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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혜? 하나님의 뜻?(왕상 1: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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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1절로 10절은, 다윗 왕이 노쇠하여 국정을 잘 돌보지 못하는 틈을 타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왕위를 찬탈하려는 반란을 일으켰음을 보도하였습니다.

    

이제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아도니야의 반란을 저지하고 솔로몬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하는 나단과 밧세바의 노력과 성과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내용이 시작되는 본문 11절을 원문에서 보면, 히브리어에서 계속적인 용법으로 사용되는 와우가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아도니야가 왕위즉위식을 거행하고 난 사실을 알고는 즉시 이들이 행동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같이 11절을 읽겠습니다.

    

나단이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고하여 가로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됨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니이다.”

    

아도니야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샘터에서, 그것도 바로 예루살렘 근처의 샘터에서 즉위식을 했음에도 다윗이 알지 못하였다는 말은, 상당히 의외라고 할 수 있죠?

    

왜 알지 못했을까? 아마도 관료들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내정한 다윗에게 이 사실을 고의적으로 은폐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어 이제 아도니야가 자신의 지지세력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위험한 상태로 번지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나단 선지자는 즉시로 이 하나님의 뜻과는 대치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어쩌면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던 것이죠?

    

주의 종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는 생명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먼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갔는데, 왜 그랬을까요? 왜 자신이 직접 들어가지 않고 밧세바를 찾아갔을까요?

    

밧세바는 다윗으로부터 솔로몬에게 왕위를 주겠다는 맹세를 직접 들은 당사자였기 때문이겠죠?

    

그러므로 나단 선지자는 밧세바에게 솔로몬을 구할 계교 베풀기를 허락해 달라고 하면서, 밧세바로 다윗에게로 들어가서 전에 다윗이 맹세한 솔로몬에게 왕위를 주겠다고 한 약속을 리마인드 시켜주고, 지금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라고 말하죠? 이것이 12절로 13절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14절을 보면, 누구도 함께 따라가겠다고 말합니까?

    

나단 자신도 들어가겠다고 말합니다. 나단 역시도 다윗의 침실출입이 자유로웠던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단의 지혜인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지혜가 되겠습니까?

    

밧세바는 다윗의 약속, 인간의 약속을 리마인드 시켜주었던 것이고,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 나단은 누구의 약속을 리마인드 시켜주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겠죠?

    

따라서 나단의 전략은 매우 탁월한 전략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나단은 다윗의 입술을 통하여 맹세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동시에 리마인드 시켜주면서, 어떤 면에서는 다윗에게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이에 밧세바가 다윗 왕에게 들어가 나단 선지자가 시킨 대로 고합니다. 그리고 아도니야가 그렇게 왕위즉위식을 했는데 솔로몬은 청치 않았다고 고합니다.

    

또 그리고는 온 이스라엘이 누가 왕 위를 이을 것인지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아주 감정을 터치하는 말을 하고 있죠? 21절을 읽겠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 열조와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 무슨 말입니까?

    

만일 다윗이 빨리 이 사태를 마무리해서 다윗의 약속대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면, 이들 아도니야의 즉위식에서 쇠외되었던 밧세바와 솔로몬 모자는 대역죄인이 되어 죽을 것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때마침 계략에 따라 나단선지자가 들어와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27절을 보면, 나단 선지자는 거기에다 더 강한 어조의 항의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것이 내 주 왕의 하신 일이니이까, 그런데 왕께서 내 주 왕을 이어 그 위에 앉을 자를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여기 한글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지만, 원무을 보면, ‘진실로라는 감정이나 의문을 강하게 나타내는 불변사 이라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나단은 왕이 정녕 아도니야를 세우신 것이냐고 강하게 추궁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다면, 어찌 하나님의 사자인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느냐는 것이죠.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될 수 없는 것입니까?

    

신정국가에서는 충분히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다윗은 이제 어떻게 할까요?

    

28절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를 부르라 하는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29절로 30절을 읽겠습니다.

    

    

왕이 가로되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날 그대로 행하리라.”

    

먼저 다윗이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한다고 했으니까, 이것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그 진심은 자신이 맹세한 것을 지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29절에서 지나칠 수 없는 다윗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지금 하나님을 고백함에 있어서,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라고 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기 다윗이 사용한 환난이란 단어는요, 괴로움, 고난, 등 모든 극심한 고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다윗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은, 다윗이 일생동안에 걸쳐 겪었던 모든 극심한 고난, 그것은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 극복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음을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라는 것이죠.

    

사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다윗은 유능한 장군이며, 존경받는 왕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다윗의 입장에서 그가 이렇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솔직히 전부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어떤 성공 후에도,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 있어서 특히, 하나님의 은혜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니까, 다윗의 지금 이 말은 아주 진실된 말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다윗에 의해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러나 여러분 솔로몬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누가 한 일이겠습니까?

    

다윗이 한 일입니까? 나단 선지자나 밧세바가 한 일입니까? 아니죠? 무슨 일이든 오직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밖에는 없는 줄 믿습니다.

    

밧세바의 간청이나 나단의 지략이나 다윗의 결단성 있는 약속이행도, 결국은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방편이 되었을 뿐인 것이죠.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의 왕을 세움으로, 다윗시대보다도 더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더욱 모든 일이 잘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결과적으로 노쇠하였지만, 아직은 정권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자의적으로 정권에서 물러났음을 볼 수 있죠?

    

어쩌면 다윗의 입장에서 욕심을 좀 낸다면, 지금 왕이 된 아도니야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좀 더 이스라엘의 왕으로 군림한 후에 솔로몬에게 자리를 넘겨 줄 수도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음으로 결단을 하였던 것이죠.

    

결국 하나님의 뜻 가운데 결단하는 삶이 항상 우리 삶에 좋은 결과물을 가져다 줌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단하셨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여러분의 삶을 모든 영역과 의무에서 구체적으로 결단하십시오. 반드시 여러분의 인생이 더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오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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