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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왕상 16: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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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은 르호보암 이후 남유다 왕조와 여로보암 이후 북 이스라엘 왕조에 대하여 살펴보며, 과연 솔로몬 이후 우상숭배로 타락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알아보았죠?

 

흥미로운 사실은, 남유다는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에 이어 아사가 41년 동안 치리할 때, 북이스라엘은 4왕조 여섯 왕이 바뀌었다는 것이었고,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이나 다 똑같이 잘못을 해서 벌을 받았는데도,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왕조가 그치고 또 계속해서 다른 왕조들로 바뀌었던 반면, 남유다는 여전히 다윗의 왕조가 진행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믿음 좋은 그들의 조상 다윗때문이었다고 했죠? 하나님은 믿음 좋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고, 그래서 그 왕조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던 가운데 북이스라엘에서는 르호보암과 그의 아들 나답, 그리고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되었던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 또 다시 그 엘라를 죽이고 7일 동안 왕이 되었던 시므리, 그리고 왕이 된 지 7일 밖에 안되는 시므리를 죽이고 왕이 된 오므리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오므리의 아들 아합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다같이 29절을 읽겠습니다. “유다 왕 아사 제 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유다에서는 아사왕 하나가 계속해서 지금까지 38년동안을 통치하고 있었는데, 북 이스라엘에서는 많은 왕조들을 거쳐서 이제 오므리 왕조, 아합이 등장하고 있죠?

 

아합은 그래도 통치자로써 22년의 세월을 다스릴 정도로 정치생명이 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아합은 잘하고 있는 것이었던 것일까요?

 

이제 본문으로부터 시작하여 2240절까지 그와 관련된 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데, 사실 아합은 북이스라엘 역사상 우상숭배를 가장 왕성하게 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아합의 행적을 길게 다루고 있을까요?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암울하고 소망이 없는 시대에 어떻게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지키셨으며, 그러므로 그들의 신앙이 유지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아합의 이야기는 오늘날도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범죄하도록 밖에는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 가운데서 사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얻을 수 있는 소망을 담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 긴 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는 패역한 세대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교훈을 오늘부터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먼저 29절을 읽겠습니다.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앞으로 길게 언급된 아합 시대의 종교적 상황의 전반과 아합의 행한 악한 행적 전반을 간략하게 소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흐아브라는 단어는, ‘아버지의 형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얼마나 자식을 형제처럼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 30절을 보면, 그가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25절도 보면, 그의 아버지 오므리에 대한 평가가 똑같이 이처럼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죠?

 

역시 이들 부자는 죄악에 있어서 똑같이 누구보다도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형제였던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도로써 자식에게 올바른 신앙을 전수함으로 한 믿음의 형제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부친이 예수 안 믿고 우상숭배했다고 하면, 과감히 그것을 끊고 남유다의 아사와 같이 믿음의 길로 행하는 결단이 필요하죠?

 

그러면 그가 41년 동안을 태평성대를 이루며 나라를 통치하였던 것같이, 그도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아합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느냐? 31절은 범죄의 근원적인 발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31절을 읽겠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여로보암의 죄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겼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유다로 제사하러 가서 민심이 빼앗기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벧엘과 단에 산당을 세워놓고는 그 안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가 곧 여호와 하나님이라 했죠?

 

그런데 그렇게 섬기는 것은 오히려 더 가볍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뭘 더 무겁게 행했느냐? 지금 본문의 아합이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겼다는 표현은 아합이 저지른 죄에 비한다면, 여로보암의 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어떤 무겁고도 더 무거운 죄를 저질렀느냐? 31절 하반절에 그 힌트가 나오죠?

 

뭡니까?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먼저 엣바알이라는 이름 자체 부터가 우리에게 주는 뉴앙스가 영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무당 이름 같습니다.

 

여기서 엣바알이란, ‘바알과 함께한 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아합의 장인이 되고 있는 시돈왕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가 아니라, 바알과 함께 할 정도로 아주 바알을 잘 섬기는 자였다는 것이죠.

 

그는 다윗의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이 특심하였던 것처럼, 바알을 섬기는 신앙이 특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 배경이 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아스다롯 신전의 제사장이었는데, 히람의 후손이었던 펠레스 왕을 살해하고 왕 위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알의 제사장 출신이니까, 바알의 신앙이 특심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딸의 이름을 이세벨로 지었다고 했는데, 여기 이세벨이라는 이름도 문제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 이세벨의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고결한, 순결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학자들은 그의 이름이 바알제불제불이 변형되어 이세벨이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역시 이세벨도 바알의 열렬한 숭배자임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죠?

 

결국 이제 이후로 드러나는 그의 신앙도 보면, 아합과 정략 결혼을 한 후에 바알 선지자들은 우대하고, 여호와 선지자들은 몰살시키려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아버지 엣바알이 쿠테타를 일으켜 나라를 정복하고 그 나라 시돈을 바알의 나라로 만들었던 것처럼, 이 이세벨로 북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정복하여 바알의 나라로 만들고자 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세벨은 엘리야의 예언에 따라 예후에게 죽임을 당하고 개에게 그 시체가 뜯어 먹히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됨을 볼 수 있죠?

 

뿐만 아니라, 계시록 220절에서는, 그의 이름이 모든 세대에 음란한 우상숭배를 한 자의 상징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음란한 우상숭배자였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아합은 왜 이세벨과 결혼했는가? 이것은 지극히 정략적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북쪽의 아람(다메섹)의 침략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옆의 강한 북방나라 시돈과의 동맹이 필수적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한국이 북한이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미국과 동맹을 맺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역시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려 하지 않고 열방의 힘을 의지하려 함으로 크나큰 우상숭배의 범죄도 쉽게 간과했다는 것이죠?

 

솔로몬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나타나는 우상숭배의 죄악도 근원적으로보면, 다 이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려 하지 않음에서 비롯됨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었다는 것이죠?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노엽게 해드려서는 아니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무엇보다도 물질이나 사람보다도 오직 하나님 한분만 의지해야 하는 이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도 이같이 새벽기도에 나오게 된 것이지요?

 

결국 본문에서 아합은 이세벨로 인하여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당과 그 속에 단을 세우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합도 잘못된 사람이지만, 여자 하나가 잘못 들어오니까,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더 사악한 우상숭배자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을 집안에 들여놓는 것이 축복인 것이죠?

 

그렇다면, 34절의 말씀은 무슨 말인가? 다같이 34절을 읽겠습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느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이것은 여호수아 626절의 성취였습니다. 여호수아 626절을 보면,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며 여리고성의 재건을 금지하셨는데, 어김으로 그 말씀과 똑같이 된 것이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상숭배의 집을 짓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 교회를 건축하여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만 의뢰하시며 주의 몸된 교회를 건축해 나가는 거룩한 건축자들로써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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