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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워싱턴메시야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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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칩(666짐승의 표)에 대한 마지막 경고 예일교회 진효성목사


2012년 7월 22일 주일 풍경 1

2012년 7월 22일 주일 풍경 2

[2012-07-22] "너는 행복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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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2]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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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9일 주일 주보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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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폭발 무장사역  
오늘 오후 1:00에 중보기도실에서 전도폭발 무장사역으로 모입니다.
* 메시야 평생교육원 교사회   
다음 주일(8월 5일) 1:30에 본 교회 평생교육원 교사회가 있고, 
8월 11일(토) 5:00에는 전체 교사회가 본 교회에서 있습니다.
* 2012 메시야잔치 준비위원회  
오는 수요예배(1일) 후에 새가족실에서 메시야잔치 준비위원회로 모이겠습니다.
1기부터 6기까지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 워싱턴 개혁장로회신학교 이사회  
오는 화요일(31일) 오후 7시에 본 교회에서 워싱턴 개혁장로회신학교 이사회가
있습니다. 
* 니카라과 단기선교를 위한 릴레이 금식 기도와 도네이션
8월 9일부터 15일까지 있을 니카라과 단기선교와 선교팀을 위한 릴레이 금식
기도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선교 활동을 위한 도네이션을 받습니다. 품목은
옷, 신발, 전자제품 등이 필요하오니, 도움을 주실 분들은 다음 주일(5일)까지
윤바른 전도사, 김주언 선생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청년부 수련회  
청년부 수련회가 다음 주일과 월요일(8월 5-6일)에 있습니다.
* 생명의 삶 8월호   
생명의 삶 8월호를 신청하신 분들은 본당 입구에서 수령해 가시기 바랍니다.
* 무료 검도교실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에 친교실에서 무료검도교실이 열리고 있습니다. 
대상은 4학년 이상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게시판 참조).

* 교우 동정
* 한국방문: 김정숙(A) 권사, 김정숙(B) 권사, 김진영(B)집사, 오석영 청년, 윤용상 집사
* 결혼: 임경자 권사 장남 (8월 14일 일본으로 출국)

김명현 교수의 창조과학세미나[1-1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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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겸손의 차이/ 데이빗 윌커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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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겸손의 차이 

 

 

겸손한 사람은 고개를 떨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하며 자신을 낮추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모든 것에, 모든 상황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이 그를 인도하시고 힘을 주시고 북돋아 주셔야만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이 없으면 자신은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교만한 사람은, 그 반대로, 어느 정도 하나님을 사랑할지는 모르나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교만의 뿌리는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이론, 기술과 능력에 기초해서 결정을 내립니다.

그는 “하나님이 나에게 훌륭한 지성을 주셨고 내가 그것을 사용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까지 모두 그분께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지요,”

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보다 높은 위치에 있거나 유명한 사람에게는 귀를 기울일지 모르겠으나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받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의로운 판단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진리를 증언할 성령님이 계시기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교만은 독립이고 겸손은 의존입니다. 

겸손한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조언 없이는 움직이지 않고, 결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의로운 사람의 발걸음은 주님이 명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독립적인 영의 발걸음에게는 명하실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전적인 통제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분께 이것을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


- 데이빗 윌커슨, daily devotion 중에서 -

 


겸손한 자와 겸손한 척 하는 자의 차이



나는 주변의 성도들에게 겸손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보이도록 자기를 감추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식은 나의 겸손이라는 멋진 장식품을 보고 속은 것이지 나를 통해 겸손한 사람을 본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겸손은 단지 교만한 자아를 감추기 위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겸손이라는 멋진 장식품으로 포장된 나를 바라본 사람들은 나를 겸손한 자로 본다. 결국 겸손은 나의 외모를 꾸미는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겸손”이란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사실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지위가 낮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보다 겸손한 척 하기가 더 쉽다.


왜! 겸손한“척”이라고 했는가는 진정한 겸손은 이런 조건에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위가 높은 사람이 겸손한 척 하기 쉬운 것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매력, 즉 겸손한 사람이라는 칭찬과 그런 사람으로 추앙 받게 되는 것 때문이며, 그러면서도 결코 자신이 그런 사람으로 평가 절하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위가 낮은 사람이 겸손한 척 하게 되면 원래 낮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를 마치 그런 사람으로 취급해 버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겸손한 척 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마다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자신을 지극히 낮은 곳에 가져다 놓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자신의 어떠함을 높게 평가하는 순간 그에게서 진정한 겸손은 그 높이 만큼 멀리 달아나 버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나은 사람으로 인정 할 때 겸손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자아는 스스로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 보다 높은 위치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임으로 자신의 인품을 은근히 뽐내기를 좋아한다.


나는 참으로 겸손을 지향하지만 어느새 지속된 그 겸손은 나의 못나고 수치스러운 부분들을 감추고, 더 나아가 아름답게 치장하는 장식구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의지로 겸손에 이르려는 노력, 즉 주님을 배제하고 스스로 자기 의를  이루려는 무모함 때문에 생겨난 "겸손이라는 자기의(義)"로 육신의 열매를 맺어 자신에게 비춰진 겸손이라는 영광의 열매를 스스로 따 먹게 된 것이다. 그것은 주님과 전혀 관계없고 천국과 관계가 없는 육신의 열매, 즉 자신의 영광으로 열매를 맺어 결국 주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을 말한다.



그러면 누가 겸손한 사람인지, 겸손한 척 하는 사람인지를 알아보자.


테스트를 위해 우리는 다음의 고백이 자신의 고백이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해 낼 수 없는 참 못난 사람이고, 무식하고, 거짓말쟁이에다, 음란하고 폭력적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익한 내가 이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나의 어떤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고백을 해 놓고 "겸손한 척"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 말대로 믿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그것은 과거지사이고 현재는 자신이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보이기 위해 이전의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고 그것을 통해 겸손한 사람으로 비쳐지기를 바라서 그런 고백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이 고백에 대하여 그 말이 맞다고 맞장구쳐주고 “맞아!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라고 하면 당장에 화를 내거나 입을 닫아버린다.


아니면 “당신은 아무것도 해 낼 수 없는 참 못난 사람이고, 무식하고, 거짓말쟁이에다, 음란하고 폭력적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당신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다.”라는 말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게 되었다고 하자.


그 때 몹시 화를 내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든지, 아니면 심지어 멱살을 잡거나 한대 후려 갈기고 싶은 미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낮아짐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항의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에게 돌아올 칭찬과 같은 어떤 결과 때문에 겸손한 척 한 이지, 결코 겸손한 자가 아니다.


