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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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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이유

 

호세아10:1-8

 

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2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3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4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

5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6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7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호세아가 살았던 시대적인 배경은 앗수르 제국에게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약30년 또는50년 정도 앞둔 때였습니다. 지금 같으면 멸망1-2년 정도에 이러한 예언을 주어도 믿지 않을텐데, 호세아 때에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적어도30년 전에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경고한 것은 다음 세대를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준 것입니다.

 

특히 그 당시의 북쪽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군력 및 경제력을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재산을 불리기 위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착취하였으며 사기와 부정한 방법을 통해 더러운 이득을 취했습니다. 속임수와 뇌물이 사회에 가득했고, 부정직한 관료들이 도처에 가득했고 재판관들은 돈에 매수되어 그릇된 재판을 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공동체였다는 점입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십자가의 보혈로 인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은 교회로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뭔가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돈과 권력과 쾌락과 이웃 큰 나라와의 동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사회 인식 가운데 돈과 쾌락과 권력을 보장하는 신은 바알 신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즉 바알 신을 높이는 것이 사회 분위기였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점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이 돈과 권력과 쾌락과 안전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돈과 권력과 쾌락이 있으면 자신들의 행복과 장래가 보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사고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적인 가치관에 빠져서 하나님을 져버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기초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아니냐,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특성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느냐?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그분과의 언약에 온전히 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언약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기 전에 신속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며 그분께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야 참된 미래가 있지 않겠느냐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당시 이스라엘은 세상에 있는 다른 민족들과 달리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특별한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믿고 순종만 한다면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이에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답게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서약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언약을 점차 망각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란 마치 결혼한 부부관계와 같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따라 끊임없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은 고멜처럼 결혼 언약을 깨뜨리고 창녀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기자 그들을 징계하시기 위해 세계의 정세를 바꾸시고 앗수르 제국을 일으키셨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 운영 방식은 언제나 주의 백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대표하는 기독교 교회라는 공동체는 구약의 이스라엘 나라와 같은 개념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바로 서면 나라가 안정하지만,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면 나라와 세상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물론 호세아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들을 알려주고 있지만 특히 호세아 10장을 읽어보면 바람난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해 고통 당하시는 하나님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니,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부유해지고 평안할수록 다른 신들에게 빠져들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풍성한 결실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실수록 그들은 다른 신들을 더 아름답게 치장하고 그들을 따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고 좋은 직장들이 있고 사회적으로 풍성하니까 사람들은 안일해지면서 더욱 하나님을 멀리하고 오히려 그들의 우상인 바알을 향해 더 돈과 권력과 쾌락을 추구하더라는 것입니다. 


삶이 안일해질수록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과 삶의목적과 동기가 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2절은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두 마음을 품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 내 자신이 목적인 거짓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자들에게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세상을 섬기는 것은 결국 다른 우상들, 즉 다른 종교와 신들을 인정하고 섬기게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 때문에 신앙을 져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이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는 악세서리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일에는 교회에 가기 때문에 신자처럼 보이는데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어떻게 보면 거룩한 신자같은데, 어떤 때 보면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완전히 거짓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호세아는 이러한 두 마음을 품은 언약 백성들을 “뒤집지 않은 전병”(호7:8)이라고 불렀습니다. 한쪽은 새까맣게 타고 다른 한쪽은 밀가루로 반죽처럼 설어있는 빵을 말하는 것인데 결국 하나님께서 버리실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전혀 쓸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 맘을 다해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지 않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는 신세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영원히 쓸어버리실 대상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믿음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님만을 사랑하지 않고 우상들과 세상 신들과 세상을 함께 섬기게 될 때 그는 “뒤집지 않은 전병”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 의해 영향을 받는 신자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그 마음 속에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은 신자들은 삶이 평안해질수록, 안일해질수록, 시간이 많을수록 더욱 마음 중심이 우상을 향해 달려갈 뿐입니다. 그것이 호세아가 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현재 이 땅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상투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복음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을 썩지 않도록 하며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서 지탄을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정치적, 이기적인 죄악 가운데 아무런 선한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인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분위기는 믿음, 하나님의 영광, 은혜, 거룩 등을 사용하지만, 그들이 가정에나 사회 속에서 하는 행동이나 말이나 처신을 보면 전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2절을 보니, 결국 하나님께서는 참으면 참을수록 더욱 죄악만 많아지고 더욱 세상 신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며 벌을 내리시기로 결정하십니다. 즉, 그 벌은 그들이 바라보고 욕심을 내고 섬기고 의지하는 우상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지은 죄악의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망하게 하십니다. 공의가 파괴되고 농부의 밭에 독초가 발생하여 온 밭을 다 망치게 하십니다. 사실, 우상이 잿더미가 되면 주의 백성이라면 기뻐해야 하는데 백성들은 송아지 우상을 잃고 슬퍼하고, 타락한 영적 지도자들도 우상이 무너진 것을 보고 아쉬워합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이 원수들에게 끌려가 조롱과 천대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언약의 주의 백성들이 우상에게 마음을 다 주었기 때문에 수치를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8절을 보면, 그들이 섬기던 우상과 거짓 신으로부터 가시와 찔레가 나서 고생을 하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힘든지 다들 죽고 싶다고 외칩니다.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고 절규합니다. 우상에게 옴 맘을 빼앗겼던 언약 백성들이 우상이 잿더미가 되니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상으로부터 가시와 찔레가 나니 너무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일한 삶 가운데서 죄가 많아질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반드시 고생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완전하게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단지 하나님을 이용해 먹으려고만 할텐데 하나님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따라서12절을 보면, 강퍅한 마음, 느슨한 마음, 안일함에 물든 마음을 일구라고 말합니다. 특히 온 맘으로 주님을 구하라, 찾으라, 주님께 나아가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주의 의를 비같이 내리셔서 다시 주의 언약  백성들을 세우시며 그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죄를 이길 능력을 다시 주시며, 모든 삶과 마음에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주께서는 만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가운데 군력을 믿거나, 큰 군대가 연방국으로 있으니 안전하다고 느낀다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다 무너지고 멸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완전하게 무너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살 수 있는 길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주께 돌아와 주님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은 철저하게 주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시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기록된 대로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늘의 지복을 실제로 누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신28:1-19).

