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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겸손의 차이/ 데이빗 윌커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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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겸손의 차이 

 

 

겸손한 사람은 고개를 떨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하며 자신을 낮추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모든 것에, 모든 상황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이 그를 인도하시고 힘을 주시고 북돋아 주셔야만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이 없으면 자신은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교만한 사람은, 그 반대로, 어느 정도 하나님을 사랑할지는 모르나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교만의 뿌리는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이론, 기술과 능력에 기초해서 결정을 내립니다.

그는 “하나님이 나에게 훌륭한 지성을 주셨고 내가 그것을 사용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까지 모두 그분께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지요,”

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보다 높은 위치에 있거나 유명한 사람에게는 귀를 기울일지 모르겠으나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받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의로운 판단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진리를 증언할 성령님이 계시기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교만은 독립이고 겸손은 의존입니다. 

겸손한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조언 없이는 움직이지 않고, 결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의로운 사람의 발걸음은 주님이 명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독립적인 영의 발걸음에게는 명하실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전적인 통제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분께 이것을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


- 데이빗 윌커슨, daily devotion 중에서 -

 


겸손한 자와 겸손한 척 하는 자의 차이



나는 주변의 성도들에게 겸손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보이도록 자기를 감추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식은 나의 겸손이라는 멋진 장식품을 보고 속은 것이지 나를 통해 겸손한 사람을 본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겸손은 단지 교만한 자아를 감추기 위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겸손이라는 멋진 장식품으로 포장된 나를 바라본 사람들은 나를 겸손한 자로 본다. 결국 겸손은 나의 외모를 꾸미는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겸손”이란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사실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지위가 낮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보다 겸손한 척 하기가 더 쉽다.


왜! 겸손한“척”이라고 했는가는 진정한 겸손은 이런 조건에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위가 높은 사람이 겸손한 척 하기 쉬운 것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매력, 즉 겸손한 사람이라는 칭찬과 그런 사람으로 추앙 받게 되는 것 때문이며, 그러면서도 결코 자신이 그런 사람으로 평가 절하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위가 낮은 사람이 겸손한 척 하게 되면 원래 낮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를 마치 그런 사람으로 취급해 버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겸손한 척 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마다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자신을 지극히 낮은 곳에 가져다 놓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자신의 어떠함을 높게 평가하는 순간 그에게서 진정한 겸손은 그 높이 만큼 멀리 달아나 버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나은 사람으로 인정 할 때 겸손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자아는 스스로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 보다 높은 위치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임으로 자신의 인품을 은근히 뽐내기를 좋아한다.


나는 참으로 겸손을 지향하지만 어느새 지속된 그 겸손은 나의 못나고 수치스러운 부분들을 감추고, 더 나아가 아름답게 치장하는 장식구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의지로 겸손에 이르려는 노력, 즉 주님을 배제하고 스스로 자기 의를  이루려는 무모함 때문에 생겨난 "겸손이라는 자기의(義)"로 육신의 열매를 맺어 자신에게 비춰진 겸손이라는 영광의 열매를 스스로 따 먹게 된 것이다. 그것은 주님과 전혀 관계없고 천국과 관계가 없는 육신의 열매, 즉 자신의 영광으로 열매를 맺어 결국 주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을 말한다.



그러면 누가 겸손한 사람인지, 겸손한 척 하는 사람인지를 알아보자.


테스트를 위해 우리는 다음의 고백이 자신의 고백이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해 낼 수 없는 참 못난 사람이고, 무식하고, 거짓말쟁이에다, 음란하고 폭력적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익한 내가 이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나의 어떤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고백을 해 놓고 "겸손한 척"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 말대로 믿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그것은 과거지사이고 현재는 자신이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보이기 위해 이전의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고 그것을 통해 겸손한 사람으로 비쳐지기를 바라서 그런 고백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이 고백에 대하여 그 말이 맞다고 맞장구쳐주고 “맞아!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라고 하면 당장에 화를 내거나 입을 닫아버린다.


아니면 “당신은 아무것도 해 낼 수 없는 참 못난 사람이고, 무식하고, 거짓말쟁이에다, 음란하고 폭력적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당신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다.”라는 말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게 되었다고 하자.


그 때 몹시 화를 내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든지, 아니면 심지어 멱살을 잡거나 한대 후려 갈기고 싶은 미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낮아짐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항의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에게 돌아올 칭찬과 같은 어떤 결과 때문에 겸손한 척 한 이지, 결코 겸손한 자가 아니다.


진정한 겸손은 바닥까지 낮아지는 자리에서도 흔들림 없이 상대를 높일 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비굴하지 않고 불의 앞에서는 오히려 당당한 그럼에도 상대방에게 결코 사납거나 경멸함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겸손은 내 안에는 없는 것 같다. 오직 주 안에만 있어서 내가 주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할 것 같다.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의만 쌓아, 그 육신의 열매만 거두지 말고 자신의 어떠함을 주의 빛에 비추어 생각하자. 그렇게 할 때에 자신은 낮은 자리로 내려 갈 수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겸손이다. 그런데 이 겸손은 자신을 빛나게 하여 육신의 열매로 맺혀지지 않고, 오직 주님을 빛나게 하여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의 빛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다시 주님을 통해 우리에게 비춰지고 그것은 우리 자신의 영광의 빛이 되어 돌아온다.


 

데이빗 월커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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