진정한 겸손은 바닥까지 낮아지는 자리에서도 흔들림 없이 상대를 높일 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비굴하지 않고 불의 앞에서는 오히려 당당한 그럼에도 상대방에게 결코 사납거나 경멸함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겸손은 내 안에는 없는 것 같다. 오직 주 안에만 있어서 내가 주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할 것 같다.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의만 쌓아, 그 육신의 열매만 거두지 말고 자신의 어떠함을 주의 빛에 비추어 생각하자. 그렇게 할 때에 자신은 낮은 자리로 내려 갈 수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겸손이다. 그런데 이 겸손은 자신을 빛나게 하여 육신의 열매로 맺혀지지 않고, 오직 주님을 빛나게 하여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의 빛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다시 주님을 통해 우리에게 비춰지고 그것은 우리 자신의 영광의 빛이 되어 돌아온다.


 

데이빗 월커슨


카톨릭 신부 리차드 배네트의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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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radition To Truth

A Priest’s Story

(전통에서 진리로)

(사제의 간증)

RichardPeterBennett

 

 


유년 시절


저는 아일랜드 사람이며 8식구가 있는 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유년 시절은 재밌고 행복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일랜드 군에서 대령이셨으며 제가 아홉살 때 은퇴하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더블린 군영 내에서 함께 운동하고 노래하고 활동했습니다.


우리는 전형적인 아일랜드 로마 천주교 가족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가끔 침대 곁에서 엄숙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곤 하셨습니다. 거의 매일 저녁 우리 식구들은 함께 거실에서 무릎을 꿇고 로저리 기도를 드렸습니다. 심각하게 병들지 않는 한, 절대로 주일 미사를 빠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섯 살 또는 여섯 살이 되자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게 실제로 존재하는 분으로 느꼈으며, 마리아와 성자들도 마찬가지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유럽의 전통적인 카톨릭 나라들의 일반인들이나 히스패닉 사람들, 필리핀 사람들처럼 전통적인 카톨릭에 물들어 예수님, 마리아, 요셉, 그리고 여러 성자들은 한꺼번에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벨베데레 예수원 학교에서 초등 및 중등 교육과 함께 교리 문답으로 주입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예수원에서 공부하는 모든 소년들처럼 저도 10살이 되기 전에 왜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왜 교황이 유일하고 참된 교회의 수장인지에 대한 5가지 이유를 암기할 수 있었습니다. 


연옥에서 영혼들을 나오게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종종 인용되던 말 중에는 “연옥에 있는 사람들이 죄악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도록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거룩하고 건전한 생각이다”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이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암송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황이 교회의 수장이며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교황이 말하는 것은 법이며, 예수원은 교황의 오른 팔 같은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미사는 라틴어로 진행되었어도 나는 매일 미사에 참석하려고 애썼습니다. 그 이유는 미사에 함께 하는 신비한 깊은 느낌에 호기심이 자극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미사가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방법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자들에게 기도하도록 장려 받았으며 대부분의 삶을 보호 받기 위해 수호 성인들을 두었습니다. 저는 한가지 예외 외에 이 관습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 많은 물건들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잃은 물건을 위한 수호 성자로서 성 앤토니를 모셨습니다.


제가 14살이 되던 때, 나는 선교사로 부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 부름은 그 당시의 나의 삶의 습성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16세부터 18세까지 저는 젊은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재밌고 신나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 기간에 저는 학문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매우 잘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종종 어머니를 모시고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한번은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마가복음 10:29-30절의 내용을 인용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참된 구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저는 선교사의 부름을 참으로 받아들이기로 결단했습니다.



구원을 획득하려고 노력하다


저는 1956년에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도미니칸회에 가입했습니다. 수도승이 되기 위해 8년 동안 공부를 했으며, 특히 교회 전통들, 철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그리고 카톨릭 관점에서의 성경 연구를 했습니다. 제가 어떤 개인적인 믿음을 가졌던 그 믿음은 도미니칸 종교 시스템 내에서 제도화되고 의식화되었습니다. 교회와 도미니칸의 규율에 순종하는 것은 성결의 수단으로서 항상 제 앞에 있었습니다. 


저는 종종 거룩하게 되는 수단으로서의 법칙에 대해 학생수련장이신 앰브로스 더피에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거룩하게 되는 것”에 추가로 영원한 구원의 확신을 원했습니다. 저는 교황 파이어스 12세의 가르침 중에 “많은 사람의 구원은 이러한 의도를 위해 드려지는 기도와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의 희생이다”라는 내용을 암기했습니다. 


고통과 기도를 통해 구원을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은 파티마와 루르드의 기본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러한 고통과 기도를 통해 내 자신의 구원 및 다른 사람의 구원까지 획득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더불린 탈라에 있는 도미니칸 수도원에서 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어려운 공을 들였습니다. 한 겨울에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거나 조그만 쇠사슬로 제 등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학생수련장은 제가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황에게서 받은 말씀의 영감에 학생 수련장의 금욕적인 삶을 통해 큰 격려를 얻었던 것입니다. 강한 불굴과 결단의 마음을 가지고 저는 기도하며 참회하며 십계명 및 수 없이 많은 도미니칸 수도원의 규율과 전통을 지키려 하였습니다.



그럴듯한 겉모양과 내면은 허무함


그후 제 나이가 25세 되던 1963년 저는 로마 카톨릭 신부로 임명되었으며 로마의 안젤리쿰 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 과정을 마치기 위해 로마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저는 그럴듯한 겉모양과 내면의 허무함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는 수년동안 사진과 책을 통해 교황청과 로마 도시에 대한 그림을 제 마음 속에 그려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제가 그렸왔던 도시와 같은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안젤리쿰 대학에서 저는 조간 수업을 듣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신학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또한 수업 시간에 타임지와 뉴스위크지를 읽게 하는 것을 주시했습니다. 배우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학위 또는 본국에서의 카톨릭 교회 내의 자리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느날 콜로시엄을 걷다가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피가 뿌려졌다는 장소에 제 발이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잘 아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은 주의 넘치는 사랑 때문에 짐승들에게 잡아 먹히거나 장대에서 화형을 당해도 기꺼히 감당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을 때 청소년들이 나를 향해 “쓰레기, 찌꺼기”라는 뜻의 단어들로 조롱하는 것을 들으며 방금 전의 멋진 체험을 다 망쳤습니다. 저는 그러한 모욕이 제가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서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로마 카톨릭 시스템에 제가 속해 있다는 이유 때문인 것을 느꼈습니다. 순식간에 제 마음은 이러한 비교를 하게 되었고 현재의 교황청의 영광은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것과는 매우 틀리며 허황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던 날 밤에 저는 성 클레멘테 교회의 제단 앞에서 두 시간 가량 기도했습니다. 어린 시절 선교사로의 소명과 함께 수백배의 결실을 약속하는 마가복음 10:29-30절을 기억하면서 저는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을 시작한 이래로 나의 야망이었던 신학 학위를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결정은 중대한 결정이었지만, 오랜 기도 후에 제가 바르게 결정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제 신학 논문을 지도하던 신부는 제 결정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학위를 쉽게 딸 수 있도록 그는 그가 수년 전에 쓴 논문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는 논문 구두 시험에서 그 논문을 제 것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의 제안은 제게 매스꺼움을 주었습니다. 그의 제안은 몇주전 제가 도시 공원에서 보았던 장면과 비슷했습니다. 즉, 화려한 창녀들이 검은 가죽 부츠를 신고 거리를 행보하던 장면이었습니다. 지도 신부가 제안한 내용은 그만큼 죄악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결정을 고집하였으며 학위 없이 일반 학문 수준에서 그 대학을 마쳤습니다.


