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어제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고, 그래서 애통하면 위로의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죠?
그리고 그 위로의 복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곁으로 부르시는 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헬라어로 파라칼레오라고 했는데, 이 단어의 명사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파라클레토스입니다. 무엇일까요?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에는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애통해 하며 간구해 주신다고 했죠?
바로 그 성령께서는 우리가 애통할 때에도 역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통하는 자가 받는 복은,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이란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해도 해도 안 되는 어떤 문제 가운데 놓여 있습니까? 그러면 애통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그가 우리 곁에 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5절을 읽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여기 온유한 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원문에서 쓰인 온유는, 프라우스 라는 헬라어를 썼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예수님의 품성을 묘사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온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70인역으로 번역된 헬라어 구약성경에서는, 억눌리고 속임을 당하고 착취를 당하나 이에 대하여 무방비인 무력한 사람을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온유하지 못한 사람에 의해 자신이 손해를 보는데도 그냥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것 같은 사람이요,
그래서 자신이 아주 잘해 주었는데도, 자신을 배반하고 자신의 주변에서 자신을 욕하고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 함에도 가만히 있으며, 오히려 그를 용납하고 받아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바보같죠? 그렇다면, 이사람은 왜 그럴까요?
그가 정말 계산할 줄 모르는, 지혜롭지 못한 바보라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아무 것도 대처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서 그럴까요?
아니죠? 예수님은 결코 미련하거나 능력이 없으셔서 온유하셨던 것이 아니시죠?
그렇다면, 여기서 온유한 사람은 왜 이처럼 미련하고 무능력해 보이기까지 손해를 보고 피해를 보면서도 가만히 그 모든 것을 다 용납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런 사람이야말로 그 억울함과 고난과 핍박과 손해 속에서도 오직 겸손하게 여호와의 도움을 바라며 여호와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일의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당하여 지혜롭게 행한답시고 거짓을 행하거나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로 인하여 여러분이 순간적인 어려움은 피할 수 있어도, 결코 그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축복은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주실 것을 굳게 신뢰하는 가운데, 결코 요동하지 말고, 그래서 겉으로는 소극적이며 무기력해 보여도, 그 안은 심지가 굳고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은 무엇인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하죠?
여기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땅을 상속받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땅은 어떤 땅일까요?
이것은 원문을 보면, ‘그 땅’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정말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기업의 터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현세에서 이루어지는 축복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마치 히브리서 1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하여 하늘에 한 성을 예비하셨다고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여기 땅의 의미는, 영국교와 구교의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도 온유한 모습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났던 청교도들이 차지했던 풍요로운 땅 미국과 같은 지상의 실제적 땅의 의미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이 아난데일에 우리 메시야 교회의 큰 땅의 기업을 분명 주신 줄 믿습니다. 앞으로 그 기업이 얼마나 더 커질 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유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그 기업이 지경을 넘어 더 넓어지고 커질 수 있는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과는 전혀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힘과 세력과 능력과 자신과 공격성이란 관점에서 땅을 소유하려 하죠? 이것이 세상의 정복관이요, 소유관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네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너의 세력과 능력을 계획하고 나타내면 나타낼수록 너는 성공하며 처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습니까? 완전히 다르게 말하죠?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마인드는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세상의 모든 땅은 오직 하나님의 것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는 것이 땅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땅을 갖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과 술수를 동원하거나 또 성질부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 분만 기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온유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온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이 부분에 있어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이번 특새를 통하여 하나님께 이 부분의 부족을 회개하며 채워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신뢰함으로 온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미국 청년 하나가 아주 똑똑하고 의지가 강해서 자기 딴에는 자기가 한다 하고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자신만만 패기 있는 모습으로 장래의 출세를 위해 군에 장교로 입대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군 생활을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청년은 너무 똑똑하고 또 그래서인지 너무 똑똑한 척하고, 또 너무 완벽하려해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는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농촌으로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큰 야망을 가지고 있던 아주 똑똑한 청년이 그런 삶을 살기란 너무나 힘든 것이었지요.
그래서 그는 거기서 갈등을 가지고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그러다 얼마쯤 지나 이제는 그런 자신에 대해 너무나 힘들어 하면서 마침내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교만이 깨어집니다. 아만과 자만이 깨어집니다. 그리고 자아가 깨어집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그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지내며 온유해 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나 이제는 온유해져서 처음에는 장교로 군대에 들어갔지만, 이제는 사병으로 입대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교였던 사람이 사병생활하는 것이 쉽습니까? 그런데요, 그는 사병으로 들어가 고생을 하면서 또 다시 거기서 온유와 겸손과 순종을 배우고 익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라운 사실은 그런 가운데 그는 점점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아서 장교가 되었고 또 계급이 올라가서 마침내 그의 덕과 그의 온유함과 인격이 링컨 대통령에게 알려져서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 훗날 18대 대통령이 된 그랜트 장군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은 고난을 통해서라도 온유해져야 성공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진정한 온유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길들여지는 것이죠? 그러므로 2012년도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온유하게 해달라고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온유해질 때, 2012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땅을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