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말세의 징조들과 성도들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세 시간에 걸쳐 살펴보았는데, 첫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말세에 어떤 환난이 닥쳐와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 그러면 성령이 말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죠?
그리고 둘째 시간에는 예루살렘 멸망과 관련하여 특별히 환난의 때에는 도망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거짓 그리스도와 적 그리스도가 등장한다는 말씀과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이적과 기사로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셋째 시간에는 종말에 일어날 현상에 대해서 말씀했는데, 태양과 달이 빛을 잃고 별들도 떨어지며, 그 때 예수님이 구름타고 재림하신다고 했고, 천사들은 사방에서 택한 성도를 모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기에 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무화과나무의 생장변화원리를 통해 종말의 때를 가늠하라는 말씀이셨고,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세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본문, 어제 다 못한 나머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30절은, 원래 이렇게 번역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기 전에 이 세대가 결코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이 세대란 무슨 의미가 되는 것입니까? 무화과 나무가 성장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말세의 징조가 다 나타나고 이루어지는 기간을 말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지난 시간도 말씀드렸지만, 이것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기 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해석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때입니까? 어떤 때가 종말의 때라는 것을 더 강조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종말에 나타날 현상들에 대해 더 강조하시는 것입니까?
오히려 때가 아닌 그 현상들인 것이죠? 그러므로 31절은, 말씀합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명심해야 할 것은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32절에도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역시 다시 강조하시고 계시죠? 때는 오직 성부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내 말을 명심하라. 역시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신 것들을 명심하라고 하심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면, 그렇다면, 삼위일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본문의 강조점이 어디있는지를 먼저 잘 봐야 합니다.
강조점이 어디있습니까? 그 날과 그 때를 알려고 하지 말라는 데에 있는 것이죠?
예수님은 바로 이런 것을 강조하시는 측면에서 이런 표현을 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0장 30절을 보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한다면, 성부께서 아시는 일을 성자가 모르신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예수님은 삼위의 측면에서 사역의 질서와 기능의 구분을 더 하셔서, 그 날과 때를 알려고 하지 말라는 점을 강조하시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종말의 시기에 대해서는 결코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주님의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괜히 종말의 시기를 알려고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무슨 환상을 보려하거나 보았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이 우리 주님 뜻에 합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아니죠?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코 이런 일들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3절도 말씀합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를 알아, 그 때에 맞춰 더 깨어있으려는 자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깨어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비유를 하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주인이 타국으로 갔다는 말은, 예수님의 승천을 비유하고 있죠? 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었다는 말씀은 뭡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권능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더불어 각각 사무를 맡겼다는 말씀도,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전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바로, 제자들의 맡겨진 사무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다같이 35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렇다면, 깨어 있으라는 의미는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주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언제 올는지 라고 하고는, 네 가지 때를 말하는데, 어떻습니까?
다 언제입니까? 밤시간이죠? 이것은 로마인들의 시간기준과 동일한 사경입니다.
마가복음은 주로 로마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인이 오는 시각을 저녁이나 한 밤중이나 아주 새벽이나 새벽으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구절이 떠오릅니까? 데살로니가전서나 계시록이나 베드로후서에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라고 하신 구절들이 떠오르죠?
그러므로 36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주님이 오셨을 때, 자고 있으면 안 된다. 분명 책망하신다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죠?
‘홀연히 와서’라는 말은, ‘뜻밖에 불쑥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때에, 저녁이나 밤중이라도 생각하지 못한 때에 불쑥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언제나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7절은 말씀합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우리 주님이 오시더라도 주님을 어서 오시옵소서 하고 맞이할 수 있는, 준비된 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준비된 자들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둠에 있지 말고, 빛 가운데 행하라는 말인 것이죠? 빛 가운데로 행하는 자만이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여러분은 빛 가운데로만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오늘 주님이 오시더라도,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