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뉴에이지운동과 스포츠(올림픽)
올림픽의 기원은 B.C.776년 고대 그리스의 유명도시인 엘리스의 왕이 제우스신과 올림피아 산신들에게 성대한 제사를 드리면서 그리이스의 젊은이들을 모아 운동경기를 갖게 되었는데, 올림피아 신에게 바치는 경기라 하여 '올림픽'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올림픽대회'는 4년마다 한 번씩 열렸으며, 경기종목은 단거리경주(약200m)뿐이었으나, 열릴 때마다 점점 늘어 권투, 레슬링 등 26종목까지 늘었다. 경기의 우승자에게는 월계수 잎으로 만든 월계관을 씌워주고 명예와 상금(돈)을 주었다.
그러나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자, 로마황제 데오도시우1세는 종교상의 이유(?)로 '올림픽대회'를 중단 시켰다. 이로써 고대 올림픽은 A.D.393년, 293회로 그 막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지금의 올림픽은 '근대올림픽'이라 부르는데, 프랑스 삐에르드 쿠베르땡 남작에 의하여 부활되었다. 그는 프랑스 젊은이들의 사기진작과 세계 젊은이들과의 친선 및 우호를 다지고 더 나아가 전쟁 없는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올림픽대회'의 개최를 세계에 공포하게 되었다.
드디어 1894년 6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회의를 열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하였으며, 1896년 올림피아 제전(際典)의 발생지인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로부터 100년후, 4년마다 한 번 씩 개최된 올림픽대회는 1996년 7월 19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에서 100주년 기념대회를 맞게 됐다. 애틀랜타 올림픽 대회에는 I.O.C.회원국 197개국들의 전원참석으로 선수단, 임원진, 관광객 등 200만 명이 모이는 사상최대의 축제라고 시작 전부터 들떠있었다. 우리 나라도 사상최대 규모인 427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고 한다.
'올림픽 성화(聖火)'는 애틀랜타 올림픽이 시작되기 4개월 전인 3월 29일 그리스 올림피아 신전에서 성화 리허설을 갖고 그리이스 각 도시를 순회한 후, 15,000마일을 달려 7월 19일 애틀랜타 주경기장에 도착했다.
'올림픽'은 올림피아 산신(山神)들에게 젊은이들이 충성을 다짐하는 경기대회이다. 세계의 모든 정치, 종교, 권력도 '올림픽 신(神)'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다짐하고, 그에게 명예와 부(富)를 구하기도 한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예수의 젊은이들이 '성령불'대신 '귀신의 불'을 들고, '천국 면류관'을 얻기보다 귀신이 주는 '금메달' 하나 얻기 위해 생명 바쳐 뛰고 있음을 아는가! '올림픽'에 열광(熱狂)하는 작은 예수들의 모습을 보고 슬피 탄식하시는 주님의 고독한 눈물을 보라!
'올림픽'보다 '예수'에 더 열광(熱狂)할 수는 없을까? 사탄은 어느새 또 다른 옷을 입고 우리 곁에 다정히 앉아있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그의 많은 옷 중에서 그가 제일 자랑하는 자주빛 드레스(계17:4)이다.
8.뉴에이지운동과 노벨 종교상(템플턴상)
얼마전 훈장을 거부한 한 여성운동단체의 대표의 경우는 단순한 명예의 양(量)과 위선적인 형식보다는 명예의 질(質)과 내용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것도 군사정권도 아닌 문민정부의 훈장을, 단지 함께 훈장을 받을 사람이 과거에 군사반란과 부정축재로 얼룩진 군사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를 과감하게 던져 버렸다. 주위에서는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도 그것은 그녀 개인보다는 한국여성계의 명예가 걸린 한국여성 전체의 자존심(自尊心) 때문이었으리라 본다.
이 일을 보면서 얼마 전에 모 기독신문에 연재된 바 있던 과거 군사정권에 협력한 교계 지도자들의 위선에 대하여 군사반란의 동조자로 법원에 고소한 어느 정의로운 목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나간 과거의 잘못을 덮어줄 수 없는가?" 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그것은 주님의 명예와 한국교회의 자존심이 걸린 영적 문제이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름 부어 세우신 교회의 목사, 그리고 교계를 대표한다는 지도자는 개인의 명예보다는 당연히 주님의 명예와 교회 전체의 자존심을 앞세우고 자신의 모든 언행을 말씀과 성령으로 분별하여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교회를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을 주님께서 맡기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명 '종교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賞)이 있다.
