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은 아비아달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던 주동 세력 가운데 하나인, 아비아달 대제사장에 대한 처단에 대해서 살펴보았죠?
단 두 절 밖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살펴보니까, 중요한 의미들이 있었죠?
뭡니까? 가장 중요한 의미는 첫째, 엘리제사장의 집안을 정리케 하심으로 다윗의 집을 더욱 견고케 하여, 결국 왕직과 제사장직이 통합됨으로, 후대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히 성취되는 모습이라 했고,
또한 둘째, 당시 이스라엘에는 원래 대제사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아론의 막내 이다말 계열의 후손이 대제사장을 이어가는 비정상적인 전통이 생겨,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엘르아살 계열의 대제사장이 이들과 함께 대제사장직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 사건을 통하여 이것이 정리 되었다 했죠?
그래서 이제는 두 대제사장이 아닌, 하나의 대제사장, 그래서 이것이 구속역사에 있어서 영원히 갈리지 않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성취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려 했던 주동세력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가장 요주의 인물인 군대장관 요압을 처단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같이 28절을 읽겠습니다.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
지난 시간 아도니야의 숙청사건은 두 절 밖에는 기록이 안 됐는데, 여기 요압에 관해서는 35절까지 기록되며, 그 처형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숙청작업에 대한 동기보다는 정당한 방법과 과정으로 숙청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여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 비해 요압에 대한 숙청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고, 또한 이것을 독자들에게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죠?
왜 그랬을까요? 그는 다윗 왕 시절부터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사실 따지고보면, 요압은 군대장관으로 군부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이 요압의 처리를 그의 형 아도니야와 제사장 아비아달의 뒤로 미루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하였겠느냐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학자들은 아마도 지금 이렇게 요압을 가장 늦게 처단하는데도 요압이 군대를 일으키거나 반란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것은, 이미 솔로몬의 세력이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뭘 알 수 있습니까? 그의 세력을 처단하는 일은 이미 군부가 장악되었기 때문에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러나 그 요압이라는 인물만을 본다면 어떻습니까? 여전히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죠.
그래서 솔로몬은 먼저 아도니야를 처단하고 그 다음 아비아달을 처단한 다음, 그 요압의 가장 중요한 세력과 명분을 완전히 다 잃게 한 후에, 그를 궁지로 내 몰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아주 지혜롭죠?
결국 그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28절을 보면, 그 스스로가 아도니야와 아비아달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요압은 스스로가 도망하고 있죠? 전혀 자신이 힘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이미 안 되었음을 알 수 있죠? 그런데 왜 장막으로 도망가 단 뿔을 잡았을까요?
그는 아도니야와 같이 살고 싶었기 때문이죠? 물론 성막은 도피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도니야가 단뿔을 붙잡음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요압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29절을 보면 어떻습니까?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로되 너는 가서 저를 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단 뿔을 붙잡은 아도니야는 용서하고 요압은 용서치 않았을까요?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아도니야는 그때 당시만이라도 진실로 회개하기 위해 단뿔을 붙잡았었지만, 요압은 아니다. 요압은 아도니야가 이를 통해 죄용서받았던 사실을 알고 단지 죄에 대한 징계를 피하려고만 단 뿔을 붙잡은 것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단지 죄에 대한 징계를 피하려고 교회에 나와 회개하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할 때마다 진실로 회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은 또한 제단 뿔을 붙잡음으로 매우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단뿔을 붙잡음으로 그는 자신의 죄를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어떻게 처리되고 있습니까? 30절을 읽겠습니다.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저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고하여 가로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요압은 스스로가 제단에서 죽겠다고 말하고 있죠? 그렇다면 솔로몬은 어떻게 할까요?
31절을 보면, “왕이 이르되 저의 말과 같이 하여 저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부친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브나야에게 제단까지 들어가서 요압을 죽이라는 것이죠? 왜요? 만일 율법의 규정대로라면 죄인을 성막 밖으로 끌어내어 처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압이 나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결국 그를 강제로 끌고 나오는 일을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사실은 요압이 솔로몬이 성소에서 자신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솔로몬은 성소에서 요압을 처단하기로 결정한 것인데, 가장 큰 명분은 무엇일까요?
그는 지금 요압을 처단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을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거룩한 일로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제단은 회개하지 않는 악한 살인자까지 보해주는 도피처는 아님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나와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여도 여전히 범죄하고 교회를 유혹하여 세상 죄악가운데로 빠뜨려 버린다면, 하나님은 그가 교회 안에 있다 하더라도 가만 놔두지 않으신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이지, 회개하지 않는 회개자를 용서하시는 분은 아니시라는 것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라는 것이죠.
사실 요압의 죄는 이미 다윗 왕 시절에 본문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가 까닭없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기 때문에, 그때 처단되었어야 했습니다.
율법을 보면, 고의로 살인한 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과 피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고, 훗날 알았지만, 왕국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살려두었지만, 그렇다고 그 죄가 없어지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철저히 회개하여 돌이킨 모습도 없고, 오히려 끝까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범하게 되었고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서만 제단 뿔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는 이제 솔로몬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는 심판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솔로몬의 처형방식은 그의 지혜로움을 나타내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정왕국을 더욱 견고케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2절로 33절에서 요압의 죄와 저주를 선포하고 다윗 왕조의 영원한 평강을 기원한 솔로몬은, 34절에서 브나야가 자신의 말대로 요압을 쳐죽이자, 이제는 그를 군대장관으로 삼고 또 사독을 단독 대제사장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아도니야의 사건으로 왕국은 혼란 가운데 있었고, 솔로몬은 왕위를 이어받지 못할 위기가운데 있었지만, 오히려 문제가 표면으로 들어나 솔로몬을 위기 가운데로 몰아감으로 사실은 솔로몬의 왕위즉위식을 더 빨리 할 수 있었고, 또한 그의 통치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는 아도니야와 그의 강력한 추종세력들을 완전히 제거하게 함으로, 처음부터 그의 통치기반을 아주 든든히 다져놓게 하였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닥쳐오는 어떤 위기도, 우리가 하나님 안에만 있다면, 결국은 그 위기가 우리를 더욱 깨끗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유익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만 믿고 그만 바라며, 그의 뜻을 헤아려 그의 섭리에 순종하시기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25장 5절은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