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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가운데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사르밧과부(왕상 17장 8절로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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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엘리야의 등장과 함께 일어났던 심판의 예고와 그 심판의 기간에 베푸셨던 첫 번째 은혜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길르앗 지방 디셉이라는 동네의 촌사람 엘리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 땅에 수년간 가뭄이 올 것임을 예언하였고, 이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호하시고자 그를 멀리 그릿 시냇가로 보내시며, 거기서 물을 마시고, 또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게 하심으로 그를 지켜주셨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징계 가운데도 택한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죠?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불경기 가운데서도 충분히 하나님의 은혜면 호경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 마지막 말씀인 7절 말씀에는, 이제 그 그릿 시냇가도 물이 말랐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엘리야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8절을 보면, 또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9절에 말씀합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이제는 어느 곳으로 보내시고 있습니까? 시돈에 속한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보내시고 있죠?

 

시돈이라는 곳은, 고대 이스라엘 북쪽 지중해 연안 베니게의 상업의 중심지였고, 지중해 연안 최대의 항구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시돈은 이방지역이었고, 따라서 역시 사르밧도 이방지역이었으며, 여기 과부도 이방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르밧이란 말은, ‘염색하다는 뜻이 있는데, 그 까닭은 그 이름의 뜻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이곳이 염색 공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약 누가복음 4장에서는 이곳을 사렙다로 불렀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곳 사르밧, 혹은 사렙다가 위치한 시돈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가 다스리던 곳입니까?

 

바로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부친이 다스리던 지역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지금 이스라엘을 타락하게 만들고 있던 우상숭배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바로 이런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숭배 본거지로 보내시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갈 수 있겠습니까?

 

특히 지금 이곳으로 가는 것은 그릿 시냇가에 물이 말라서 가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물과 떡을 얻기 위하여 이곳으로 가라고 하시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왜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런 것이죠?

 

여기에는 아직 놀라운 사명을 더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종을 완벽하게 보호하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아합이나 이세벨은 지금 이렇게 우상을 혐오하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우상숭배가 만연하는 이곳 시돈 땅에 숨는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엘리야를 완벽하게 보호하시기 위해서 시돈의 사르밧으로 보내셨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인간적으로 보기에 유치하고 치사한 것 같아도, 하나님이 가라하시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해야 하고, 가라 하시면 가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다시 9절 말씀을 보면, 그냥 그곳 과부에게 가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과부에게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명령하셨음을 알 수 있는데,

 

사실 10절로 14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본문에서는 과부가 하나님으로부터 명령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죠? 지금 9절에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 과부로 엘리야를 대접하도록 섭리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아직 시기상으로 그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죠?

 

다만 그의 이성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더라도, 그의 몸과 모든 상황은 엘리야를 대접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과부를 택하셨던 것인가? 당시 부자들도, 넉넉한 사람들도, 혹은 정치적으로 권력이 있는 자들도 충분히 있었을텐데, 왜 하나님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과부에게 대접을 받게 하셨는가?

 

보안상의 문제일 것 같습니까? 아니죠? 이것은 고린도전서 127절로 31절에 있는 말씀처럼, 약한 것을 택하사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역시 어제 까마귀를 쓰신 것과 같은 이유로 과부를 택하셨던 것이죠?

 

결국 지금 여기 이 이야기는 북이스라엘에 바알숭배와 아세라 숭배를 만연시킨 시돈의 공주이세벨을 물리치시기 위하여 시돈의 과부로 하여금 엘리야를 돕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하나님은 약한 자를 더 들어 쓰시는 줄 믿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더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잘난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이 은혜 주셔도,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로만 생각하니까, 하나님이 이런 사람은 잘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약한 자, 미련한 자,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10절을 보면, 엘리야는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는 것을 보고,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마시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그 과부가 물을 가지러 갈 때에 또다시 불러 엘리야는 이번에는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과부는 순순히 엘리야의 말에 순응을 할까요?

 

하나님은 이미 과부에게 엘리야를 대접할 것을 명령하셨다고 했는데, 만일 과부가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요?

 

다같이 12절을 읽겠습니다.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어떻습니까? 지금 사르밧 과부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긍정적입니까? 부정적입니까? 부정적이죠?

 

지금 사르밧 과부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한번 먹고 죽을 만큼의 밀가루와 기름 밖에는 없다고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명령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거짓말하신 것일까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이에 엘리야는 뭐라고 말합니까? 13절을 보면, ‘두려워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그 과부와 아들을 위하여서는 아무 것도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죠?

 

그 과부와 그의 아들을 위하여서도 떡을 만들지만, 그러나 뭐라는 것입니까?

 

먼저 엘리야를 위하여 작은 조각 하나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죠?

 

여기서 밀가루가 한 움큼이라고 했으니까, 이것은 아주 적은 분량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한 사람도 겨우 먹을 듯 말 듯한 분량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적은 분량을 세 조각으로 나뉘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같이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아예, 그냥 너 다 먹어라 할 수도 있겠죠?

 

너무 작아 입에 대기도 민망할 정도의 분량이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르밧 과부는 어떻게 합니까?

 

14절에서 엘리야가 그렇게 하면, ‘여호와께서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15절에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절을 계속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어떻습니까? 우리도 이 사르밧 과부와 같이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지금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하여 엘리야 뿐 아니라, 그 과부와 아들이 함께 여러 날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더도 덜도 하지 않고, 엘리야가 그대로 시키는 대로만 했음을 알 수 있죠?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내 주관대로 스스로 알아서 지혜롭다는 대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해야 함을 또한 교훈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만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요한복음 157절은 말씀했죠?

 

이와 같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여러분의 기도응답으로 오늘도 임하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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