로마에서 돌아오면서 코크 대학에서 3년 과정을 마쳐야 한다는 공식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제 선교의 소명에 대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1964년 8월 말에 선교사로 서인도제도 트리니다드 섬으로 가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교만, 타락, 그리고 새로운 갈망


1964년 10월 1일, 저는 트리니다드 섬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소위 로마 카톨릭 용어로 성공적인 신부로 7년을 섬기며 제 의무를 잘 감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1972년 즈금이 되니 저는 카톨릭 은사 운동에 깊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972년 3월 16일 기도 모임에서 저는 주께 제가 좋은 신부가 된 것을 감사 드리며, 만일 주의 뜻이면 저를 더욱 좋은 신부가 될 수 있도록 저를 겸손케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끔찍한 사고를 당하게 되었는데 뒤통수가 깨지고 등뼈의 여러 군데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죽음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과연 제가 만족할만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기계적으로 정해진 제 기도로는 그 공허함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사고 후 고통 가운데 몇 주를 지났습니다. 그 때 저는 직접적인 인격적 기도 가운데 약간의 평안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부들의 공식적 기도인 일과 기도서를 읽는 것과 묵주 기도를 멈추고 성경을 이용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은 매우 느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법을 몰랐습니다. 수년 동안에 걸쳐 배운 나의 지식들은 성경을 신뢰하기 보다는 불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서 배운 훈련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찾기 위해 성경을 대하는 것은 내게는 마치 지도없이 깊은 산림 속에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 해 말에 새로운 교구를 맡게 되었는데, 저는 수년 동안 제게 형제 같았던 도미니칸회 사제 하나와 나란히 일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2년 이상 포인테-아-피에레 교구에서 우리는 아는 바 최선으로 함께 일했습니다. 우리는 읽고 연구하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배운 대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우리는 개스파릴로, 클랙스톤 베이, 그리고 마라벨라 등의 주요 도시에서 공동체를 세워 나갔습니다. 


카톨릭의 종교 감각으로 우리는 매우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공립 학교를 포함한 많은 학교들 내에서 카톨릭의 교리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계속 연구했지만 우리가 하는 일에는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내가 주님과 주의 말씀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더욱 보여주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빌립보서 3:10은 제 마음의 부르짖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빌 3:10).


카톨릭 은사 운동이 한창 성장하는 무렵, 우리는 그 운동을 대부분의 마을에 소개했습니다. 그 운동 때문에 몇몇 카나다 기독교인들이 우리와 함께 사귐을 갖기 위해 트리니다드에 왔습니다. 제가 훗날에 거절한 거짓 기사와 이적이지만 그 운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제게 참으로 큰 축복이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카나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제게 성경을 권위의 원천으로 깨닫게 하였습니다. 저는 성경을 하나 하나 비교하며 연구하시기 시작했고 성경의 각 장과 구절까지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나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던 본문 중 하나는 이사야 53:5절이었습니다. “…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저는 이사야 53장을 연구하면서 성경은 죄의 문제를 대속으로 다룬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나 대신에 죽으셨습니다. 제가 나의 죄 값을 치루려고 하거나 그 값을 치루는 것을 거드는 것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1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죄게 특별한 죄는 사람들을 귀찮아하는 것이었으며 종종 그들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죄악에 대해 용서를 구했지만, 저는 제가 아담으로부터 물려 받은 죄성에 의해 여전히 죄인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0).“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그러나 카톨릭 교회는 제게 “원죄”라고 불리는 인간의 부패는 영아 세례와 함께 씻겨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머리에 이 믿음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서는 제 부패한 속성이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3: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 알고자 하여”는 계속 내 마음 속의 절규였습니다. 저는 제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오직 주의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제 차의 운전석과 여러 다른 곳에 붙여 놓았습니다. 이 구절은 제 마음의 간구였고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제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궁극적인 질문


먼저, 저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하며 오류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은 상대적이며 여러 분야에서 성경이 정말 맞는 말을 하는지 의심하도록 배웠습니다. 이제 저는 성경은 실제로 믿을만한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롱스 용어 색인(Strong’s Concordance)을 사용해서 성경이 성경 자체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성경이 분명하게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 절대적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성경은 그 역사 기록에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에 있어서, 예언에 있어서, 도덕적 명령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있어서 참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이 발견은 제가 캐나다 뱅쿠버와 시애틀을 방문한 동안에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성 스데반 카톨릭 교회의 기도 그룹 모임에게 말씀을 전할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때 제가 취한 메시지의 제목은 성경의 절대 권위였습니다. 그러한 진리를 이해한 것과 그 진리에 대해 말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캐나다 뱅쿠버로 돌아와서 약 400명이 모인 큰 교구 교회에서 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성경을 손에 취고 저는 “믿음과 도덕 문제의 최종 권위는 성경, 곧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라고” 선포했습니다.


3일 후에 뱅쿠버 대주교 제임수 카니가 저를 그의 사무실로 불렀습니다. 그는 제게 공식적으로 그의 교구에서는 가르치지 못하게 하였고 입을 다물게 하였습니다. 만일 저의 대주교인 안토니 판틴의 추천 편지만 없었다면 저는 더 큰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후 저는 곧바로 트리니다드로 돌아왔습니다.



교회와 성경의 딜레마


여전히 저는 포인데-아-피에레 교구 신부로 있게 되었지만, 저를 엄격하게 가르치시며 저의 학생 수련장이셨던 암브로서 더피가 저를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세는 바뀌었습니다. 처음 어려움 기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과 함께 제가 발견한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제 이야기를 잘 들으시며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나누셨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저에게 동기 부여를 하는지 발견하길 원했습니다. 저는 그를 보면서 도미니칸회의 형제들 뿐만 아니라 대주교의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채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저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내 마음 속에서 저는 그분을 제가 그토록 씨름하고 있는 교회와 성경의 딜레마를 풀어줄 수 있는 분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 분이 저 뿐만 아니라 도미니칸회의 형제들에게 제가 씨름하고 있는 진리들을 설명해 주실 수 있다고 소망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장례식에서 설교했고 제 낙심은 매우 깊었습니다.


