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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 전파의 선봉장, W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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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란 세계의 기독교 교파 간의 연합기구를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N.C.C.K.)의 명의로 W.C.C.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N.C.C.K.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 구세군 대한본영,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까지 8개 교단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비록 교단 차원으로 가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8개의 교단에 소속된 목회자들 역시 W.C.C.에 대한 태도는 찬성과 반대로 확연하게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종교 다원주의에 기반을 둔 W.C.C.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W.C.C.를 지지하는 목회자들은 대체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W.C.C.를 반대하는 목회자들은 “옳은 것이 좋은 거다.”라는 신앙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관용을 빙자한 ‘타협’과 편협이라는 누명을 각오한 ‘절개’의 차이입니다.


   물론 타협을 거부하는 목회자들의 다수도 W.C.C.에 얼떨결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그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W.C.C.의 정체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두 권의 책부터 소개합니다. 먼저 소개할 책은 『W.C.C. 운동 비판』(박영호/기독교문서선교회)입니다. 이 책에서는 W.C.C.가 어째서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한 교회들의 연합기구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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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 따르면 W.C.C.의 신학적 기반은 종교다원주의이며, W.C.C.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교회통합이 아니라 모든 종교들의 통합입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기독교 역시 많은 종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기독교는 구원에 이르는 여러 가지 방법들 가운데 하나인 셈입니다. 


실제로 W.C.C.는 무속종교와 아프리카의 토착종교, 마녀들의 마술과 점성술,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까지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수용하고 있습니다. W.C.C.는 무당의 푸닥거리조차 성령의 역사로 보며 영지주의를 정당한 기독교로 승인합니다.


   W.C.C.는 선교를 복음전파를 통한 영혼구원의 사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사회복지 증진과 정치적 민주주의 구현 등을 선교의 목표로 상정합니다. W.C.C.는 이웃 사랑을 우상화하여 하나님에 대한 순종보다 앞세웁니다. W.C.C.는 하나님께서 가증한 죄악이라고 정죄하신 동성애를 오히려 지지합니다. 인권을 빙자한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척하고 하나님을 가르치려 들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이런 일을 합리화하려면 경전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려야 하는데, W.C.C.는 역사비평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의도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최덕성/본문과현장사이) 역시 W.C.C.의 위험성과 그 실체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W.C.C.가 얼마나 종교다원주의와 뉴에이지 신학에 오염되어 있는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며 실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오직 성경에 바탕을 둔 신앙고백의 일치와 진리 안에서만 연합운동의 정당성이 성립됨을 역설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W.C.C.의 총회는 실로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탈기독교화 되고 있습니다.


   19세기까지의 세계선교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수행하는 복음 전도에 초점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1948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선교협의체로 출범한 W.C.C.는 시간이 갈수록 복음전도를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암스테르담 총회(1948년)는 기독교적 고백에 입각하여 모였습니다. 


하지만 웁살라 총회(1968년)부터는 개 교회와 지역 교회의 보편성을 인류의 보편성과 관련시키면서 사회참여와 사회정의 실현을 교회의 선교과제로 천명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복음전도에 따른 영혼구원은 뒷전이며 생태, 환경, 복지 등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쟁점들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하는 나이로비 총회(제4차, 1975)부터는 본격적으로 혼합주의의 경향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뱅쿠버 총회(1983, 제5차)에서는 힌두교, 불교, 유태교, 이슬람교, 시크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석에서 연설을 들었습니다. 이 총회의 지도자들은 인디언 토템 주상을 세웠으며 신학자들은 타 종교의 예배 의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에는 바아르 선언문을 통해 종교 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천명했습니다.


   괄라룸플 대회(1990)에서는 성령님께서 온 세상에 내재해 계신다고 선언했으나 이는 성령님의 편재성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이 대회에서 성령은 ‘창조되지 않은 에너지’로 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인격성을 부인하고 단지 하나의 능력 정도로 치부하는 이런 관점은 뉴에이지 운동의 핵심적인 교리이기도 합니다.


   이듬해에 열린 캔버라 총회(1991)에서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종교 대표자들까지 초청했습니다. “오소서 성령이여”라는 주제로 회집된 캔버라 총회에는 약 2,000명의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예배, 발표, 토론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은 죽은 영들을 불러내고 그들에게 기도를 올리는 초혼제로 시작되었으며, W.C.C.는 이를 20세기의 오순절 사건으로 평가했습니다. 경악스럽게도 이 초혼제를 집행한 장본인이 한국의 정현경 교수였습니다.


