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워싱턴메시야장로교회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1287

영을 분별하라(삼상 28:15-25)

$
0
0

지난 시간은 사울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장면과 그렇게 해서 그 여인이 신을 끌어올리고, 또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말할 때, 사울이 그것을 사무엘이라 말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은 사무엘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3절의 신은 히브리어에서는 엘로힘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것은 주로 하나님을 나타낼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이방 신들을 가리킬 때도 쓰였고, 또 본문에서처럼 죽은 자의 영혼을 가리킬 때도 쓰였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어성경에서는 그냥 영(Spirit)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렇다면, 14절에서는 그가 사무엘인 줄 알았다고 했는데, 이것이 정말 사무엘의 죽은 영이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성경에서 죽은 자의 영은 하늘로 올라갈 뿐 아니라, 육체와 분리되어 낙원이나 음부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여러분, 죽은 자의 영은 다시 세상에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사무엘의 영이 아니라, 거짓의 아비 사단이 인간을 미혹하게 하기 위해서 조작해낸 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또한 오늘날 무당들이 불러 내는 죽은 자의 영이라는 것들도, 다 사단이 인간을 미혹하기 위해서 행하는 술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얼마 전에 죽은 자의 영혼을 가장하여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것처럼 좋은 사단의 유혹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사무엘의 모양을 한 사단의 영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정확하게 사울의 미래를 말하고 있죠? 마치 오늘날 무당들이 불러낸 영들이 말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어라고 말하는가? 먼저 15절에서는 사울이 블레셋이 쳐들어온 상황과 그럼에도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상황이기에, 이렇게 당신을 불러올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은 무엇이라 말할까?

16절을 읽겠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떠난 자는 이제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17절에서는, 사무엘이 사울의 나라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떼어서 다윗에게 주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정확히 맞는 말이죠? 그는 지금 너무나도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단의 영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헷갈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사단의 영이 이렇게 한 것은, 자기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한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처럼 사단이나 사단의 하수인들이 하나님이나 광명의 천사처럼 자신을 위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다는 것을 사도바울은 말한 바 있습니다.(고후 11:14-15).

따라서 마태복음을 보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경성하여 영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이 아니거나, 말씀을 거스리는 것은 어떤 기적과 이적이라도 결코 믿고 따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단의 영은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18절을 보면,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결국 왜 하나님이 사울을 떠나게 되셨는지, 가장 중요한 원인 둘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불순종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9절은 이제 너와 네 아들들이 내일 나와 함께 있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죽는다는 말이죠? 그리고 이스라엘의 군대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리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울의 이스라엘은 어찌하든지 돌이킬 수 없는 형벌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음을 확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러서는 아니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방해하고,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사울은 그냥 갑자기 땅에 엎드려졌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울에게는 무슨 다른 해결책이라도 있는 것이었을까요?

과연 그 자리에서 그가 철저히 회개한다면, 그에게는 일말의 소망이라도 있는 것이었을까요? 그러나 정말 이런 경우는 아무리 기도하고 회개해도 참 힘든 것을 봅니다.

결국 그는 기력이 진하여 종일 종야 음식을 먹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울은 이제 큰 정신적, 영적 충격으로 힘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에 신접한 여인이 말하고 있습니다. 21절과 22절을 읽겠습니다.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심히 고통함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청종하였사오니 그런즉 청컨대 이제 여종의 말을 들으사 나로 왕의 앞에 한 조각 떡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길 가실 때에 기력을 얻으소서.”

신접한 여인이 왕에게 무엇을 좀 먹을 것을 청하고 있죠?

21절에서 자신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의 말을 청종하였다는 것은, 자신이 생명을 내어걸고 왕의 말을 들었다는 것인데, 그는 생명을 내어걸고 자신이 왕의 말을 들은 만큼, 왕도 자신의 청을 반드시 들어주어야만 한다고 강력히 요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신접한 여인은 왜 이리도 강력하게 왕에게 먹을 것을 요청하고 있었는가?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성경학자들은 이것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이 여인은 사울이 강건해져 왕의 본연의 위치로 돌아갈 것을 원하였을 뿐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어떨 것인가를 저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사실 사울 왕은 지금 거기서 쓰러져 못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었죠? 그는 거기서 일어나 길보아 전투로 나아가야 했고, 바로 거기 길보아 전투에서 자신의 아들들과 백성들과 함께 쓰러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미리 자신의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징벌을 알았다고 해서 결코 인위적으로 그 징벌을 피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반드시 벌을 받았어야만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23절에서 다시 거절하는 사울에게 신하들과 함께 먹을 것을 강권하였다고 했고, 그래서 24절에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고 무교병을 만들어 대접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5절에서는 이에 이들이 이것을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고 했습니다.

그 밤은 참 길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하였든 이들은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어서 그 자리를 떠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바로 그 다음날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사단의 영도 우리의 미래를 정확히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며 신통한 역사를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둘째,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그것을 쫓아다니려 하거나 그것으로 우리의 미래를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

그렇다고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더 큰 충격에 휩싸일 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는 오히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통곡하며 그 이유를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오래 걸리고 응답이 늦어진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다윗도 회개할 때, 물론 그 죄값은 치렀지만,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던 것을 볼 수 있고, 다른 많은 인물들도, 그리고 성경의 원리도 회개하는 자를 외면치 않으신다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모든 문제 해결의 유일한 돌파구는 하나님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피하고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침도 여러분의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가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복된 기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더욱 돈독히 하는 기도가 되어 늘 하나님의 응답이 여러분의 삶을 떠나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1287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