저는 계속 빌립보서 3:10절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러나 주님을 알아갈수록 먼저 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저는 성경 (딤전 2:5)으로부터 카톨릭이 가르치는 신부의 중보 역할은 정확하게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과 정반대인 사실을 보게 되면서 제가 하고 있는 신부 역할이 틀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을 참으로 즐거워했으며 어떤 의미로는 그들에게 우상시되는 것도 즐겼습니다. 또한 이 땅의 가장 큰 교회가 가르치는 내용에 감히 내개 무슨 의심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하며 저의 죄를 합리화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 마음 속에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리아 숭배, 성자와 신부들을 숭배하는 것을 죄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마리아와 성자들을 중보자로 보기를 부인할 의사가 있었지만, 제 사제직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곳에 제 인생 전부를 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줄다리기 세월들


마리아와 성자들, 그리고 사제의 역할은 제가 갈등하는 큰 덩어리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었습니다. 누가 제 삶의 인생의 주인인가? 말씀 안의 예수 그리스도이신가 아니면 로마 교회인가? 


이 궁극적인 질문은 특히 제가 상그레 그란데 교구 신부로 마지막 6년을 보낼 때 (1979-1985) 제 마음 속에서 휘몰아쳤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카톨릭 교회가 믿음과 도덕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고 권위를 갖는다고 제 머리 속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로마는 최고 권위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거룩한 어머니”로 불렸습니다. 교회의 성사를 거행하며 사람들에게 교회에 충성하도록 그렇게 오랜 기간 공적으로 사역해 온 제가 어떻게 “거룩한 어머니”를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인가!


1981년 저는 실제로 뉴올린스의 교구 갱신 세미나를 방문한 동안에 로마 카톨릭 교회를 섬기는 일에 제 자신을 재헌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트리니다드로 돌아와 다시 삶의 실제 문제들을 접하게 될 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 긴장은 제 마음 속에서 줄다리기 같았습니다. 어떤 때는 로마 교회가 절대적 존재로 내게 와 닿았으며 다른 때는 성경의 권위가 최종인 것으로 와 닿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제 마음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제 감정은 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를 배워야 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위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로마 교회의 최고 권위 하에 두어야 하는 위치였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제가 상크레 그란데 교회에서 4개의 동상에 대해 행한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출애굽기 20:4절에서 선포하고 있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며”라는 하나님의 율법의 둘째 계명 때문에 성 프란시스 및 성 마틴의 동상을 무너뜨려 제거했습니다. 


러나 사람들 중에 몇몇이 제가 예수 성심 상과 마리아 상을 제거하려는 것을 반대하였고 저는 그 동상들을 제거하지 못하고 남겨 두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상위, 즉 로마 카톨릭 교회가 교회 법전 1188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실한 신자들을 숭상하기 위해 교회 내에서 거룩한 형상들 전시하는 관행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저는 그때 제가 상위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에 굴복시키는 것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의 잘못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알았으면서도 계속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회의 권위를 더 붙들고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수호하려는 고통스런 수고를 계속하였습니다. 심지어 로마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말을 하는 그러한 관건에 있어서도 교회를 따랐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무엇보다 첫째, 이는 제 자신의 잘못이었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최고로 인정했다면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죄책감을 느끼며 중보자로서의 신부직을 포기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직분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둘째, 그 누구도 제가 신부로서 행하는 일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미사에 와서, 신성한 기름과, 거룩한 물, 메달들, 동상들, 복장, 예식 등을 보았어도 그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스타일, 상징들, 음악, 로마 교회의 예술적 감각은 전부 사람들을 사로 잡습니다. 향은 사람들의 코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신비감을 더합니다.



회귀점


어느날 어떤 여인이 제게 도전이 되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신부로 22년 동안 있으면서 제가 도전적인 말을 한 사람은 바로 이 여인이 유일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당신의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거부합니다.” 그 말은 한동안 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저는 조명들, 광고 문들, 민요, 키타, 드럼등에 친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트리니다드 섬을 통틀어도 저 만큼 멋진 예복과 의복과 간판을 가진 신부는 없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저는 제 눈 앞에 있는 있는 것들에 말씀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1985년 10월, 하나님의 은혜는 저의 거짓된 삷보다 컸습니다. 저는 억지로라도 타협하며 살아보려고 바베이도스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에는 제 발을 뺄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절대적이었습니다. 저는 말씀을 순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카톨릭 교회를 최고 권위로 알고 드렸던 순종을 바로 하나님께만 드리게 되었습니다. 


바베이도스에서 저는 책을 한권 읽었는데 그 책은 교회를 “신자들의 친교”라는 성경적 의미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교회의 계급층에 대한 힌트 전혀 없습니다.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성직자’의 계층을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라고 선포하신대로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일 뿐입니다.


교회를 의미를 “친교”로 이해하고 깨닫게 되자 저는 마음이 자유하게 되면서 로마 카톨릭 교회를 최고 권위로 믿던 마음을 내려 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경적 용어로 정의할 때 카톨릭 교회의 주교들은 성경적 신자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마리아와 묵주 기도, 로마 교황청을 향한 헌신에 사로 잡힌 종교인들일 뿐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되었으며 구원을 위해 완성된 사역이라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인 죄를 위한 고해 성사, 인간의 고통, 종교적인 행위들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은 로마 카톨릭을 통해서거나 또는 어떤 종류의 행위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48세에 거듭나다


저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에 충성하는 한 예수 그리스도 안의 생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로마 카톨릭 교회를 떠났습니다. 1985년 11월 트리니다드를 떠나면서 저는 기껏해야 근처 가까운 바베이도스에 닿았습니다. 나이드신 부부와 함께 거하면서 저는 주님께 카나다까지 갈 수 있도록 돈과 옷을 기도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게 열대 옷과 몇 백불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는 아무도 모르게 오직 주님께만 드렸습니다.