  그 당시, 정현경 교수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이름이 적힌 소지를 불태운 뒤 그 재를 하늘로 뿌리며 초혼제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원혼의 음성을 못 들으면, 성령의 음성도 못 듣는다고 주장했고, 한 맺힌 영들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떠돌아다닌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명백한 이단사설로 규정된 ‘귀신론’의 내용과 진배없습니다. 조금의 흠집만 있어도 정죄를 못해서 안달인 이단사냥꾼들은 어째서 여기에 대해서는 잠잠한 것입니까? 게다가 정현경 교수는 단순히 이단사설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체 총대들이 모인 자리에서 무대에 오른 정현경은 강연을 종교적 퍼포먼스로 진행했습니다. 일단 호주 원주민 두 사람과 호주 한인교회의 청년들을 동원하여 토속 춤을 추게 했습니다. 연이어, 객석의 불이 꺼지고 호주 원주민 악사가 무대에 등장해 전통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원주민 무용수가 나와 땅을 축복하는 춤을 추었고, 한국인 풍물패가 나와 징과 괭과리를 치면서 굿판을 벌였습니다. 그런 다음, 초혼제 제단을 만들고 상, 촛대, 향, 초혼문 등을 무대 중앙에 놓았습니다.


   세팅이 완료되자, 정현경 교수는 상복을 연상케 하는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와 창호지에 쓴 영문 초혼문을 읽어 내려가면서, 한 맺힌 영들과 피조물들의 영들의 내림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한 맺힌 성령이여, 오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정현경의 초혼문 원고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소서, 우리들의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하여 이용당하고 버림 받은 검둥이 여종, 이집트 여인 하갈의 영이여, 오소서! 그의 아내 밧세바에 대한 다윗 왕의 욕정 때문에 다윗에 의하여 전쟁터로 보내져 죽임을 당한 충성스런 군인, 우리아의 영이여, 오소서! 전쟁에서 승리 한다면, 자신을 마중 나온 첫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한 아버지 입다의 믿음의 희생물이 된 그의 딸의 영이여.”


   이를 시작하여 정현경 교수는 헤롯의 군사들에 의해 살해당한 남자 아이들의 영, 잔 다르크의 영, 미녀사냥으로 화형당한 여인들의 영, 십자군 전쟁 때 희생된 사람들의 영, 식민주의 시대에 학살당한 토착민들의 영을 차례로 불러들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접신의 사술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단사설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적인 언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에서는 이에 대해 극찬하며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정상적인 크리스천이라면 과연 이런 내막을 알고서도 W.C.C.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좀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를 일독하시기 바랍니다. 방금 소개한 두 권의 책 이외에도 예총총회 총회신학원의 논문자료인 《W.C.C. 및 W.E.A.에 관하여, G.C.F.란 무엇인가?》 역시 W.C.C.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이하에서는 이 자료의 내용을 요약 ? 발췌해보았습니다.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모든 종교가 상대적이며,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기본 명제를 전제로 합니다. 이에 따르면 기독교를 믿든, 유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뭐든지 잘만 믿으면 천당도 가고 극락도 가기 때문에 구태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당위성이 사라집니다. 


천주교(로마가톨릭, Roman Catholic)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결정했습니다. 이미 그들은 불교나 원불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와 함께 의식도 진행하면서 서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W.C.C.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장하여 자유, 공전, 평화, 환경, 인권, 화합 등의 듣기는 좋지만 애매모호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정통 기독교에 반하는 反성경, 反기독, 反교회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인본주의 성경관, 세속적 구원론, 선교 무용론 등을 내세우고 있는 W.C.C.는 실로 기독교라는 이름의 정치적인 탈을 쓰고 있는 반기독교 세력입니다. W.C.C.는 심지어 이단사설이라고 불러주기도 어려울 정도로 적그리스도적인 특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W.C.C.의 신론과 기독론은 ‘종교다원주의’이고, W.C.C.의 성령론은 ‘종교혼합주의’입니다. 또한 W.C.C.는 영혼구원이 없는 사회구원만 말하고, W.C.C.는 선교무용론에 따라 선교사 철수령을 내렸으며, 성경은 단지 해방신학의 도구로 남용할 뿐입니다. 


W.C.C.는 천주교와도 적극적인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주장하는 교황의 절대무오설이나 마리아 승천설 등도 모두 인정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개신교를 연합시킨 다음 종교개혁 이후로 조금도 변한 것이 없는 천주교 속으로 함몰시키고자 합니다.

