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우리는 솔로몬의 왕궁건축에 관한 기사에 이어서 계속 추가되는 성전건축기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주로 놋기구 제작에 관한 것이었는데, 두로의 놋제조 기술자 히람에 대한 소개가 있었고, 이어서 놋기둥, 놋바다, 그리고 놋물두멍 열 개와 받침들에 대해 살펴보며 그것들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7장 마지막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는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살펴보며 주시는 교훈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40절을 읽겠습니다. "히람이 또 물두멍과 부삽과 대접들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의 모든 일을 마쳤으니"
지금 여기 40절부터 47절까지는 히람이 주체가 되어 진행되었던 놋주조작업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여기 물두멍은, 사실 원문을 보면, '솥'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옳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여러분, 사무엘상을 보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솥에 제사 고기를 삶을 때, 그 가운데 가장 좋은 부분만 갈고리로 건져먹었다고 했죠?
바로 여기 이 솥은 희생제물을 삶는데 사용되는 용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삽은 제단의 재를 퍼내는 데 사용된 도구이고, 대접은 희생 제물의 피를 담았던 그릇입니다. 지금 우리가 출애굽기를 공부하고 있는데, 38장을 보면, 이런 것이 나오고 있죠?
자, 그런데 이로써 히람이 여호와의 전의 모든 일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이제는히람에게 맡겨져 여호와의 전을 위해 쓰일 물품을 만드는 모든 일은 다 마쳐졌다는 것이죠?
그러나 41절로 45절을 보면, 또다시 성전의 기물들을 총괄적으로 정리해서 소개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이제까지 열거된 성전기물들이 모두 한꺼번에 히람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일부러 부각시키기 위함인 것이고, 그러니까 이것은 히람을 강조하려한다기 보다는 놋주조물임을 구분하려한다 할 수 있죠?
그리고 또한 지금까지의 복잡한 성전기물모양설명으로 혹여 기물들을 혼동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쉽게 종합적으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언급된 성전기물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41절로 45절에 아주 일목요연하게 기록되고 있죠?
41절을 보면, "곧 기둥 둘과 그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머리 둘과(이것은 백합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했죠?) 또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머리를 가리우는 그물 둘과,"
42절을 보면, "또 그 그물들을 위하여 만든 바 매그물에 두 줄씩으로 기둥 위의 공 같은 두 머리를 가리우게 한 사백 석류와"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물들이란, 놋사슬로 만들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죠? 거기에 석류 사백개를 만들어 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400개의 석류가 기둥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주 화려했음을 나타내는 것이죠.
그리고 "또 열받침과 받침위의 열 물두멍과" "한 바다와 그 바다 아래 열두 소와" 45절에 "솥과 부삽과 대접들이라 히람이 솔로몬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에 이 모든 그릇을 빛난 놋으로 만드니라."
결국 이 모든 것이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놋으로 만든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죠? 특히 '빛난 놋'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안성유기와 같이 놋을 반짝 반짝 빛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얼마나 고도의 기술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열심히 갈고 닦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46절을 보면, 이 놋을 주조한 흙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이 요단 평지에서 숙곳과 사르단 사이의 차진 흙에 그것들을 부어 내었더라."
여기 차진 흙이라고 번역된 것을 다른 한글 번역서에서 보면, 찰흙이나 진흙으로 번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찰진 흙으로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왜 굳이 이렇게, 놋을 만들었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왜 흙에 관하여, 그것도 지명까지 언급해가며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여기 요단 평지 숙곳과 사르단 사이의 흙이 주물하기에 최고로 적합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전건축에 있어서 솔로몬은 흙까지도 최고의 흙을 사용하여 성전을 건축하였다는 것이죠?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고의 것으로 하나님의 전을 꾸밀 수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실용주의와 합리주의 이성주의가 발달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성전을 꾸미는 것까지도 상당히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려 하는데, 사실은 하나님의 전을 꾸미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성경적임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 47절을 보면, "기구가 심히 많으므로 솔로몬이 다 달지 아니하고 두었으니 그 놋 중수를 능히 측량할 수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본문을 보면, 이 놋기구가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그 무게 또한 측량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났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성전건축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그 생전에 부지런히 많은 놋을 준비하였는데, 아주 많이 엄청나게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그가 태평성대만을 구가하면서 놋이나 성전건축재료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난의 날에 이를 준비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과연 다윗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었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다윗의 준비로 말미암아 이제는 놋을 넘어 금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48절을 보면, "솔로몬이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니, 곧 금단과 진설병의 금상과"라고 했습니다.
금단은 뭐죠? 금으로 만든 제단을 말합니다. 이것은 매일기도를 상징하여 아침저녁으로 분향을 드리는 분향단을 의미합니다.
진설병은 무교병 떡임을 잘아시죠?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무교병을 2줄로 진설했는데, 금상에 진설했죠?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미가 있고,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장차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제공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출애굽기 강해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다음, 49절에 "내소 앞에 좌우로 다섯씩 둘 정금 등대며 또 금꽃과 등잔과 불집게며"라고 했고, 50절: 또 정금 대접과 불집게와 주발과 숟가락과 불을 옮기는 그릇이며 또 내소 곧 지성소 문의 금돌쩌귀와 전 곧 외소문의 금돌쩌귀더라."고 했습니다.
49절에 금꽃은 등대의 장식을 말한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50절의 금돌쩌귀는 무엇일까요?
돌쩌귀는 문자적으로 갈라진 틈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socket이라 했는데, 문짝을 여닫게 하기 위하여 암짝은 문설주에, 수짝은 문짝에 박아 맞추어 꽂게 된 쇠붙이를 말한다고 성경사전을 보면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부분까지도 금이라는 최고의 재료를 써서 장식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렇게 금을 많이 썼는데도 많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51절을 읽겠습니다.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마친지라. 이에 솔로몬이 그 부친 다윗의 드린 물건 곧 은과 금과 기구들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전 곳간에 두었더라."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아직도 은과 금과 기구들을 곳간에 넣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니까, 다윗은 평생에 성전건축을 위하여 아주 힘이 닿는대로 많은 금은보화를 준비하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다 쓰고 남음에 다른 곳에 두지 않고 여호와의 전 곳간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솔로몬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 혹은 왕궁을 위해, 성전건축하고 남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만 귀속시켜 사용하게 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하여 준비하였던 모든 것은, 남은 것이라 할지라도, 다 하나님의 것으로 간주하여 손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분명한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오늘날 우리가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하고는 너무나 다르죠?
그렇다면, 솔로몬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었을까요? 잘하고 있는 것이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이러한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축복해 주셨다는 것이겠죠?
저는 이 성전건축 기사를 보면서, 좀 생각이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는 실용적으로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보면서 오히려 그것이 부끄러운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너무 성전에만 모든 것을 쏟아 놓고 선교나 구제는 하나도 하지 못하면 안 되겠죠?
다만 이런 것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성전건축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평생의 소원인 성전건축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미 그 아들로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구별되이 준비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꿈은 무엇이고, 여러분은 그런 꿈을 위해 여러분의 후대에게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문의 꿈이 실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꿈이 되어 귀한 믿음의 유산들을 남겨놓음으로 여러분의 가문도 하나님 나라건설을 위하여 위대하게 쓰임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