90도에 달하는 열대 온도의 지역을 떠나 저는 눈과 얼음으로 덮힌 캐나다에 도착했습니다. 뱅쿠버에서 1달을 지난 후, 저는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주께서 제 필요를 채우심을 믿습니다. 제가 48세가 되던 그해에 새 삶을 시작한 이래로, 저는 실제로 한푼도 없고, 영주권, 운전 면허, 추천서도 없이, 오직 주님과 주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워싱톤 주의 농장에서 사는 기독교 부부와 6개월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 주인들에게 제가 로마 카톨릭을 떠났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성경 안에 있는 주의 말씀은 완전히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말하면서 저는 “완벽하게, 최종적으로, 분명히,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네개의 부사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받기는커녕 그들은 내 마음 속에 앙심이나 상처가 있는지를 알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기도와 큰 자비로 저를 보살펴 주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 자신도 그러한 변화를 겪었으며 얼마나 쉽게 사람에게 앙심이 생기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그들의 집에 도착한 후 4일이 지나자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 가운데 구원의 열매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즉, 지난 날의 저의 타협했던 죄악들에 대해 주께 용서를 구할 뿐만 아니라 제가 가진 깊은 상태에 대한 주님의 치유를 받아들였습니다. 마침내, 48세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만으로, 은혜 만으로, 저는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님께만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부부 및 그들의 가족들에 의해 신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도움을 받으며 일어나게 되면서 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아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거듭났으며 사랑스럽고 똑똑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조지아 아틀란타로 떠났고 그곳에서 둘다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참된 메시지로 참된 선교를 하게 됨.


1988년 9월, 우리는 아틀란타를 떠나 아시아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 때 우리는 생각해 보지 못한 주님 안에서의 큰 열매를 볼 수 있던 한 해였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할 때 성경만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얼마나 효과적인지, 또 얼마나 쉬운지 놀랐습니다. 복음은 지난 21년 동안 참된 메시지 없이 트리니다드에서 선교 복장을 했던 구름낀 시절들과 대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풍성한 삶, 제가 지금 누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한 삶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로마서 8:1-2절보다 더 좋은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저는 로마 카톨릭 시스템에서 자유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죽은 행실에서 새생명으로 옮겨진 것이었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증거함


다시 1972년을 돌아볼 때 몇몇의 그리스도인들이 제게 우리의 몸을 치유하시는 주님에 대해 가르쳤던 적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때 죄성으로 가득한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설명했더라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53:5절이 이를 가장 잘 설명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가 제 죄악으로 인해 받아야 할 고통을 친히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는 저의 대속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내용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750년 전에 기록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이 있은지 얼마 후 성경이 말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죄성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 없이, 또한 우리를 대신하여 주께서 죽으심을 인정함이 없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오직 믿음으로만 우리는 우리의 대속이신 그리스도를 이해하며 붙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위해 대가를 치루신 분은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은 이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믿음이면 충분합니까? 그렇습니다. 거듭나는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그 참된 믿음은 하나님이 심어주신 것으로서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우리는 회개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과거의 삶의 습관과 과거의 죄악들을 버리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뜻은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며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이 자리는 절대로 취소될 수 없습니다. 성경이 히브리서 10:10절에서 이 내용을 멋지게 언급합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십자가 상에서의 그리스도 예수의 완성된 사역은 충분하며 마무리 되었습니다. 당신이 이 완성된 사역만을 믿으면 성령으로 거듭나 새생명을 얻게 됩니다. 즉, 당신은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삶


저의 현재 사역은 이러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해 준비하신 선한 사역은 미국 텍사스 중앙의 오스틴 근처에서 선교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동료 유대인들에 대해 말한 대로 저는 제가 사랑하는 카톨릭 형제들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카톨릭 교도들을 향한 제 마음의 열망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그들이 구원 받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열심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회 전통에 기초한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필리핀과 남미에서 그 백성들이 그들의 종교를 위해 드리는 헌신과 고통을 이해한다면 제 가슴의 절규를 이해할 것입니다. 


“주님, 경건한 카톨릭 교도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드리는 고통과 또한 진리를 추구하는 고민을 이해할 수 있는 동정심을 우리에게 주소서.”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때 우리는 십자가에서 마치신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의 복음을 그들에게 보이고 싶은 소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제 간증은 제가 카톨릭 신자로서 교회 전통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의 말씀으로 전통을 버리기를 요구할 때 우리는 해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카톨릭 신도들로 하여금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보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어려운 난관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진리를 아는데 있어서 어떤 권위로 알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교황 로마 교회는 그 궁극적인 권위가 군림하는 교황의 결정과 칙령에 있습니다. 교황 자신의 말에 의하면 “최고 권위의 교황은 그의 직분과 관련해서 절대 오류가 없는 가르치는 권위를 소유한다. 그는 모든 신자들의 최고 목자이며 선생이시다. 교황이 명백한 행위로 선포하는 것은, 믿음의 교리이던, 도덕에 관한 교리이던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법전 749).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진리를 알 수 있는 권위입니다. 개혁자들은 인간이 만든 전통을 버리고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외쳤습니다.



나누는 이유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진리를 나눔으로써 여러분이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알 수 있기를 원합니다. 카톨릭 교우들의 근본 문제는 우리 안에 개인적인 가치와 존엄이 새겨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올바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도움에 반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는 카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에 잘 정의되어 있습니다. 교리 2021을 보면, “은혜란 우리가 주의 양자됨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도움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정 관념 떄문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성경이 끊임없이 거절하는 가르침들을 붙들고 있습니다. 


은혜에 대한 그러한 정의는 인간들이 교묘하게 만든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지속적으로 선포하길 신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은 “일한 것이 없이” (롬 4:6),“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롬 3:28),“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엡 2:9),“하나님의 선물” (엡 2:8)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반응을 구원의 부분으로 만들고 은혜를 ‘도움’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은 명확하게 성경의 진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6).


성경의 간단한 메시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의 선물”은 주의 완전하고 충분한 십자가 상에서의 희생으로 마련된 선물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 5:17).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인자가 온 것은 …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인 것입니다. 이에 주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8).


이 메시지는 또한 베드로가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 3:18).


바울의 가르침은 고린도후서 5:21절로 요약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성경은 이 사실을 당신에게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이 사실을 받으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카톨릭에 물든 우리들이 회개하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우리의 생각을 “공을 쌓은 것”, “수고하여 벌음”, “충분히 착함” 등에서 나오게 하여 단지 빈손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받기를 거절하는 것은 바울 당시의 종교적인 유대인들의 죄와 같은 죄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 10:3).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Richard Bennett

리차드 베네트

If there is something on your heart that you wish to share, please email me at: rbennett@stic.net

thank you

만일 당신의 마음에 나누고 싶으신 것이 있으면 이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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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베네트는 제 친구입니다. 