템플턴상은 1972년 영국의 죤 템플턴 경(Sir John M. Templeton,83세)에 의하여 제정된 '종교상'이다. 그는 범신론자이며,세계범종교의회(CPWR-Council for Parliamentof the World's Religions)의 창립멤버였다. 그들은 해마다 세계의 150여개의 종교단체(로마 카톨릭교, 동방정교,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접신론자, 심령술사, 점술사 등)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모여 인류의 평화를 위해 가장 많은 봉사와 희생을 한 종교인을 선정하여 수상자의 노고를 치하하고 상금으로 107만 달러(약8억원)를 지급하고 있다.
이 상을 받은 사람은 우리가 존경하는 유명인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테레사수녀(1973년), 마거릿 대처여사(1976년), 빌리 그레이엄목사(1982년), 솔제니친(1983년), 한경직 목사(1992년), 척 콜슨 전도자(1993년) 등이다. 그리고 1996년에는 C.C.C. 국제총재인 빌 브라이트 박사가 영광스럽게(?) 뽑혔다고 기독교계의 경사(慶事)요, 축하라고 자랑하고 있다. 귀신들의 박수 갈채 소리에 소름이 끼친다. 갈멜산의 엘리야 선지자가 있었다면 모두 단 칼에 쳐죽였을 것을…!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 동안 수고하여 쌓아올린 천국에서 받을 상을 세상에서 이미 다 받았으니(마6:1-5), 이제 천국에는 썩을 면류관만이 있을 것이고, 교회 전체의 영적인 명예와 자존심을 사탄과 그의 졸개들 앞에서 어이없이 짓밟혔으니 마지막 영적 전투에서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것이며, 또한 발람이 탐낸 가증스러운 복술(卜術)의 예물을 하나님의 거룩한 전(殿)에 가져왔기 때문(민22:7; 신23:18)이다.
차라리 훈장을 거부하고 한국 여성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킨 여성 대표가 더 존경스럽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상이라고 아무한테나 받아서는 안되며 상금 준다고 무조건 덥석 받아서도 안된다 우리 주 예수님의 명예와 교회의 자존심을 함부로 팔지 말자!
9.뉴에이지운동과 W.C.C.
W.C.C.는 1948년 암스텔담에서 44개국 147교회의 351명이 모여 제1차 총회를 가졌다. 당시 세계는 제1, 2차 세계대전의 쓰라린 전쟁의 고통이 분열된 교회 때문이라는 책임을 통감하고, 세계교회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감격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이 총회는 성경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은 아니며, 구원의 보편화를 인정하고, 회개는 일종의 인식(認識)이며, 구원은 지상에서의 '평화'를 가리키는 것임과 개인의 도덕적 영적 생활과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을 결의하여 많은 실망을 주었다. 이것은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최초 세계선교사총회의 목적인 순수한 선교운동의 성격을 외면하는 변질된 에큐메니칼운동이었다.
그후 W.C.C.는 제2차 에반스톤 총회(1954년), 제3차 뉴델리 총회(1961년)를 거쳐 복음전파에 대한 선교추진 보다는 독재정권, 인종차별, 여성운동, 노동문제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토의하였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은 집단적이고 국가적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성과 오는 세계의 한 시범적인 단체이며, 교회의 사명은 단지, 사회의 봉사라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신학을 주장하였으며, 아울러 교회와 세상사이, 기독교와 이방종교사이의 구별을 없애는 '보편구원설(普遍救援設)'을 W.C.C.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으로 채택하였다.