 

그러면 언약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에게 가 있을 때 어떤 특징들이 나타납니까? 교회가 언약의 복음을 잃고 그 마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떠날 때 어떤 특징이 교회에 나타나겠습니까?

 

첫째, 언약을 망각할 때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은 거짓말과 속임수입니다. 특히 호세아에서 보이는 타락은 그들이 조직을 이루어 그 힘으로 집단의 이익을 쟁취하는 모습입니다. 그 무리는 교회일수도 있고 종교 단체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연합 조직이 사용하는 방법이 거짓과 속임수입니다. 


오늘날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보다 정치적으로 힘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단체나 교회 연합체들을 만드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이단 판정 단체들까지 만들어서 자신들이 죽이고 싶은 상대가 있거나 자신들과 뜻을 함께 하지 않는 대상을 향해 무조건 이단 시비를 거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종교 ‘단체’를 만들어 그 크기가 커질수록 그것을 힘으로 여기며 의지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주의 백성들의 마음이 주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 그 자체에 있게 되면서 우상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이 땅의 대형교회가 그러한 의미에서 커진 것이라면 오히려 더 무서운 죄악의 기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 증세가 현대 교회에 가장 위험한 증세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무리의 힘을 의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착각이며 어리석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주의 백성들의 문제 해결 방법입니다. 교회던 기독교 종교 단체던 그들의 문제 해결 방법을 보면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충실하다는 것은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세아 당시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의 문제를 풀 때, 또는 나라의 닥친 문제를 풀 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과 동맹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고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뇌물과 아첨을 사용합니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니 그릇된 결정과 속임수를 사용하게 됩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문제를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푸는 대신에 권력자와 재판관들과 부정을 저지르는 것으로 푸는 것을 음란한 행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바알을 의지하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으로 문제를 푼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알이 그 심령을 붙잡고 있으니, 권력, 돈, 쾌락에 물들어 세상을 두려워하며 세상과 아첨하는 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불신을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호7:7)라고 통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인생의 문제가 찾아올 때 어떻게 해결합니까? 주님께 무릎을 꿇고 나아갑니까? 아니면 언성을 높이며 다투거나 세상적인 방법을 추구합니까? 지금 한국 교회는 북한으로 인한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습니까? 미국을 의지하면 풀립니까? 중국과 동맹하는 것이 그 해결입니까? 경제력이 뛰어나서 맘껏 무기를 사다 놓으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도 일상적인 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돈과 권력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곳 저곳 뛰어 다니며 아첨과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인생이 어떤 줄을 따라갈 때, 어떤 사람과 대인 관계를 맺을 때, 힘의 논리를 따르는 사람, 돈과 쾌락과 권력의 줄을 타는 사람들은 결국 그 줄 때문에 망할 것입니다. 그 줄을 따라 가다가 서서히 자기도 모르게 세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언약적 백성의 독특성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호세아10장의 말씀을 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들이 죄를 회개하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진심이 없는 입술만으로의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는 삶의 변화로 나타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대항하는 죄성이 해결되지 못한 채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하시고 회복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거짓을 말하면서 주의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 하나 그들이 나를 거슬러 거짓을 말하고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호7:13-14).

 

이미 우리는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주전722년에 앗수르 제국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 적어도30년 훨씬 이전에 하나님은 참선지자를 통해 주께로 돌아오라고, 진심으로 회개하라고 재촉하시며 계속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멸망으로 볼 때 그들은 끝까지 주의 말씀을 따라 회개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과거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났던 증상들은 나타나지 않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되는 그런 유혹이나 우상이 없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보다 세상에서 더 잘되고 싶어서 신앙을 우습게 여기는 적은 없습니까? 우리의 모습이 세상의 영향을 받아 마치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한쪽은 설익었고, 또 다른 한쪽은 새까맣게 탄 전혀 쓸모없는 존재들은 아닙니까? 만일 그러하다면, 신속하게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순종하려는 마음을 주께 온전하게 다 드려야 합니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제 상황 속에서 눈치만 보고 있지, 한국 교회 내에 회개의 모습이 전혀 비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들이 현재 상황에 대해 영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배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종교 다원화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관상기도 및 귀신을 만나는 궂같은 일들이 교회 내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이름으로 악령을 부리는‘impartation’ 운동이 교회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와 그리고 십자가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삶의 변화되는 것이 기독교이건만, 죄악된 삶을 버리는 교회의 모습들이 아니라 교회가 앞장서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바알과 아스다롯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 땅의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순종에 따라 하나님의 세상 운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배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배도할 때 이 세상에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세상은 바벨탑 사회처럼 주 여호와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대항하는 전체주의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오늘 나의 마음과 삶이 어디에 서 있는지 진단하고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온 맘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의 삶과 마음을 완전하게 다 드리셔야 합니다. 마음 구석을 드리지 않고 남겨두면 안됩니다. 주께 온 맘을 다 드리셔야 합니다. 그래야 북이스라엘처럼 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순결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부터 주의 복음의 언약으로 돌아와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겠노라고, 철저하게 순종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이 땅의 주의 언약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북이스라엘 처럼 되지 않고, 지금 다시 주의 복음의 언약을 기억하면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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