그분의 글과 사역을 참조하시려면 다음을 링크하기 바랍니다. - 스데반 황


bereanbeacon.org

현대판 바벨론 신비종교,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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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교가 달의 여신(성모 마리아와 동일시)을 숭배하는 이시스교와 더불어 천주교로 흡수되었음을 시사하는 다큐멘터리 영상 한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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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삿 2: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삿 3:7).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삼상 12:10).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왕상 18:19).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망하게 한 대표적인 우상 두 가지는 바알과 아스다롯(아세라)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 풍습은 위로는 원시 바벨론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아래로는 지금의 천주교까지 이어집니다. 바알은 태양신 숭배사상을 대변하며 아세라는 모자신(어미신과 아들신) 숭배사상을 대변하는데 이 양자는 기독교적인 용어로 채색된 채 천주교 안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리실 테지만 아래의 내용을 공정한 마음으로 읽어보시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납득하게 되실 겁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게 학문적인 측면에서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셨던 어떤 교수님으로부터 천주교에 대해 잠시 배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 교수님께서 워낙 박학다식하고 언변이 뛰어나셔서 천주교에 대한 그분의 가르침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분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개신교회 안에서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이 천주교를 대적하고 이단시하는데 이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망발이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언동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유주의 신학에 감염된 신학자나 목회자들은 천주교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주교에 대한 태도는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정도를 가늠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종이라고나 할까요?)


   신학생이 되기 전에 천주교에 대해 신비롭게 채색된 애니메이션을 많이 접했던 저는 본래 천주교에 대해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천주교에서 명성을 떨쳤던 성자들 가운데 존경하는 분들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공감은 머리에서만 맴돌았고 가슴으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으나, 훗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천주교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고 분석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천주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좋은 이미지들은 작위적으로 세뇌된 결과일 뿐 결코 진실에 근거한 결과가 아닙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기독교라는 종교는 개신교, 성공회, 동방정교회, 로마교회까지 크게 네 가지 교파로 구성됩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이라고 하면 로마교회와 동방정교회를 통칭합니다. 이하에서는 성공회와 동방정교회는 제외하고 논의의 초점을 로마교회에만 한정짓고자 합니다. 용어 또한 혼동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가톨릭’ 대신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명칭인 ‘천주교’로 통일하겠습니다.


   ‘바티칸’(Vatican)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여러분은 제일 먼저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뇌리에는 천주교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교황청에 대한 생각이 스쳐지나갈 겁니다. 오늘날의 바티칸이란 곧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도시국가입니다. 바티칸 시국은 국제법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권국입니다. 비록 크기는 작을지라도 단일한 지휘계통을 가진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교회(천주교)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천주교 안에서도 일반적인 성직자나 신도들은 제외하고 교황청을 필두로 한 고위급 수뇌부만을 별도로 지칭할 때 ‘바티칸’이라는 용어를 대유적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유럽영성순례서 본 가톨릭 힘의 뿌리"라는 제목의 한겨레 신문의 보도자료 가운데 일부를 발췌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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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대 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이르기까지 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 주교이자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서방교회의 최고 사제, 총대주교, 이탈리아의 수석 대주교, 바티칸시국의 원수, 세계 주교단 단장, 수위권(首位權) 등으로 불려왔다.


   교황이 이끄는 바티칸시국은 불과 0.44㎢에 1천명 안팎의 인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다. 하지만 전세계에 가장 많은 국가와 수교하고, 독자적인 화폐와 우표, 신문, 방송국까지 경영하는 독립 국가다. 교황청엔 국무원과 9개의 성, 법원, 평의회, 학술원, 사무처들이 있다. 하지만 교황청의 힘이 바티칸시국 국경 선 안에만 갇혀 있다고 보면 오산이다. 교황청이 설립한 올비노대와 라테란대 등 종합대학과 수많은 단과대, 신학대, 성당, 수도원 등이 바티칸 시국 바깥에 산재해 있다. 이런 대학들에 한국에서 유학 온 사제와 수녀 등 150여명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온 성직자·신자 수만명이 상주하고 있다.


   교황권이 미치는 영역은 로마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이다. 교황은 세계 5천여명의 주교 임명권을 갖고 있다. 사제들은 주교에게, 주교는 교황에게 '순명'하는 게 가톨릭의 철칙이다. 교황권은 세계 사제 40만9천여명(모두 2008년 기준), 수사 5만4천여명, 수녀 74만여명한테 미친다. 그리고 11억6500여만명의 가톨릭 신자를 하나로 묶어내면서 거대한 '가톨릭 파워'가 된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력의 뿌리인 교황권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에 충실할 때 인류에겐 희망이 비쳤다. 하지만 교황권이 그리스도의 본래 정신을 상실할 때는 인류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대희년을 맞은 2000년 사순절 '참회 미사'에서 고백한 십자군 원정과 종교재판, 마녀사냥, 유대인 대학살 방조 등이 그런 경우였다.


   그처럼 단일 절대 권력 체제는 경직화해 폭력적 우익과 결합하거나 개인의 인권을 도외시할 수 있다. 가톨릭 조직의 야누스적인 면모를 파헤친 퓰리처상 수상자 게리 윌스의 <교황의 죄>라든가,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 등은 이를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벌의 부정을 파헤치고 환경 생명 살림을 외쳤던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표 전종훈 신부가 서울대교구 정진석 교구장에 의해 이례적으로 4년째 '안식년 발령'이 지속돼 사실상 징계를 받고 있는 상황도 이런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계 18:24).


   위 말씀은 과거에 천주교가 저지른 엄청난 만행(이어지는 소단원에서 자세히 다룹니다.)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해당 구절에서 ‘그 성’이란 큰 성 바벨론과 동일한 말인데 이는 천주교의 수뇌부로서의 바티칸을 가리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실제로 바티칸은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당시의 왕족들과 결탁했고 종교재판이라는 복술로 만국을 미혹하여 진리를 깨달은 수많은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그 어떤 집단도 바티칸처럼 잔혹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고대의 그 어떤 정복군주도, 그 어떤 독재자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악독하게 고문하면서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를 살펴보더라도 바티칸이 큰 성 바벨론일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원시 바벨론의 신들 가운데 벨(Bel)이라고 불리기도 한 벨로스(Belos)의 그리스 식 이름은 제우스(Zeus)입니다. 벨과 제우스에 대해서는 성경에서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가 벨(Bel)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렘 51:44-45).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행 14:11-13).


   이처럼 바벨론 문명은 초대교회의 배경이 된 로마문명 속에도 깊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원시 바벨론과 로마 사이에는 무려 1,500년 이상의 간격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애당초 적그리스도적인 바벨론 문명이 전 세계로 퍼진 이유는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여기서 바벨론이란 유다왕국을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가 아니라 바벨탑을 쌓은 원시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노아의 대홍수 이후 함의 장남이자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이 등장하여 최초의 정복군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시날 4성읍과 앗수르 4성읍을 건축하여 원시 바벨론 문명을 건설했습니다(창 10:9-12). 바벨론의 초대군주인 그의 영토는 시날 땅의 바벨, 에렉, 악갓, 갈레까지 이르렀습니다(창10:8-10, 대상 1:10, 미 5:6).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창 10:8-9).