이어서 열린 제4차 움살라 총회(1968년)에서는 사회, 경제의 정의(正義)와 해방(解放)을 강조하며,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합법화(合法化)하여 인종차별 투쟁사업에 물질적 지원까지 하는 등 복음적 선교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제5차 나이로비 총회(1975년)에서는 구원의 복음과 선교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해방'이라는 말로 재 정의하였고 예수그리스도를 해방자로 묘사하여 해방신학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 총회에는 드디어 로마카톨릭,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이 참석하여 혼합주의(混合主義)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제6차 뱅쿠버 총회(1983년)는 소련 및 동구 공산권대표들 까지 참석하여 막스주의적 사회주의 비전을 높이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모색하고, 타종교도 역시 하나님께로 가는 또 다른 길임을 인정한 총회였다. 제7차 캔버라 총회(1991년)에서는 카톨릭,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외에도 점술가, 심령술사, 마술사, 무당 등을 포함한 세계의 15개 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하는 대규모 종교혼합집회를 갖고, 세계종교의 통합과 단일성을 외쳤다.
이와 같이 종교 통합 운동을 추구하고있는 W.C.C.를 과연 기독교 단체로 인정할 수 있을까? W.C.C. 산하에는 각 나라마다 이러한 정책을 지지하는 N.C.C. 가 있는데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 (K.N.C.C.)에 가입한 현 교단은 예장통합, 기감, 기장, 기하성, 구세군, 성공회, 복음교회, 한국정교회, 순복음이다.
한국교회여! 주 예수의 종들을 유혹하는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몰아내고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큰 환난에 던지실 것이다(계2:20-23).
한국교회여! 세계종교통합을 꿈꾸는 뉴에이지운동을 과소평가 하지 말고, 부정한 곳에서 나와 따로 거하여 주님의 진노를 피하자(고후6:14-7:1; 계18:4,5)!
10.반 뉴에이지운동의 기수-로잔대회
스위스 로잔(Lausanne)대회는 W.C.C. 뉴델리총회(61년)이후 급진되어진 타종교와의 혼합정책과 다윈주의를 배격하고 변질된 에큐메니칼 선교정신을 바로잡기 위하여, 1974년 세계 150여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로서 이루어진 세계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결의된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ment)'은 타종교의 구원의 가능성이나, 개종을 위한 복음선포에 목적을 두지 않는 타종교와의 대화를 주장하는 것을 단호하게 정죄하고 있다. '로잔언약'의 일부 항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떠한 형태의 혼합주의와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이념을 통하여 똑같이 말씀하신다는 뜻에서 진행되는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킴으로 이를 거부한다. 예수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신인(神人-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으로 죄인을 위한 유일의 대속물로서 자신을 주셨고,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예수의 이름 외에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이름은 없다"
이들은 1989년 7월, 마닐라에서 약 170개국에서 3,000여명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전하자'라는 주제와 1910년 에딘버러 총회의 근본취지에 맞게 '오직 선교'만을 강조한 '모든 교회가 온 세계에 온전한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이라는 부제를 갖고 모였으며, 21개 항목의 신앙고백과 12개 항목의 주제설명을 선언문으로 채택하였다. 이 '마닐라선언문'의 강조 점은 다음과 같다.
"타종교나 이념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또 다른 길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주장한다. 만일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되지 못한다면,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심판에 이르게 된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마닐라 선언문 제7항)
"아무리 종교적인 사람들일지도 그리스도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종교들과 영혼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동등한 가치로 인정하는 상대주의(Relativism)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다른 신념들과 혼합시키려는 혼합주의(Syncretism)를 둘 다 거부한다. 과거에 우리가 타종교인들에 대해 무지하고 거만하게 대적의 태도를 취해온 잘못에 대하여는 회개한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전도에서든, 심지어는 여러 신념들 간의 대화에 있어서도 우리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증거할 것이다."(마닐라 선언문 주제설명 제3항)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지역적으로는 여러 교회들로 나누인 것 같으나, 실질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한 몸이므로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안에서 교단,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연합이다(요17:11).
'로잔대회'나 '마닐라대회'는 우상에게 무릎꿇지 않은 7000명과 같이 주님께서 남겨둔 자들의 모임이었다(롬11:3-5).
그러나 W.C.C.는 예수께 대한 순결을 버린 간음한 음녀요 가증스러운 혼합종교단체로 전락하고 만 것이 오늘날의 가슴아픈 현실이다. 나의 교회(교단)는 과연 어느 편에 지금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