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어제 밤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짐을 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문제는 끝이 났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나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요? 왜요? 더 놀라운 소망인 부활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으시는 모습은, 참으로 처절한 패배와도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난밤에 십자가를 지셨지만, 이제 곧 내일 새벽에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실로 패배하는 것같이 보였으나, 그러나 그는 실로 패배하실 수밖에 없으셨기에 십자가를 지신 것은 아니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근본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본체로써, 죽음도 없고,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영원불변의 전능자로써, 단지 인류의 구속을 위한 한순간의 과정을 밟으셨을 뿐이셨던 것입니다.
다만 십자가라는 형벌과 죽음이라는 사단의 권세를 경험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싫고 힘드셨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처음부터 그것으로 예수님의 패배를 논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원래부터 죽음과 패배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는 급기야 부활하심으로써, 과연 그가 죽음이나 패배와는 상관이 없는 영존하시는 영광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지 자신의 하나님 되심만을 증명하기 위해 보여주신 모습이셨을까요?
아니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했고, 22절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분명 우리의 부활을 위한 부활이기도 한 줄 믿습니다.
그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 이제 누구든 그를 믿기만 하면, 둘째 열매, 셋째 열매, 계속해서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를 체험케 하시는 놀라운 영생의 문을 열어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죽음이라는 절대절망 가운데서도 능히 다시 살아나 영생과 영원한 승리를 누릴 수 있다는 절대소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장 3절은,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의 부활이 또한 우리를 위한 부활일진대, 우리는 분명 어떤 절망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나 놀라운 산소망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산 소망~~!!! 소망이라는 말 자체도 우리에게 굉장한 위로와 힘을 주는 의미가 있는데, 왜 소망이면 소망이지, 또 산 소망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소망은 세상에서 주는 소망과 같은 말뿐이기만 한 일은 절대로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 소망은 언제나 그 자체가 살아 있어서, 반드시 그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때문에, 산 소망, living Hope가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에 이런 소망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서 주는 소망은 무엇이든 다 불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분명 확실한 산 소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경험한 우리는, 그의 부활이 그리도 고대되고 또 고대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자라면, 지금 이 때가 가장 큰 기대 속에 그의 부활하심이 기다려지는 순간인 것이지요.
어제는 그의 고난으로 인하여 슬퍼하였지만, 그러나 오늘은 더 이상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부활하심을 인하여 더욱 놀라운 흥분 속에 그 부활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그는 반드시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온 인류를 죄의 사슬로 옭아매놓은 사망의 권세를 통쾌하게 깨뜨리고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도 부활하게 되는 동일한 능력을 그를 믿음으로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흥분되는 놀라운 순간입니까?
이에 고린도전서 15장 55절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고난과 시험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그 믿음으로 열심히 주안에서 수고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무엇이든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망과 같은 절대 실패와 아무리 실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어떤 몰려오는 패배감과 낙심 속에서도, 부활의 능력을 소유한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이와 같은 소망에 벅찬 마음으로 주의 부활을 믿음으로 기다리시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스칸디나비아에 페드로라는 한 어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아들과 함께 고기잡이에 나섰다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폭풍을 만나, 어선이 나뭇잎처럼 표류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는 칠흑같은 밤에 파도와 강풍에 맞서 몇 시간을 싸웠으나 방향과 기력을 모두 잃고 자포자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먼 곳에서 강렬한 불기둥이 솟구쳤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불기둥은 곧 육지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페드로는 사력을 다해 불기둥이 있는 곳으로 노를 저어 갔는데, 놀랍게도 그곳은 바로 자신이 사는 마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을 맞으러 나오면서 막 통곡을 하였습니다. 이 페드로가 너무나도 기뻐서 아내가 우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제 실수로 우리 집에 불이 나서 집을 몽땅 태웠어요. 이젠 어떡하면 좋아요?”
그 생명의 불기둥은 바로 페드로의 집에서 피어오른 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페드로의 가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때 페드로는 아내를 껴안으면서 밝은 표정으로, “여보, 고맙소. 당신이 실수로 불이 난 것이, 오히려 나와 아들의 목숨을 구했소. 만일 불기둥이 없었으면 우린 모두 침몰했을 것이오. 집에 불을 내줘서 고맙소이다.”
오히려 그는 불을 내준 아내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물질은 있다가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내 영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또는 더욱 놀라운 것으로 축복하시기 위해, 때로는 이처럼 참혹한 인생의 현장을 경험하게 하실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가 다시 부활하셔서 모든 믿는 자들의 산소망이 되셨듯이,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다시 일어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부활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기억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명의 불기둥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까짓 초가삼간이 불타는 아픔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놀라운 축복을 소유한 우리는,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또 다시 우리의 부활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복음주의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인 에릭 사우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성도의 부활로 끝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개의 부활절 사이에 살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의 부활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부활할 줄 믿습니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반드시 부활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기쁨과 믿음으로 큰 기대 가운데 예수의 부활을 기다리시는 경건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