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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야의 충격과 다윗의 찬양과 솔로몬의 지혜(왕상1: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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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38절로 40절에서는 솔로몬의 즉위식이 거행되고, 솔로몬의 즉위가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음을 보았습니다.

    

이제 장면은 다시 아도니야의 진영으로 바뀌어 아도니야와 그 일당들이 솔로몬의 즉위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41절을 보면, 아도니야와 저와 함께 한 손들이 먹기를 마칠 때에 다 들은지라 그리고 요압이 양각소리를 듣고 가로되 성중에서 소리가 어찌하여 요란하뇨? 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먼저 우리는 아도니야 일당들이 이제야 먹기를 마쳤다는 사실을 통해, 나단과 밧세바의 대처, 그리고 다윗의 솔로몬 즉위명령과 즉위식이 얼마나 빨리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죠?

    

그러니까, 아도니야가 왕으로 즉위해서 조금이라도 통치행위를 하기 전에 이미 솔로몬의 즉위식은 끝나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대처이죠?

    

그리고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기뻐했다고 했다고 했고, 또 양각나팔소리가 울려퍼졌는데, 이 소리를 요압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과연 이들은 어떠했을까요?

    

그러나 사실 이들은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를 정확히 분별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래서 42절을 보면,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올 때, 아도니야가 이렇게 말하죠?

    

가로되 들어오라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용사라는 말을 다른 영어번역에서 보면, 요긴한 인물, 정직한 사람이라고도 번역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가 이렇게 묻고 있었던 것은 이런 요나단의 성품 때문이 아니었죠?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했는데, 아도니야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소식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자신이 왕이 된 것을 백성들이 인정하고 기뻐하는 일이었겠죠?

    

그는 솔로몬 왕 즉위식으로 기뻐하는 백성의 소리와 또 그것을 알리는 양각나팔 소리를 듣고는 그것이 혹이라도 자신을 위한 것인지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41절에서 요압이 성중에서 소리가 어찌하여 요란하뇨? 라고 물은 것은 심상치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쟁터에서 뼈가 굵은 경험많은 요압은 남들이 분별하지 못하는 그 나팔소리와 그 나팔소리의 의미를 분별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죠?

    

그래서 그는 불안에 떨었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봅니다.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아도니야가 기대했던 아름다운 소식은 없고, 아주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죠? 다같이 43절을 읽겠습니다.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과연 우리 주 다윗 왕이 솔로몬으로 왕을 삼으셨나이다.”

    

여기 과연이라는 말은, 마치 요나단이 솔로몬의 즉위를 기대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그러나 원문을 보면, “그러나...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여기 우리 주 다윗 왕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아도니야를 지지하면서도 여전히 다윗왕을 더 지지하고 왕으로 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아도니야를 지지한 것은, 다윗 왕을 모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결국 요나단은 44절로 45절에서 솔로몬이 왕이 된 일과 또 성중에 큰 소리가 진동하는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그렇다면, 이제 다윗도 명령했고, 백성들도 기쁨으로 인정했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46절에서는 장면이 바뀌고 있습니다. 48절까지를 보면, 솔로몬이 왕 위에 앉은 모습이 나타나고 있죠?

    

46절을 보면, 솔로몬이 나라 위에 앉았고 라고 했는데 4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왕의 신복들이 와서 우리 주 다윗 왕에게 축복하여 이르기를 왕의 하나님이 솔로몬의 이름을 왕의 이름보다 아름답게 하시고 그 위를 왕의 위보다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보다 아름답게 하시며, 여러분의 위치보다 크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떻습니까? 참으로 대단한 축복인 것이죠?

    

구약에서 이름은 그 존재의 인격을 대변한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이름은 솔로몬의 전존재를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존재보다 더 아름답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 잠재력까지 다 포함해서 그의 모든 가능성과 능력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게 되기를 원한다. 여기 아름답다는 말은, 유명하게 하신다는 의미도 있고, 영광스럽게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신하들의 축복 그대로 유명하고도 영광스러운 왕이 되었죠?

    

그래서 오늘날도 세계적으로 솔로몬을 모르는 민족이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있죠? 여기 왕은 누구입니까? 이 왕은 다윗 왕이었습니다.

    

그는 노쇠하여 혼자 거동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몸이 불편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을 지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48절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내 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나로 목도하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하니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죠? 그런데 또 어떤 찬양을 하고 있습니까?

    

그 자리를 주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무엘하 7장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를 이어 왕위에 올라 장차 성전을 건축하며 나라를 번영시킬 후계자에 대한 약속을 받는 것을 볼 수 있고, 12장을 보면, 그 후계자가 바로 솔로몬이라는 사실을 계시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그 솔로몬이 바로 오늘 왕위에 오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보통은 선왕이 죽고 난 후에야 후왕이 세워지는 것이었죠? 그런데 다윗은 아도니야로 인한 하나님의 섭리로 이 일을 생전에 목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이 일이 자신의 생전에 이루어짐을 목도하면서, 그 신실하신 언약에 따라 모든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꿈들도 여러분의 생전에 이루어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결국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수많은 금은보화를 물려줌을 볼 수 있죠?

다윗은 짓지 못했지만, 솔로몬이 짓기 시작하는 것은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청사진이 제일 먼저 나오는데, 그렇다면, 평생에 성전건축이 소원이었던 그가 그 청사진만 보았더라도 얼마나 가슴이 벅찼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아도니야는 어떻게 될까요? 49절을 읽겠습니다.

    

아도니야와 함께 한 손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

    

어떻게 합니까? 다 도망을 가고 있죠?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아도니야의 왕즉위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꼭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워야만 된다는 신념이 없었던 것이죠?

    

상황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람들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아도니야는 어떻게 합니까? 50절을 보면,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았다고 했죠? 무슨 말입니까?

    

도망을 갔는데 어디로 갔다는 것입니까? 성막으로 갔다는 것이죠? 왜요?

    

거기는 성역이었기 때문인 것이죠? 죄인이 제단 뿔을 붙잡으면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것으로 아려졌습니다.

    

제단 뿔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곳이었기에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약자와 억울한 자, 그리고 죄인들은 바로 이곳을 붙잡음으로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들이 구원받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일이 솔로몬에게 전해지고, 솔로몬은 아도니야가 왕이 칼로 오늘날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는, 뭐라 합니까?

52절을 읽겠습니다. “솔로몬이 가로되 저가 만일 선한 사람이 될진대 그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저의 가운데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53절을 보면, 집으로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완전한 용서를 하지 않고 조건부 용서를 했을까요? 그것은 더 이상 역모를 꾀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겠죠?

    

그러나 아도니야는 가장 아리따운 처녀 다윗의 종 아비삭을 달라고 했다가 죽죠?

사실 아도니야는 겉으로는 솔로몬에게 절을 하며 충성된 종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뒤에서는 다시 반역음모를 꾀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솔로몬의 지혜로움이 돋보이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누가 주신 지혜였겠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늘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넘쳐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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