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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 마음이 청결한 자(마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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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는 복입니다. 지난시간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의에 주리고 목마를 정도로 공의로운 삶을 추구하며 사는 자는 또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주셨죠?

 

그러나 그 긍휼은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이나 연약한 점을 용서하고 관용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사람의 부족함까지도 적극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여기서도 우리는 의의 문제가 굽혀지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은 그 뒤를 이어 갑자기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는 복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펴온 팔복을 볼 때, 처음 심령이 가난한 자로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더 발전되어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도록 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지금 여기 마음이 청결한 자라는 말씀은 왜 여기 나오며, 또 이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먼저 본문의 의미를 하나 하나씩 뜯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여기 마음이란 카르디아라는 greek 단어를 썼는데, 이것은 영혼을 가리키는 프뉴마라는 단어와 본질적으로 같은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시 우리 내면의 어느 한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 전체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이 알고 느끼고 결정하는 인격전체의 기능, 다시 말해 지정의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지식이 청결한 것이 되어야 하고, 또한 그것은 그 사람의 감정이 청결한 것이 되어야 하고, 또한 그것은 그 사람의 의지까지라도 전부 다 청결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청결은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깨끗함, 다시 말해서 순수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마음의 욕심을 포기하는 자라면, 여기 마음이 청결한 자는 아예 그 마음에 포기할 욕심조차도 없는 사람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더 축복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죠?

어떤 것이 더 어렵습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죠?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지금 팔복이 역시 하나 하나가 지나가면 갈수록 더 점진적으로 발전되고 더 많은 것이 요구되는 성도의 상태를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은 왜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여기 이것은 인간의 외적 경건이나 의식적 정결함에 대조되는 내적 정결을 보다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외식하는 유대인들을 보는 예수님의 안타까운 시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당시 유대인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이 외적으로는 얼마나 경건하고 정결한 척 했습니까?

 

그들은 기도할 때에도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율법의 의무와 도리를 다 하고 있음을 나타내려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과연 그런 그들의 기도와 수고와 노력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이 될까요? 과연 one penny의 가치라도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의 모든 것은 우리의 인격과 마음 중심으로부터 순수하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면,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는 'nothing'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진정한 것이 될 수 없음을 넘어, 하나의 가치 있는 것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을 위선이라고 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 여러분 예수님 공생애 동안 가장 분노하시고 가장 심한 욕을 하셨던 때가 어느 때입니까?

 

바로 그들이 위선하는 것을 참지 못하셨을 때라는 사실입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여러분 누가 외식하는 자라는 것입니까? 사실은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비판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왜요? 자신은 허물이 없는 줄로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은 뭐든지 다 잘하고 열심히 사람이니까, 비판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아무리 다른 것을 다 잘한다 할지라도 그런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은 마음이 청결치 못한 자다. 다시 말해 외식하는 자요, 위선자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의 수고와 헌신은 정말 하나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심으로 한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런 수고와 노력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오직 그 마음이 얼마나 청결하느냐?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마음이 청결치 못하면, 그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수고가 결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죠? 말씀을 들어도 시험에 들고, 기도를 해도 시험에 들고, 뭐를 해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다는 것입니까? 마음이 청결치 못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열심보다도 먼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항상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질까요? 회개해야 하는 것이죠?

 

시편 51편의 다윗과 같이,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그렇다면, 여기 우슬초는 오늘날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인 것이죠?

 

날마다 죄구덩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은 삶을 사는 우리는 날마다 예수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남의 잘못과 세상의 불의를 보기 이전에, 늘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기에 부지런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2012년에는 먼저 여러분 자신을 보며 늘 정결한 마음을 갖기에 힘쓰심으로 그 깨끗해진 마음 가운데 늘 하나님이 마음껏 채워주시는 은혜를 만족함으로 누리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후 생략, 원고가 저장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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