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우리는 다윗이 이제 왕으로 영원한 왕도가 될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은 천혜의 요새라 당시 그곳을 정복하고 있던 여부스 족속이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그곳을 침략해 오는 자들을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던 것처럼, 예루살렘의 공략은 힘든 것이었지만, 그러나 다윗은 지혜로왔고, 강했고, 또한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이런 다윗의 모습이 마치 예수님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을 상고해 보았는데, 누가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아기가 자라매 강하여지며,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다윗과 같이,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늘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계속해서 강성해져만 가는 다윗의 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11절을 읽겠습니다.
“두로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저희가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두로는 레바논과 이스라엘에서 약 24km 동북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페니키아의 유명한 도시입니다.
예수님도 이곳에 가신 적이 있는데, 그 때 가나안 여인의 독실한 신앙을 보시고 그 딸에 들린 악령을 쫓아주셨었죠?
이 두로라는 이름의 뜻은 바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강했다는 것이겠죠?
또 지중해 연안 좋은 위치에 있을 만큼, 이곳은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로왕은 부와 영향력에 있어서는 당시 사람들에게 아주 잘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왕이 다윗에게 이런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 다윗의 집을 짓게 했다는 것은, 다윗이 얼마나 지금 외부적으로도 인정을 받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메시야도 다른 외부사람들이 이렇게 우릴 도와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인 줄 믿습니다.
12절은 이 이유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읽겠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아니라.”
하나님이 높여주시고 축복해 주시니까, 이방인들도 알고 이렇게 축하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13절은 좀 민망스러울 정도로 그가 아들과 딸들을 더 많이 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도 역시 당시 자손번식이 큰 축복가운데 하나였으니까,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첩들을 더 많이 취하였다는 사실에서 불길한 징조가 보이죠? 어찌하였든 물질적으로는 그렇게나 흥왕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14절로 16절에서 솔로몬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것은 다윗의 생애 전체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죠?
어찌하였든 이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진 후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더 놀라운 축복을 받고 있었음을 전제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이것이 이후에 기록되는 다윗스토리의 주제라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동안 다윗과 친분관계에 있던 블레셋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자신들의 허락도 없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을 그만 보고만 있을 것인가?
다같이 17절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해처로 나가니라.”
대부분의 역사가들과 주석가들은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 블레셋과의 전투가 실제로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사건 이전에 있었던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17절로 25절의 사건은 이 앞의 예루살렘 점령사건보다도 더 먼저 나왔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였든 블레셋이 전에 다윗이 사울의 적이 되었을 때에는 죽이려 하지 않았다가, 이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고 하니까, 그를 죽이려고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다윗은 요해처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여기 요해처는 어디인가? 사실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많은 학자들이 추측하기로는 아둘람 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길이가 5킬로미터 폭이 약 3킬로미터나 될 정도로 아주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넓은 지역에 블레셋이 편만하다고 한 것을 보면, 당시 얼마나 많은 블레셋 군사들이 다윗을 향하여 쳐들어왔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어찌할 것인가? 19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랆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역시 지난 번 아말렉을 쳤던 때와 같이 여호와께 묻고 있죠? 다윗은 역시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 다윗의 성공의 비결이 있음을 우리는 재차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늘 이와 같이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께 묻고 행하는 자였고, 이에 하나님은 늘 응답함으로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도 늘 하나님께 묻고 매사를 행하실 수 있는 삶이 되시기를 바라며, 또한 늘 그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와 대조적입니까? 사울과 아주 대조적이죠? 사울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사무엘도 죽자,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여 하나님 외에 다른 방법을 찾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에 다윗이 블레셋을 쳤다고 했는데, 어떻게 쳤는지 다같이 20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
어떻게 쳤다고 했습니까? 물을 흩음같이 쳤다고 했죠? 그런데 사실은 누가 그리했다는 것입니까? 바알브라심의 뜻은 흩으심의 주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인생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하면 그가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우리 앞의 모든 문제를 물을 흩음같이 싹 사라져 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했는데, 역시 다윗의 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것은 바알이라는 이름을 쓴 것처럼 우상을 쓸어버리셨다는 의미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21절을 읽겠습니다.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 종자들이 치우니라.”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우상을 가지고 전쟁에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것은 별로 이상하지가 않죠? 왜요? 이것은 이스라엘이 법궤를 가지고 나오든지, 제사장의 에봇을 가지고 나오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당시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다? 하나님과 우상과의 전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전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전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아닌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22절로 25절을 보면, 블레셋이 또 쳐들어오고 있죠? 아직도 그들이 남아 있었다는 것과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남아 있는 무리들까지도 다 치게 하심으로 아주 그들의 뿌리를 뽑아놓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치라고 하셨습니까? 22-23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온대 가라사대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번에는 다르게 하라시고 있죠? 역시 하나님의 응답은 상황맞게 지혜롭게 임함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올라가지 말라는 것은 전면전이 아니라 기습전을 하라는 말씀이고,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공격신호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곧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소리가 들리는 것을 말한다고 해석하거나, 혹은 나무의 신탁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혹은 여호와의 군대가 임하는 소리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어찌하였든 이번 전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성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임하시기만 한다면 무조건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승리하였죠?
여러분의 삶도 이와 같이 늘 하나님이 임재하심으로 승리하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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