 


1. W.C.C.의 종교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이를테면, 불교, 유교, 도교, 이슬람, 샤머니즘 등에도 나름대로 구원의 빛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식입니다. 


이처럼 종교다원주의는 자연스럽게 선교무용론으로 직결됩니다. 기독교의 엔진과도 같은 대위임령이 원천봉쇄 되는 셈입니다. 천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종교다원주의를 채택했으며, W.C.C.는 제4차 총회에서 수용하고 제6차 총회에서 실제로 적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딘버러 선교대회(1910)에서 일부 사람들의 주장이 있었고, 예루살렘 선교대회(1928)에서 ‘확대된 선교’의 개념으로 종교다원주의가 배태되었습니다. 


그러나 탐바람 대회(1938)에서 헨드릭 크레머(Hendrik Kraemer)가 특수계시와 일반계시와의 불연속성을 주장함으로써 종교다원주의는 한동안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제2차 총회에서 재차 수용되었고 제6차 총회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의 채택 이후 종교 간의 대화라는 선교방법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전도를 대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W.C.C.의 종교다원주의는,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신 중심적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이 역시 종교다원주의의 한 갈래로 각 종교에서 부르는 신은 명칭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일하다는 사상입니다. 즉, ‘하나님’이나 ‘알라’나 ‘부처’나 명칭만 다를 뿐 결국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이러한 신 중심적 종교다원주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히 배제되고 하나님만 강조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핵심적인 복음 진리는 철저하게 해체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W.C.C.의 웁살라 총회(1968)는 종교다원주의의 신학적 근거가 되는 ‘사람 사이에 걸어 다니시는 하나님’의 신론과 ‘교회 밖의 그리스도’의 기독론을 수용함으로써 세속화 신학의 강조와 함께 종교다원주의의 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이웃 사랑을 철저하게 우상화함으로써 하나님 사랑조차 이 안으로 함몰시켜버린 것입니다. 밴쿠버 총회(1983)에서는 테일러(John V. Taylor)가 종교다원주의에 기초한 종교 간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드디어 선교 무용론을 펼쳤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선교를 중지하고 타종교와 대화하여 세계평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W.C.C.는 1984년, 타종교인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천주교의 입장인 《다른 종교인에 대한 교회의 태도 : 대회와 선교에 대한 반성과 방향》이라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언문을 정식으로 수용했습니다. 1989년에는 미국의 산 안토니오에서 타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선교 대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 대회에서의 최고의 이슈는 기독교와 타종교 간에 관계성이었습니다. 결국 1990년, 스위스 바아르에서 선언문을 통해 기독교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을 거부하고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선포했습니다.

 


2. W.C.C.의 기독론과 종교 간의 대화


   평신도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들까지도 W.C.C.가 강조하는 종교 간의 대화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도를 위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W.C.C.에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도를 폐기처분하고 전도 무용론을 공식적으로 채택했습니다. W.C.C.에서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란, ‘종교다원주의에 근거하여 복음전파 등의 선교를 하지 말고 세계평화와 협력을 위해서, 그리고 서로의 종교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대화하자는 것입니다. W.C.C.에 의해 전도는 개종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종교를 잘 믿게 하는 것으로 대치되었습니다.


   뉴델리 총회(1961)에서 요셉 시들러(Joseph Sittler)가 제시한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개념과 웁살라 총회(1968)에서 홀렌베거(W. Hollenweger)가 제시한 ‘교회의 담장 밖에 계시는 그리스도’라는 논문이 종교다원주의와 종교 간의 대화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우주적 그리스도’란 모든 문화와 종교에 그리스도(구원자)가 나타나는데, 유대교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고, 석가에게는 석가 그리스도로, 마호메트에게는 마호메트 그리스도로, 공자에게는 공자 그리스도로 나타난다는 이론입니다. 


교회의 담장 밖에 계신 그리스도’ 개념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담을 넘어 모든 종교에 현현한다는 이론입니다. 이는 로마가톨릭 신학자인 라너(Karl Rahner)가 제시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이와 같은 기독론의 재해석은 타종교에도 그리스도의 활동이 있기 때문에 구원이 가능하다는 종교다원주의로 귀결됩니다.


   웁살라 총회 이후 종교 간의 대화는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W.C.C.가 시작한 종교 간의 대화운동은 1967년 스리랑카의 캔디 모임을 효시로 하여 레바논의 알잘톤 회의,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인도의 낙돔 회의(1971), 레바논 회의(1972), 콜롬보 회의(1974)를 거쳐 나이로비에 이르렀습니다.


