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워싱턴메시야장로교회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1287

바아사의 반란(왕상 15:25-34)

$
0
0

지난 두 시간에는 남유다의 2대왕 아비얌과 3대왕 아사의 통치에 대해 살펴보았죠?

 

이제 오늘 본문부터는 사건의 무대가 남유다에서 북이스라엘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은 여로보암 왕가의 완전한 몰락을 다루는 부분으로서,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뜻이 현실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북이스라엘의 제 2 대 왕이 된 나답은 블레셋에게 빼앗긴 깁브돈을 탈환하기 위하여 출정했다가, 부하인 바아사에게 암살을 당하고 그 가족도 전멸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로써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조는 약 23년 만에 완전히 막을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선 이것은 남쪽 유다의 다윗 왕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죠?

 

하나님께서 얼마나 당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교훈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5절을 보면,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년을 다스렸다고 나오죠?

 

이것은 남유다의 2대 왕이 아비얌의 통치기간과 견줄 수 있습니다. 아비얌이 몇 년 통치했죠? 3년 통치했죠?

 

그렇다면, 이같은 아비얌의 짧은 통치기간과 나답의 짧은 통치 기간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없을까요? 있을 것 같죠?

 

본장 첫단락인 1절로 8절에 나타난 아비얌의 기사로 볼 때, 그의 짧은 통치 기간은 그의 죄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으로 볼 수 있으며, 나답의 경우도 그러하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런가? 26절을 보면, 정말 그렇죠?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

 

26절은 나답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입니다. 이것은 10절에 나오는 유다 왕 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는 표현과 정확한 대조를 이루고 있죠?

 

이런 점에서 볼 때, 본 열왕기서의 저자가 열왕들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출신배경이나 인간적 업적이 아니라, 그들이 과연 하나님과 얼마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큰 사업을 하고, 공부를 많이 하고, 업적을 많이 이루었느냐보다도, 바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인 줄 믿습니다.

 

그러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놀라운 업적도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나답은 어떻게 될 것인가?

 

26절 하반절에 아비의 길로 행하였다는 것은, 여전히 여로보암과 같이 산당을 만들어 놓고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27절을 보면, 결과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저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저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아까 말씀드린 대로 바아사는 나답의 신하였다고 했죠? 그런데 그가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반란을 일으켜서 어떻게 했느냐? 깁브돈에서 저를 죽엿다고 했는데, 깁브돈은,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곳이라고 했죠?

 

이곳은 언덕이란 뜻의 지명인데, 갓 지파 성읍 중에서 레위 지파 고핫자손에게 주어진 땅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성을 에워싸고 있었을 때 죽였다는 것이죠?

 

여기서 죽였다는 말의 원문은, 주로 전쟁에서 적들을 쳐서 죽였다는 의미의 단어를 썼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신하의 신분이었던 바아사가 왕권 찬탈을 위해서 마치 적을 죽이듯이 나답 왕을 살해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서 죽였다는 말의 원어로 쓰인 단어의 원형 나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심판의 주체가 되실 때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나답을 죽인 것은 바아사가 왕권찬탈을 위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결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국을 위해 블레셋이라는 이방인과의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나답을 바로 그 전쟁터에서 죽이고 모반을 한다는 사실이 도덕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일입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바아사가 나답을 배신했던 시기도 깁브돈 공략 때이고, 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시므이에게 배반 당하는 시기도 2차 깁브돈 공략 때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나답만이 아니라, 바아사도 좋지 않은 방법을 취하다가 심판을 받았음을 알 수 있죠?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세상에서도 비상식적인 일은 하나님도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유다왕 아사 제 삼년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9절은,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록된 바와 같이,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예언케 하신 대로 된 것이죠?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가계를 완전히 멸절시킴으로써 후환을 없애고 자신의 왕권을 확실히 다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도록 섭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30절은 이것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죠?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죄로 인함이며, 또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시킨 일을 인함이었더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키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될 줄 믿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우리가 자칫 아무 것도 아닐 일 같은 것을 하나님 앞에서 반복적으로 행함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반복적으로 행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시키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코람데오의 삶인 것이죠?

 

코람데오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며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제일 큰 청중이 되신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1 4 절은,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살펴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표정이 우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일그러지시고 화가 나시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언제 하나님이 우릴 봐도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1287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