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윗의 감사찬양이 중반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중반부는 46절까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오늘 21절로 31절까지는, 여호와의 도를 행하였기에 하나님이 다윗에게 구원의 은총과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지금 무엇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다윗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말한다고 할 수 있죠?
그 까닭은 바로 다윗은 손이 깨끗한 의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사실 다윗이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지는 않으셨지만, 자세히 보면, 그가 범죄하지 않을 때에 그를 축복하셨지, 그가 범죄할 때에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징계하셨죠?
그래서 오빠가 여동생을 겁탈하는 일도 생겨났고, 동생이 형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는 일도 생겨났고, 또 세바의 난도 일어났던 것이죠?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아무리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의롭게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을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결코 믿음으로 구원 얻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지만, 그러나 그는 또한 그 안에서 행위대로 우리를 컨트롤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바로 어제 저녁 말씀드린대로, 보석과 같아야 하기 때문인 것이죠.
그러므로 그는 22절에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3절, “그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2절의 도는 ‘삶의 방식’ Way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23절의 규례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여호와의 모든 통치에 관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삶의 방식대로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대로, 그리고 그의 통치 아래 순종하는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례나 율례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의 핵심단어는 순종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시고 있습니까? 이것은 오히려 해야 할 것은 하지 않는 죄를 범죄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죠?
다윗은 수동적인 신앙생활에도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신앙생활에도 충실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찬양하며 말씀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약한 자를 돌아보며 도와주고 구제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려고 노력하기에도 게으르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 안에서 그를 대적했던 자들을 대부분 어떻게 했습니까?
사실 다 화해하고 자기편으로 삼으려 했죠? 심지어 압살롬도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압이 죽인 것이죠.
또 24절에 “내가 그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표현하는 것입니까?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철저히 자신을 절제하며 영혼을 깨끗하도록 보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거룩코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잘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죠.
그러므로 25절에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내 의대로, 그 목전에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만 깨끗하고 거룩하려고 노력했던 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관대하고 긍휼을 베풀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때마다 깨닫게 하시는 뜻에 늘 순종하고자 노력하는 삶을 삶으로, 하나님은 그대로 그를 보상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으려면, 어떤 한 가지 면에서만 거룩하거나 정직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공의와 사랑의 모든 세부적인 면에서도 다 하나님 보시기에 떳떳한 자가 되어야 함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사실 다윗도 부족한 점이 하나 있었죠? 무엇입니까? 이방인들의 피라 할지라도 피를 많이 흘렸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결국 어떤 복은 받지 못했습니까?
성전건축의 복은 받지 못했죠? 그는 평생 성전건축을 위해 엄청난 재물을 모으고도 결국 자신이 그 성전을 짓지 못하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자리를 내어 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늘 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6절을 읽겠습니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행한 모양대로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자비를 나타내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가 완전하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완전하심을 보이신다는 것이죠. 그런데 누가 그랬다는 것입니까? 다윗이 그랬다는 것이죠.
다윗은 이렇게 자기 스스로가 보아도 자비롭고 완전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27절도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고 했습니다.
깨끗한 자가 다윗이라면, 사특한 자는 다윗의 대적들이겠죠?
사특한 자란, 속이는 자, 왜곡하는 자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 마음이 항상 구부러져 있어서 늘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하나님도 그가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내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내 뜻대로 되지만, 후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다 내 뜻과는 정반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만 손해입니까? 나만 손해죠.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28절은,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고 했습니다. 무슨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사특한 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곤고한 백성이 되라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문제들 가운데서 우릴 구원해 주시는 은총을 누린다는 것이죠.
그러나 교만하여 내 뜻대로 하고자만 한다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처음에는 좀 일이 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나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잠언 16장 18절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신 것이죠.
다윗은 그 자신을 통하여 이것을 경험하고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대했던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대적들을 통하여서도 이것을 경험하고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심오한 진리를 노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등불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29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자신의 모든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맡기겠다는 뜻인 것이죠?
결국 인생의 모든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고 나니까, 주님만이 나의 등불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가 내 삶의 흑암을 밝힐 수 있다고 노래하며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한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는 암담한 흑암과 같은 현실이 항상 존재하고 있죠.
그런데 우리가 거기서 길을 찾기 위해 뭘 좀 해보려고 몸부림친다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사실 아무 것도 안 된다는 것이죠? 처음에는 길을 찾아 잘 가는 것 같지만, 그러나 조금 있으면 곧 무엇을 깨닫는다는 것입니까? “아, 잘못왔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내 상황이 이렇게나 비참한 대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오늘 다윗은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만이 나의 등불이심을 고백하며, 그저 하나님만을 따르라는 것이죠?
그래서 처음에는 험한 길도 나오고 구불구불한 길도 나오고 낭떠러지도 나오고 믿지 못할 여러 길이 나오며, 그 길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저 믿음을 가지고 따라만 가라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다윗이 그렇게 가다보니까, 도망도 가야했고, 블레셋의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척도 해야 했고, 이방 땅 블레셋에서 살아야 했고, 오래 걸리고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대로 하나님만 따라갈 때 어떻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그는 결국 그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왜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30절의 고백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성도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그래서 오직 그만 의지해서 어려움을 뚫고 나가며 그 어려움을 넘어서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그 믿음의 순간은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