   ‘여호와 앞에서’라는 단어는 문맥상 ‘여호와를 대적하여’로 해석됩니다. 니므롯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흉폭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사냥꾼이란 말 그대로 짐승을 잘 잡는 사람을 뜻하지만 인간을 잘 잡는 사람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짐승 사냥꾼이자 인간 사냥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자나 곰과 같은 야생동물이 인간에게 실로 큰 위협이었기 때문에 그의 짐승 사냥꾼으로서 자질은 많은 명성과 재물을 얻는 기반이 되었을 겁니다. 이를 토대로 세력을 확장한 그는 강력한 인간 사냥꾼(정복군주)이 되어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고 결국 천하를 제패했을 겁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바벨론 문명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류의 언어가 하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벨론 문명권 안에서 니므롯의 통치하에 살고 있었습니다(창 11:1).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의 인류를 향해 전 세계로 흩어져서 각각의 문명을 이룰 것을 명하셨을 것입니다(창 11:4).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자신의 권력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 니므롯은 전제정치를 확립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시날 평지 위에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셨습니다(창 11:9).


   이 때문에 인류는 서로 말이 통하는 무리들끼리 뭉쳐서 사방으로 뿔뿔이 이주해갔습니다. 비록 언어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전까지 공유하던 바벨론 문명은 사람들의 삶 가운데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각각의 무리는 서로 다른 정착지에서 바벨론 문명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문명을 일구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본바탕 자체가 바벨론 문명이었던 탓에 그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을지라도 여전히 공통점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고대문명들의 뿌리는 종교입니다. 모든 삶이 종교를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다 변할지도 종교사상만큼은 쉽사리 바뀌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어의 혼잡사건 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에서 피어난 다양한 문명들 속에는 여전히 바벨론의 종교적 특성이 짙게 남아있었습니다. 언어의 혼잡사건으로 인해 비록 명칭 자체는 달라졌으나 태양신을 숭배하는 사상은 줄기차게 이어졌습니다. 또한 어미 신(하늘의 여왕)과 아들 신 숭배 사상도 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의 모든 우상종교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성경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일컬어 ‘큰 성 바벨론’이라고 부릅니다(렘 51:44-45, 계 14:8, 계 17:4-5, 계 18:2-3, 계 18:10, 계 18:21). 즉, 재건된 인류역사 초기의 바벨론 문명은 적그리스도 세력의 영적 DNA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대로 말세에는 바벨론이 재건됩니다. 세계단일정부에서 시작되었던 인류의 문명이 언어의 혼잡사건 이후 우여곡절 끝에 결국 또다시 세계단일정부로 회귀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 타락한 인간의 죄성에 기인한 불가피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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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미 말세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징조를 잘 분별하고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바벨론 문명의 특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바벨론 문명을 가장 잘 이어받은 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입니다. 천주교는 외연만 기독교적인 분위기로 채색된 또 하나의 바벨론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벨론 문명을 거의 완벽하게 계승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비밀종교는 노아의 대홍수 이후 최초의 적그리스도인 니므롯에 의해 만들어진 사탄숭배종교입니다. 비밀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이는 이유는 바벨론의 종교가 그 어떤 대상과도 교묘하게 뒤섞을 수 있는 은밀한 상징들로 대변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밀교에는 많은 특징들이 있지만 딱 두 가지만 꼽으라면 '태양신 숭배사상'과 '어미 신 및 아들 신 숭배사상'을 들 수 있습니다. 개신교와 유대교를 제외하면 바벨론 밀교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우상숭배 종교들의 원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니므롯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스스로를 태양신으로 신격화시켰습니다. 이때부터 니므롯의 호칭은 ‘주인’이라는 뜻의 바알(Baal) 혹은 벨루스(Belus)로 정해졌으며,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의 호칭은 ‘여주인’이라는 뜻의 바알티(Baalti) 혹은 벨티스(Beltis)로 정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강력한 전제정치를 확립한 니므롯은 기념으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비록 그의 계획은 도중에 좌절되었지만 태양신 숭배사상만큼은 사람들의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한편, 세미라미스는 남편 니므롯이 죽은 다음에 사생아를 낳고 담무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언어혼잡 사건 이후에도 남편의 후광 덕분에 세미라미스는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녀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에게는 니므롯을 대신한 여왕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영악한 세미라미스는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기 위한 계략을 획책합니다. 그것은 그때 당시 사람들에게도 구전을 통해 널리 퍼져있었을 구세주 사상을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구상을 마친 세미라미스는 자신이 낳은 아들 담무즈가 태양신 니므롯의 환생일 뿐만 아니라 여인의 후손, 곧 구세주(창 3:15)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바벨론의 수많은 기념비들은 어미 여신 세미라미스가 아들신 담무즈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비록 언어가 혼잡케 되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을지라도 태양신 숭배사상뿐만 아니라 구세주에 대한 공통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사상이 빠르게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자신(어미 신과 아들 신) 숭배사상으로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언어가 다르다 보니, 모자신에 대한 호칭 역시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Alexander Hislop, 안티오크 번역실 역, 『두 개의 바빌론』(서울:도서출판 안티오크, 1997), 28-30.]


   고대의 저명한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종교들의 의식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의 시초가 바벨론 밀교임을 증언했습니다. 분섹 역시 이집트의 종교제도가 원시 바벨론 문명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레아야드는 자신의 저서 『니느웨와 그 유적들』을 통해 원시 바벨론 문명으로부터 모든 우상숭배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구속사와 세속사가 동일하게 증언하는 바라고 설파했습니다.


   담무즈는 니므롯의 환생이라고 여겨졌으므로 그의 아버지의 호칭인 바알 역시 담무즈에게도 고스란히 붙여졌습니다. 한편, 세미라미스가 원래 가지고 있던 바알티라는 호칭에는 중보자의 의미가 더해지면서 밀리타(Milita)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어미신 세미라미스가 아들신 담무즈와 사람들을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천주교에서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는 중보자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고대의 중국인들은 아들 신을 안고 있는 어미 여신을 ‘싱무’(Shingmoo)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거룩한 어머니, 곧 성모(聖母)입니다. 또한 드루이드 교도들은 어미 여신 비르가 파티튜라(Virga-Patitura)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숭배했습니다. 이집트의 어미신 이시스(Isis)의 별칭 역시 ‘하나님의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여 섬겼던 아스다롯(아세라)의 별칭은 ‘하늘의 여왕(모후)’이었습니다.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렘 7:17-19).


   이처럼 오늘날 천주교가 마리아에게 붙여준 ‘(신적인) 중보자’, ‘성모’, ‘하나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모후)’이라는 호칭들은 놀랍게도 바벨론 밀교의 영향을 받은 이교도들이 문자 그대로 사용하던 별칭들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아데미(Ardemis) 역시 성모, 하나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 등의 별칭으로 불리는 세미라미스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행 19:34).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행 19:27).