   1973년에는 토마스(M. M. Thomas)가 힌두교인은 종교를 바꾸거나 새로운 종교 공동체로 이동해 갈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그 자신의 문화 공동체로 그대로 속해 있으면서 소위, ‘기독교 힌두’(Christlicher Hindu)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77년 W.C.C. 대화국은 ‘공동체에서의 대화’라는 주제로 태국 치앙마이에서 회의를 가졌고, 대화 지침서에 “신이 타종교 안에서도 결정적으로 역사하고 있다.’는 신학적 명제를 근거로 타종교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위한 종교 간의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1983년 W.C.C.는 밴쿠버 총회에 타종교인 15명을 초청하였고, 그 중 4명은 정식으로 발표에 참여시켰습니다. 


   1989년 미국의 샌안토니오에서 타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선교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 스위스의 바아르에서는 마침내 W.C.C. 중앙위원회가 모여 타종교에 대한 선언문을 작성하여 발표했는데 이것이 그 악명 높은 ‘바아르 선언문’(Baar  Statement)입니다. 


이 선언문은 기독교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는 다는 신학적 틀에서 벗어나 포괄주의를 거쳐 종교다원주의로 나아가야 함을 강력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W.C.C.가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내는 커밍아웃 선언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 W.C.C.의 성령론과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를 근거로 종교 간의 대화를 주장하는 W.C.C.는 더 나아가 보편적인 성령을 강조합니다. W.C.C.에 논리대로라면, 성령의 역사는 온 우주에 미치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편파적으로 왜 기독교에만 역사하실 수는 없습니다. 결국 사랑의 하나님은 성령의 빛을 모든 종교에게 비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맥락에 따라 각 종교에 나타난 영적 능력과 신비현상은 동일한 성령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고 논지를 펼칩니다.


   이런 궤변에 근거하여 W.C.C.는 이슬람의 ‘수니파’나 힌두교의 ‘쿤달리니’ 집회에서 나타나는 신비적 체험이나 무당들의 영적 현상을 성령의 역사와 동일시합니다. 쉽게 말해, 이는 범신론에 기초한 혼합주의 사상으로 기독교적 상식으로는 일말의 여지도 없는 이단사설입니다. 


만약 W.C.C.가 아닌 개교회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가는 대번에 이단으로 정죄더어 교계에서 매장당할 것입니다. 개교회 목쇠자들은 쥐 잡듯이 잘도 잡는 이단사냥꾼들이 어째서 W.C.C.를 향해서는 제대로 큰 소리 한번 내지 않는지 참 의아합니다.


   정리하면, W.C.C.의 성령론은 범신론에 기초한 종교혼합주의입니다. 1928년의 예루살렘 대회는 ‘확장된 선교’ 개념을 제시하면서 조심스럽게 종교혼합주의 문을 열었습니다. 


1932년에는 대표적인 프리메이슨 가문인 록펠러 재단의 지원 하에 호킹(W. E. Hocking)이 지난 100년 동안의 선교를 조사했습니다. 그는 ‘선교의 재고’라는 보고서를 통해 종교의 보편성과 혼합절충주의를 주장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혼합절충주의는 1961년의 뉴델리 총회에서 인도 신학자 데바난단(P. Devanandan)에 의해 거듭 강조되었습니다. 그는 타종교를 성령의 창조적인 사역으로 설명함으로써 타종교의 빛을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웁살라 총회(1968)와 밴쿠버 총회(1983)를 거쳐 종교다원주의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종교다원주의는 캔버러 총회(1991)에서 보편적인 성령의 강조를 통한 종교혼합주의로 발전했습니다. 여기서 이화여대의 정현경 교수는 무속 신앙적 혼합주의의 형태를 띠면서 초혼예식(위령제)을 거행한 바 있습니다.

 


4. W.C.C.의 구원론과 사회구원


  W.C.C.에서 말하는 구원론은 전통적인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론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구원론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과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죄 사함 받고 영생하는 진리에 대한 신앙고백에 기초합니다. 


그러나 W.C.C.가 말하는 구원론은 세속화 신학과 해방신학에 근거한 정치적인 해방과 경제적 착취로부터 해방, 그리고 구조적인 악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합니다. 즉, 구원은 영적 구원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 해결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W.C.C.에서는 선교의 목적을 ‘인간화’라고 역설합니다. 


