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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방법(막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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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벙어리 귀신들린 소년의 치유와 그것에 관련된 사건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가와 마태는 이 사건이 변화산 사건 이후 얼마만큼이나 시간이 흐른 뒤에 발생하였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그러나 누가는 산에서 이튿날내려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바로 변화산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일어났던 사건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황홀한 시간을 보내신 지 하루가 지나 그 다음 날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니까, 큰 무리가 모였고,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습니다. 좋은 말로 변론이지, 실은 싸우고 있었다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15절을 보면,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이라고 했는데, 무슨 심각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를 물으셨는데, 무리 중 하나가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무엇을 변론하느냐고 했는데, 갑자기 제자도 아닌 무리 중 하나가 벙어리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려왔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죠?

    

그렇다면, 이 사람은 왜 이런 동문서답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을까요?

    

물론 지금 이 사람은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듣는 것보다도 분명 그 아들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 훨씬 더 다급하고 절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분명 이 말이 뭔가 예수님의 질문과 연관이 되어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죠?

    

그러므로 18절은 말씀합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무슨 문제가 생겨나고 있습니까? 이 사람이 이미 귀신들린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려왔었지만, 그들이 그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죠?

    

여기 상반절의 모습은 전형적인 귀신들린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질환자와 귀신들린 자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가 도대체 바리새인들과의 싸움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있지만, 그 다음 절은, 그 문제를 바리새인들과의 싸움의 문제 속에서 풀어가지 않으시고, 먼저 그 문제자체를 해결해 주시고 계심을 볼 수 있죠?

    

우리 주님은 역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사, 다른 것보다도 우리가 간구하는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시는 분이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9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벙어리 귀신들린 그 아들을 데려오라 하신 것은, 분명 고쳐주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냥 데려오지 않으시고,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셨던 것입니까?

    

이들 제자들이 이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무엇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믿음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 믿음이 없는 세대라는 말은, 제자들만을 말하는 것이었을까요?

    

아니죠? 오히려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을 두고 말씀하셨던 것이죠?

    

그렇다면, 예수께서 마치 분노하시듯이 하셨던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라는 말씀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셨을까요?

    

역시 제자들만이 아닌, 당시 모든 사람들을 두고 하셨던 말씀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20절에 예수님께로 그 아이를 데려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고, 저가 땅에 엎드러져 이러 저리 뒹굴며 거품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참으로 놀랍죠?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은 어떻게 귀신을 내어쫓으시고 계셨던 것입니까?

    

사실은 예수님이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귀신이 스스로 알고 도망갔던 것이죠?

    

그렇다면, 이전의 예수님의 이와 같은 귀신축사사역은 어떤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까?

    

역시 이 전의 경우들도 예수님이 귀신을 찾아내 쫓아내신 일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귀신들이 알아서 예수께 나와 사라져 버렸던 것이죠?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귀신을 어떻게 쫓아냅니까? 사실 예수님은 귀신이 스스로 알아서 도망을 갔지만, 우리는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인간인 우리와의 차이점인 것이죠?

    

그러므로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증거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은, 언제나 예수의 이름을 선포함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귀신이 쫓겨나는 것은, 예수 이름의 권세 때문인 것이지, 나의 능력 때문은 아닌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그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하시고, 그 아이의 아비는 어릴 때부터이니다 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2절을 보면,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시 귀신들린 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이 아이에게 귀신들린 일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를 밝히게 함으로,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원문을 보면, 지금 이 아이는 유소년이 아닌 청소년 정도의 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한창 성장해야 될 유년시절부터 오랜 동안 귀신에게 고통을 받으며, 불과 물에 자주 던져지는 죽음의 위협까지도 받아왔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아이의 아비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아직은 귀신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23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역시 무엇을 강조하시고 있습니까? 믿음을 강조하시고 계셨던 것이죠?

    

그러니까, 아이의 아비가 24절에 뭐라고 합니까? 소리를 질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하죠?

    

그리고 25절에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 쫓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믿음 없는 세대가 그 믿음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임을 알 수 있습니까?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죠? ‘주여 내가 믿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아직도 내 속에 남이 있는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므로 예수님이 29절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기도하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고, 그러나 부족한 믿음은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는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어떻게 귀신을 내어 쫓으셨습니까? 그 자신의 신적능력으로 내어 쫓으신 것이죠?

    

그렇다면, 이와 같은 역사를 위한 믿음의 간구란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만유의 주가 되셔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명령하시는 우리 주님의 능력을 가져오는 거룩한 방편이 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믿음의 간구로 날마다 우리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실 수 있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이 아이의 아비와 같이, 여러분의 문제가 그의 능력으로 해결되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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