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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워싱턴메시야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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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막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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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까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네 개의 비유가 나왔고, 오늘부터는 네 개의 이적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광풍을 잔잔케 하신 이적, 군대귀신축사이적, 혈루증 앓는 여인치유이적, 야이로의 딸 소생 이적 등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이 네 개의 연속되는 이적의 주제는 무엇인가? 여기 네 개의 이적 기사에서는 모두 '믿음'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1006030배 결실하는 하나님 나라, 또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셔서, 겨자씨와 같은 적은 것이 큰 나무를 이룰 정도의 위대한 나라로 발전하는 하나님 나라는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바로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진정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는 자연까지도 호령하시는 예수님이 나오고 있고, 거라사의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신 사건에서는,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또 군대 귀신들린 자의 사건에서는 예수님이 말씀 한마디로 군대 귀신을 제어하시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영적 세계까지도 다스리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가는 지금 이런 사실들을 이렇게 밝히고 있는가?

    

그것은 직접적으로는 당시 로마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소망과 확신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로마로부터 당하는 엄청난 핍박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믿는 복음의 진리는 반드시 당시 로마를 넘어 엄청나게 위대한 하나님 나라를 만들게 될 것이며, 또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중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귀신과 자연까지도 호령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소식을 접한 이들은 분명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믿음으로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35절을 읽겠습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마치 모든 일들이 한 날에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본문의 사건이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사건 이후에 나오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날이 저물도록 사역을 하시고도 쉬지 않으시고 다시 새로운 사역을 위해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시고 계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저편으로 가셨는데, 여기서 저편은 어느 편이냐?

    

방금 사역을 하셨던 가버나움에서 반대편이라 할 수 있는 거라사 지방입니다. 5장에 여기서 군대귀신을 내쫓는 사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배를 타시고 멀리 가셨음을 알 수 있는데, 36절을 보면,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왜 따라갔을까요?

    

이들은 분명 지난 번 예수님께 오직 치유와 기적에 대한 기대만을 가지고 왔다가 오히려 예수님이 난해한 비유만 말씀하시자 실망하고 돌아선 '큰 무리'와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는 열둘이었지만,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사람들은 많았다고 하죠?

    

그래서 70인 제자설도 나오고, 또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만도 5백명이 넘고, 마가의 다락방에 남아 있던 사람들만도 120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큰 일이 났습니다. 37절을 읽겠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NASB에서는 big storm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무려 200미터 이상이 낮고 주변 사방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 쌓여 있어서 자주 갑자기 큰 돌풍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특히 밤에는 북쪽 헬몬산에서 아래쪽 요단 계곡 방향으로 이상 기류가 흘러 바람이 낮은 갈릴리 바다로 떨어지듯 불어 닥쳐, 큰 파도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나 야고보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들은 오직 예수님의 명령에 의지하여 배를 띄웠던 것인데, 지금 이런 돌발적인 상황이 현실로 닥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같이 38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평안하게 잠드신 예수님의 모습은 두려움에 질린 채로 깨어 있는 제자들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죠?

 

사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모습의 차이인 것이죠? 그리고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절대신뢰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일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깨웠지만,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깨워 예수님께 요청했다는 말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어려움 중에 먼저 예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말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내용을 보자면 어떻습니까? 마치 원망하는 것 같죠? 그렇다면, 우리 주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39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어떻게 하시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곧바로 바람을 꾸짖으시고 계시죠?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어려움을 먼저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죠?

    

그리고 여기 꾸짖으시다는 말의 헬라어는 복음서에서 다섯 번 사용되었습니다.

    

8장에서 십자가 사역을 막으려는 베드로를 향하여 꾸짖으셨다고 했고, 1장과 9장에서 귀신을 향하여 꾸짖으셨다고 했고, 누가복음 4장에서 열병에 대해서 꾸으셨다고 했고, 그리고 본문에서 바람을 향해 꾸짖으셨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나타내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인간과 영계와 자연계와 심지어는 질병에 대해서까지도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인 것이죠?

    

이것은 감정의 폭발이 아닌, 일종의 권위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어떤 것이라도 꾸짖으실 수 있는 놀라운 권세를 지니신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잠하라. 고요하라' 이 표현은 헬라문학의 이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을 제압하는 문구로 자주 사용되었던 표현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폭풍의 기세를 단지 말씀 한 마디로 제압하시고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놀랍죠?

    

그러나 또한 이제 제자들을 향하여서는 책망하시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다같이 40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여기서 '믿음'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죠? 풍랑 가운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셨다는 것입니까? '믿음'이라는 것이죠?

    

아무리 풍랑이 몰아쳐 배가 뒤집어 물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은 여전히 그 예수님을 믿고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니죠?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여 믿음이 있다고 해서 기도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제자들의 믿음이 없다는 말은 무엇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었을까요?

    

그것은 이들이 바람을 보고 무서워했다는 사실이겠죠? 사실 이들이 바람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누구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시죠?

    

그러므로 예수님을 깨웠다 하더라도 어떻게 했어야 했다는 것입니까? 오직 믿음으로 간구했어야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바람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 예수님보다 바람을 더 무서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잠에서 깨시자마자 그 바람을 한마디로 꾸짖어 잠잠케 하셨으며, 이로써 과연 이들이 누굴 더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무지한 제자들에게, 바른 지식과 믿음을 확실히 심어주시기 위하셨던 것이죠?

    

그러므로 결국 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 41절을 읽겠습니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역시 예수님이 의도하셨던 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죠?

    

이로써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무리들은,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는 일 뿐만 아니라, 바람까지도 호령하시는 놀라운 분이심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고, 급기야 후에는 이런 모든 경험들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미 이러한 사실들을 다 알고 있죠?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일어난다하더라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닥친다 하더라도, 오직 믿음으로 주님께 간구하심으로, 늘 평안가운데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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