1975년의 나이로비 총회 역시 ‘정의’에 관심을 가지면서 구조적인 불의로부터 해방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영적 구원은 사회문제 해결로 대치되었습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필요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책임감을 가지고 구조적인 악과 싸워 사회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면 그것이 곧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W.C.C.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진리인 구원론을 철저하게 비틀어버렸습니다. 기독교의 본래적인 선교개념은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때로는 사회복음을 동시에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음이 영적구원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반면, W.C.C.의 선교개념은 복음전파가 아닌 사회참여를 뜻합니다. 세속화 신학에서는 사회참여와 정의실현을, 해방신학에서는 구조적인 악으로부터 해방, 경제적 착취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인종 차별로부터 해방 등을 구원이라고 설명합니다. 선교는 이러한 사회적 구원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또한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독교의 정체성은 내려놓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합니다. 즉, 대화를 통해 이룩한 세계평화가 곧 선교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W.C.C.의 선교는 복음전파가 아닌 세상문제에 대한 인간적인 해결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1973년의 방콕 대회에서는 ‘오늘의 구원’을 다루면서 선교의 목표를 ‘인간화’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빠진 W.C.C.의 선교용어를 복음주의 선교용어와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형적인 용어혼란전술이기 때문입니다.


   화란의 선교신학자 호켄 다이크(J. C. Hoekendijk)는『흩어지는 교회』(TheChurch Inside Out)를 통해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고, 웁살라 총회(1968)에서는 세속화 신학에 근거한 사회 참여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제2분과 위원회에서는 복음을 사회복음으로, 구원을 인간화의 해방으로 발표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1973년의 방콕 대회에서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오늘의 구원’을 다루면서 오늘의 구원을 ‘해방’, ‘인간화’, 그리고 ‘자기정체성’이라고 발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예수님을 해방자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의 서구선교가 제국주의 선교를 했기 때문에 피 선교지를 억압했다고 평가 하면서 선교사 철수령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공식적인 선교사 철수령은 20세기에 두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선교사 철수령은 하버드 대학의 호킹 교수에 의해서입니다. 호킹의 보고서는 사방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았으나 그의 보고서를 받은 록펠러 재단은 선교사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미 종교다원주의 사상에 심취한 상태에서 선교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결국 록펠러 재단은 선교비 지원을 중단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돌아오는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두 번째 선교사 철수령은 W.C.C. 방콕 대회의 여파 때문이었습니다. W.C.C.는 1971년 중남미의 바르바도스 섬에서 인종차별 투쟁사업 회의를 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선교사들은 종교적 가면을 쓰고서 인디언 문화를 배척하고, 인디언을 선교의 대상으로 굴복시키고 또 다른 식민주의를 자행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소위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입에서 나올 소리입니까? 이는 전형적인 안티 기독교 세력들의 논리입니다.) 결국 W.C.C.에 의해 선교사 철수령이 또다시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에게 돌아갈 선교자금은 마르크스 식 해방운동의 활동자금(무기 구입 등)으로 전용되었습니다.

 


5. W.C.C.의 성경관


  W.C.C.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역사책에 불과하고 인간이 저술한 하나의 책으로 간주합니다. W.C.C.는 곧잘 “이 세상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마치 하나님의 주권을 대단히 강조하는 척합니다. 


하지만 W.C.C.의 이러한 명제는 신본주의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 관심을 가질 것을 강조하는 바 오히려 철저한 인본주의에서 비롯되는 논리일 뿐입니다. 특히, ‘웁살라 대회에서 이러한 입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고, “세상이 선교 사업 목록을 제시한다.”는 논리에 따라 세상의 문제들을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즉, 선교사업은 성경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세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W.C.C.는 성경 역시 수많은 역사책 들 가운데 하나라는 관점에 따라 그것의 해석에 있어서 역사비평을 전면적으로 도입했습니다. 


W.C.C.에 따르면 성경 역시 인간이 저술한 하나의 역사서에 불과하기 때문에 철저한 역사적 비평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해석법에 따라 성경의 초자연적 사건들은 모조리 거부되었고 구약의 많은 사건들도 단순한 신화로 치부되었습니다. 


W.C.C. 내의 많은 자유주의 교회 지도자들은 경전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재림과 같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들도 믿지 않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그들은 성경이 가장 강력하게 성토하는 죄악 가운데 하나인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 아울러, 소돔과 고모라 기사 등 동성애를 금지하는 내용들은 아예 다루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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