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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과 성도의 자격(왕상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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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금까지 솔로몬 성전건축은 지난 시간 성전기물들을 다 완성하여 들여놓음으로 다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전은 다 된 것일까요? 아니죠?


왜 그렇습니까? 성전에는 가장 중요한 무엇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주후 70년 로마 디도장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이후, 그동안 이스라엘이 성전건축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물론 그들이 예루살렘을 빼앗기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렇지 않은 때라 할지라도, 바로 이 언약궤가 없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어야지, 성전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언약궤가 없이는 성전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인 것이죠?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오늘날 교회도 역시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곳은 결코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과연 하나님의 임재가 존재하는 곳이라고 믿습니까?


성도 여러분, 회개할 때 용서하시고, 간구할 때 응답하시며, 예배할 때 영광 받으시는 이곳은 분명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전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약시대에는 성도들이 곧 성전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 사람 가운데는 과연 하나님의 임재가 존재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겠죠?


그러나 여러분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케 하신 성령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떠나지 않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또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전임을 기억하며 늘 거룩함을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솔로몬은 어떻게 언약궤를 가져오는가? 그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고 있죠? 함께 살펴보며 주시는 교훈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1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언약궤는 얼마나 됩니까? 그렇게 크지가 않죠? 그런데 그 언약궤 하나를 메어 올리고자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언약궤가 이스라엘에 있어서 매우 비중이 있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죠?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지난 번 다윗이 아비나답의 집에서 언약궤를 가져올 때의 일을 떠올릴 수 있죠?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궤를 실은 수레를 몰던 소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뛸 때, 웃사가 그것을 붙들므로, 하나님이 그를 치셔서 죽는 사건이 있었죠?


그러므로 언약궤는 그냥 상자와 같은 것이지만, 결코 아무렇게나 함부로 가져가고 가져올 수는 없는 신비롭고 거룩하고 경외로운 것임을 잘 알았기에 이렇게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모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이제 언약궤를 성전에 들여놓으면 성전이 정말로 다 완공되는 것이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바침에 있어서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모이게 함으로 결국은 이스라엘 전체가 이것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고자 하였던 것이죠?


그러니까, 온 국민과 함께 성전봉헌식을 하고자 했던 실질적인 의도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입니까? 매우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날짜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칠월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에다님월 곧 칠월 절기라는 것은, 태양력으로는 9, 10월에 해당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때 지켜졌던 구약의 절기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것은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한 것을 기념한 초막절이었습니다. 이것이 수장절이라고도 불리워졌는데, 이는 수확의 절기였기 때문이죠? 우리 풍습으로 말하자면, 마치 추석과 같은 절기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절기는 무교절, 맥추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삼대절기로 온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며 축제를 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가 얼마나 성전봉헌식과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장막생활에서 안정된 생활로 정착되었음은 물론, 성막도 똑같이 그것을 상징하는 장막에서 성전으로 바뀜으로, 이제는 진정 불안정된 생활이 종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출애굽 당시 가나안의 약속은 여기서 완전히 성취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제사장들이 언약궤와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과 이스라엘 회중은 그 궤 앞에 아주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양과 소로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제물과 인력과 시간을 들여 건축한 성전을 모두 다 기쁨으로 봉헌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절 이하에서 언약궤가 지성소에 안치될 때, 그 안에 장식된 그룹들의 모습과 함께 엄청난 영광의 임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6절에서는 그 언약궤가 지성소의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 있었다고 했고, 7절을 보면, "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모습입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마땅히 계셔야 할 곳, 천사들이 모시는 그 거룩한 자리에 자리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죠?


8절에 언약궤의 채가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 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25장 15절에서 언약궤로부터 채를 치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9절을 보면,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읽겠습니다.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무엇이 의아한 점입니까? 원래 언약궤 안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죠?


네,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이 세 가지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 견해를 주장하는데,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유실설입니다.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유실되었는데, 사무엘상 4장에 나오는 엘리제사장 때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겼을 때, 잃어버렸다는 유실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본래 언약궤에는 출애굽기 25장 16절이나 40장 20절과 신명기 10장 5절에서 언급하듯이 그 만든 목적과 부합하게 십계명 두 돌판만 들어 있었고,   '만나 항아리와 싹난 지팡이'는 출애굽기 16장 33절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 앞에' 곧 민수기 17장 10절에 말하는 '증거궤 앞에' 있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이 언약궤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증거하는 구절은 신약의 히브리서 9장 4절입니다.


그러므로 카일이나 랑에라는 학자는 이와 같은 히브리 기자의 증거는 정확한 고고학적 검증이 없이 기록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고고학적 검증도 없이 단지 유대전승의 해석에만 따랐다는 것이죠. 물론 그럴 수도 있죠?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무오함을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첫 번째 설인 만나 항아이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엘리 제사장때 유실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에서도 밝혔듯이 언약궤를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 담긴 십계명을 보관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법궤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오늘날도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개혁주의는 말씀 중심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따라서 성도들도 하나님의 전이 되기 위해선 역시 말씀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중심의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제 이렇게 언약궤를 지성소에 옮겨놓고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10절에 여호와의 전에 영광의 구름이 임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는 실로 언약궤라는 물질뿐만 아니라, 실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바른 말씀가 선포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며 떠나지 않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올바로 자리 잡을 때만이 영광스러운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마음과 삶이 늘 하나님 말씀 중심이 됨으로, 늘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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