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13절로 25절에서는 솔로몬이 다시 반역의 음모를 꾸민 아도니야를 숙청시킨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접근하여 솔로몬을 치켜 세우는 척 하면서, 다윗의 첩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달라 솔로몬에게 부탁해 달라 했고, 이에 밧세바는 솔로몬에게 이를 요청했지만, 솔로몬은 그 일에 분명한 왕권찬탈을 위한 음모가 있음을 즉시 알아차리고 분노하여 아도니야를 브나야에게 처단토록 했습니다.
오늘은 아도니야를 옹립시키려고 주동이 되었던 세력들에 대한 처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제사장도 있었고, 또 군대장관도 있었는데, 그렇다면, 솔로몬은 이들을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26절을 읽겠습니다.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제사장 아비아달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죽이지 않고 있죠? 아마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종이기 때문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는 부친 다윗 앞에서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부친과 함께 환난을 받은 자이기에 죽이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공로는 인정해 주고 이에 응당한 자비가 베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불이익은 주고 있습니다. 어떤 불이익입니까?
여기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는 말은, 원문에서 직역하면 '아나돗에 있는 너의 들로 돌아가라'가 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여러분, 제사장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성전인 것이죠? 제사장의 가장 큰 영광은 바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죠.
목회자의 가장 큰 영광도 역시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부교역자님들에게도 말씀을 전할 기회를 꼭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비아달은 어디로 보내지고 있습니까? '들'로 보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기 '들'이라는 것은, 가축을 사육하는 장소이죠? 이제는 제사를 집례하지 말고, 가축이나 치라는 말이 되는 것이죠.
여기 아나돗은 원래 베냐민 지파의 땅에 있지만, 이곳은 레위사람들에게 할당된 제사장 성읍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나왔는데, 그도 제사장 출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이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있던 아비아달을 제사장의 마을 아나돗, 그것도 들로 보냈다는 것은, 이제 그가 제사장으로서의 직임이 박탈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사실입니까? 이를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주의 종들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편에 서서 정치적인 게임을 해서는 안 됨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죠?
아도니야는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던 자였는데, 어찌 제사장이 이런 자를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는 말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편에 서 있던 자가 아니라, 바로 아도니야라는 인간편에 서 있었기에 결국은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28절은 이 모든 불행이 사실은 그의 조상 엘리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죠?
지난 번 사무엘상 2장을 보면, 실로에서 어느 익명의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업신여긴 죄로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이 폐하여질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는데, 이것이 응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 말씀의 성취를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윗 왕조와 관련된 것이고, 둘째는 제사장직의 일원화에 관한 것입니다.
다시 사무엘상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집안을 폐하시고 견고한 집을 다시 세우신다고 했는데, 여기 견고한 집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다윗 왕조를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호와를 의지하는 참 신앙의 다윗의 왕조를 더 견고하게 하시기 위해서 결국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엘리 집안을 폐하게 하셨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엘리는 제사장이고, 다윗은 왕인데, 어떻게 엘리의 집이 폐하여 진다고 다윗의 왕조가 더 견고해 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당시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왕은 다른 나라의 왕과는 달리 종교적으로 매우 독특하고 독점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도 여호와의 궤를 가져오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또 제사를 참여했으며, 솔로몬도 일천번제를 드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은 왕의 의미뿐만 아니라, 제사장적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결국 이런 사실이 제사장직과 왕직의 통합을 암시하여, 훗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다윗 왕조에 대한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성취요,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 일이 제사장직의 일원화를 이루며 제사장직의 비정상적인 운영을 정리하였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렇습니다.
원래 대제사장은 누구의 후손이 되어야 합니까? 아론의 후손이죠?
그런데 아론의 네 아들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가운데 나답과 아비후가 잘못된 분향사건으로 일찍 죽고 말죠?
따라서 그 후에는 셋째인 엘르아살이 형들을 대신하여 다음순서로 대제사장이 되어 봉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민수기 25장을 보면, 그 후 이스라엘이 싯딤에서 모압여인들과 간음을 했던 일이 있는데, 이때 하나님이 진노하셨을 때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함으로 여호와께서 그와 언약을 맺으사 그 후손들로 영원한 대제사장의 직분을 잇도록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이상하게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후에는 사사시대를 거치는 동안 '엘르아살과 비느하스' 계열의 대제사장 후손은 단절이 되고, 대신 막내 이다말 계열의 후손이 대제사장 직임을 수행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엘리와 오늘 아비아달이 그 이마달의 후손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정통성 측면에서 본다면, 뭔가 잘못되었죠?
그런데 그러다가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 누가 나왔느냐? 엘르아살 계열의 후손들이 다시 등장하여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때 사독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누가 대제사장직을 수행해야 하겠습니까? 사독이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전통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아비아달도 대제사장직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원체제가 된 것이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하나님은 오늘 솔로몬을 통해 아비아달을 직위해제케 함으로, 이 일을 정리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여 이제 이스라엘은 아비아달을 끝으로 아론의 막내 이다말 계열의 대제사장은 사라지고 아론의 셋째 이다말의 형,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엘르아살 계열의 사독가문만을 정통적인 대제사장으로 세우게 되는, 제사장직의 일원화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중요한 것이냐? 그것은 아무래도 먼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일이기 때문이라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훗날 이같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속역사 제사장직의 일원화는 영원히 갈리지 않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은 예수 한분이라는 대제사장직의 일원화를 위하여 결국은 이런 섭리를 역사 속에서 행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또한 사도행전 4장 12절의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는 말씀과도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비아달과 같이 사람의 편에 서는 자가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 편에 서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둘째,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경홀히 여겨서는 아니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약속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성경의 모든 축복의 약속을 나의 것으로 삼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본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셋째, 오직 예수 외에는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 예수로 인하여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심으로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고,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내려지기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