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다윗은 성전을 짓겠다고 한 자신에게 엄청난 축복의 언약을 내리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감사기도는 오늘본문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지난 시간 18절 하반절로 21절까지는 다윗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춘 반면, 22절로 24절에서는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22절을 읽었지만, 다시 한번 읽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러므로 주는 광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참 신이 없음이니이다.”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다윗이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유일하심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모든 이방 나라들 가운데 오직 이스라엘만이 유일하신 진정한 신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죠?
다윗에게는 이런 하나님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가 넘쳐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말은 이제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 가운데 우뚝 설 것을 감히 확신하며 노래하며 선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만이 유일한 전능자임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삶을 산다면,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축복받는 자가 될 줄 믿습니다.
일찍이 예일대에서 구약학을 가르쳤던 차일즈라는 성경신학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리켜 ‘유일신 신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정의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주밖에는 없나이다.’라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윗의 기도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23절을 읽겠습니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을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저희를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열국과 그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22절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주 외에 참신이 없음을 고백한 다윗은 이제 23절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받은 은혜와 비견할 만한 은혜를 받은 나라는 세상에 아무도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세상에 많은 신들이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나라들보다 더 복을 받은 나라가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도 가장 큰 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위대하게 된 원인을, 스스로의 힘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주의 백성’으로 선택된 것에서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이 가서 라는 말은 원문에서 복수형을 취하고 있는데, 원래 하나님이란 엘로힘은 복수형이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단수형 동사를 취하죠?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복수형을 취하고 있는 것은, 극존칭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지금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들이 하나님께서 능동적으로 친히 역사하신 결과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역사들을 하시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이 복수형은 우리에게도 이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24절을 읽겠습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을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이것은 성경전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약의 형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라든지, 레위기라든지, 에스겔을 보면,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라는 언약의 문구가 나오고 있는데, 여기서도 이런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철저하게 이런 언약의 주어를 주께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쌍방이 약속을 하는 언약의 주체는 자신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우리가 하나님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는 줄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했다고 노래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찌 죄로 물든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택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은혜베푸셔서 내 백성이 되라고 할 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택하였다면, 우리는 조석지변인지라, 언제 하나님을 버릴 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택하신 자를 버리시는 법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시편 27편을 보면,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버리시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신앙의 침체기를 맞는다 하여도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힘있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25절 이하는 미래에 그 언약을 이루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먼저 25절은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심해서 그런 것일까요?
왜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을 하셨어도, 또한 우리도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했다고 해서, 그냥 믿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매일같이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소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주시겠다고 성경에 약속하셨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성경언약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그 확실케 해달라는 내용은,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는 영원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결코 하나님을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다윗의 욕심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할 수 있죠?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런 욕심이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빼앗기지 않고자 하는 욕심, 하나님의 축복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자 하는 욕심이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만 더 의지하고 매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욕심은 하나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으로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시편 90편에도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라는 내용이 나오고 있죠? 우리도 이런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27절은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 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다윗은 더 하나님께 기도할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는 무엇을 구할까요? 다같이 29절을 읽겠습니다.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은 그의 가문이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영원히 복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영원히 주의 앞에 있는 축복을 누리길 원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특권을 누리시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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