명을 제외하고는 다 죽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싸웠습니까?
이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다윗의 분노가 하루를 꼬박 쉬지 않고 노략할 정도로 극에 달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그만큼 시글락의 아내들과 자녀들을 구출하는 것이 절박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이로 인해 잃어버린 가족과 재산을 도로 되찾고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되고 있습니다.
18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이 아말렉 사람의 취하였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지난 시간은 다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오늘은 다시 또 다 찾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취한 것은 다 빼앗겼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또 다시 다 그것들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19절은,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의 대소를 물론하고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다윗이 도로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것을 도로 찾았다는 의미는 그들이 잃었던 것뿐만 아니라, 아말렉이 원래 가졌던 것까지도 다 빼앗아 많은 전리품을 얻었다는 원문의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이것을 병사들 뿐만 아니라, 유다의 장로들에게까지도 전리품으로 나누어주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하나님이 회복하게 하실 때에는, 잃어버린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회복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20절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읽겠습니다.
“또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무리가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가로되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하였더라.”
어떻습니까? 지난 시간 다윗에게 돌을 던지던 모습과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지난 시간 다윗에게 돌을 던지던 이들이 이제는 오히려 전리품들을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자랑하며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회복시키시면 사람들이 우리를 자랑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병들어 버림을 받은 애굽소년을 선대한 다윗은 오히려 그로 인하여 아말렉을 치는데 큰 유익을 얻게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병든 자를 구원해서 큰 유익을 얻었지만, 아말렉은 병든 그를 버림으로 완전히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6장 35절은,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약한 자와 악한 자에게 선을 베푸심으로 하나님의 상과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성도의 과정은 실패가 있을지라도 결과는 항상 승리이며, 그러나 그 승리의 때에는 더욱 이루 말할 수 없는 회복과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즐겨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와 같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즐겨이 하심으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결과 가운데 기쁨을 누리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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