   위 말씀에서 잘 드러나듯 위대한 어미 여신을 숭배하는 사상은 로마제국 전체에 심각하게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비문들은 모자신이 그 당시 로마 사회에서 엄청난 영예를 누리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현상은 비단 로마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 불가리아 등 다른 지방들에서도 발생했습니다. [James George Frazer, The Golden Bough, 박규태 역, 황금가지(서울: 을유문화사, 2005), 제1권, 356.]


   아기를 안고 있는 여신 밀리타가 앗시리아에서는 이쉬타르(Ishtar, 이스터)로, 슈메르에서는 나나(Nana)로, 페니키아에서는 아스다롯(Ashtaroth)으로,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 혹은 케레스(Ceres)로, 독일에서는 헤르타(Hertha)로,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디사(Disa)로, 에투리아 지방에서는 누트리아(Nutria)로, 인도에서는 인드라니(Indrani)로 불렸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고린도에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로, 에베소에서는 다이아나(Diana) 혹은 아르테미스(Atremis, 아데미)로 불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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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바알인 니므롯(담무즈)은 니누스(Ninus), 솔(Sol), 아도니스(Adonis), 플루투스(Plutus), 바쿠스(Bacchus), 아폴로(Apollo), 제우스(Zeus) 등으로 불렸습니다. 어미신과 아들신이 모자신으로서 짝을 이루어 지칭되기도 했는데 이집트에서는 이시스(Isis)와 호루스(Horus)로, 인도에서는 이시(Isi)와 이스와라(Iswara)로, 소아시아에서는 시벨레(Cybele)와 데오이우스(Deoius)로, 로마에서는 비너스(Venus)와 쥬피터(Jupiter)로 불렸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두 신의 이름이 함께 언급됩니다.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행 19:35).

 

   물론 학자들에 따라 호칭이나 그 호칭에 부여된 의미에 차이가 많습니다. 같은 신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각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국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설명하면, 구약시대에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겼던 바로 그 바알과 아세라이며, 이는 원시 바벨론에서의 니므롯(담무즈) 및 세미라미스와 직결됩니다. 이처럼 바벨론 밀교는 인류역사상 이어져온 거의 모든 우상숭배 종교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를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5).

 

 

   정리하면, 바벨탑의 언어혼잡사건 이후 니므롯의 통치 아래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지구의 곳곳에 정착하여 새로운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곳곳에서 왕국이 세워졌고 더 나아가 제국도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열국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끊임없이 힘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로마제국이 출현하여 발견된 거의 모든 세계를 정복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명실 공히 세계제국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무력만으로는 세계제국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알렉산더가 세운 헬레니즘 제국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던 로마제국은 특별한 위협만 되지 않는다면 정복지의 모든 문화들을 고스란히 포용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로 인해 바벨론 문명을 모태로 하여 전 세계 곳곳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던 제반 문명들은 로마제국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재차 집대성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바벨론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정복지들 가운데 매우 이질적인 문명을 가진 민족이 하나 섞여 있었는데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속에서 더욱 이질적인 문명이 갑자기 출현했으니 소위 유대교 예수파(기독교)였습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던 이 기독교가 갑자기 급성장하면서 로마제국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해갔습니다. 이에 당황한 로마제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을 모질게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멸되기는커녕 성장이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급기야 로마제국 내에서의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큰 세력이 되었습니다.


   한편, 로마제국 내에서도 복잡한 역학구도 가운데 정치적인 파워게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는 정략적으로 기독교 세력과 결탁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했습니다. 문제는 전술한 것처럼 로마제국이 제2의 바벨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교도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기독교 세력을 이용하여 정권을 잡자 그의 입장은 달라졌습니다. 통치기반을 보다 공고히 다지려면 바벨론 종교에 물든 대부분의 로마인들까지 아울러야 했습니다. 결국 방법은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인데 그러자면 지나치게 극단적인(?) 기독교를 적당히 변질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정략적 이해관계에 기초하여 그 이후의 로마 황제들은 종교지도자들과 결탁하여 기독교의 이교화를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쉽게 말해, 태양신 숭배 및 모자신 숭배로 대변되는 당시의 이교도 신앙을 기독교적으로 채색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초창기에는 신실한 종교지도자들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질게 핍박만 받다가 권력의 달콤한 맛을 본 새로운 종교지도자들이 로마교회의 교권을 장악하면서 기독교의 이교화는 급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로마인들이 이교도의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크리스천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상황까지 비화되고 말았습니다. 태양신 숭배사상과 모자신 숭배사상이 교회 안에서 완전히 뿌리를 내려버렸던 것입니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아래의 내용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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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후 633년 토레토 종교회의에서는 모든 성직자들이 머리를 둥글게 체발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체발이라 함은 사제 서품식에서 사제의 뒷머리를 둥글게 깎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체발은 얼마든지 태양신의 상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화 되기 전의 이교 로마에서 바쿠스를 숭배하는 제사장들도 대머리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스타일로 체발을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 유명한 바알신을 섬기던 제사장들 역시 태양을 상징하는 둥그런 원의 형태로 체발했습니다. 구약성경에도 이에 대해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레 19:27).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레 21:5).


   천주교에서는 나름대로 이유를 대고 있으나,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헤어스타일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끝내 멸망으로 몰고 갔던 그 가증한 바알의 제사장들을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을 따라해야만 했는지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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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둥근 체발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근거를, 미사 때 사용하는 성병(wafer)에 연결시키는 것 역시 자충수라고 생각됩니다. 체발보다 그 둥근 빵이 더더욱 태양신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심을 기념하는 뜻에서 손으로 찢어 나눈 빵을 성찬식에 사용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천주교에서 이러한 빵 대신 사용하는 성병은 둥그런 원반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에 대한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병의 이러한 형태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태양원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당위성이 충분합니다. 실제로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교의 제사장들은 태양원반 형태의 빵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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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그림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성병과 짝을 이루는 성체안치기(monstrance) 역시 태양원반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양에서 발산되는 햇살을 연상시키는 문양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성체(Host)란 화체설(化體說)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 성병을 구별하여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소위 성체로 변화된 성병을 성체안치기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미사에 참여한 신도들은 그것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숭배합니다. 마치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론이 만든 황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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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왕하 23:11).
   “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대하 34:4).


   비단 이교도들만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바알종교에 미혹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양신을 위해 태양상과 태양수레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요시야 왕을 통해 이런 것들을 완전히 박살내어 가루로 만들어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많은 건축물이나 구조물 등에서 태양 수레바퀴의 문양들이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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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성 베드로 성당 앞의 정원에는 거의 동일한 도안의 문양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단의 좌측 그림은 바벨론의 태양신 쉐메쉬의 상징이며 우측 그림은 바티칸 광장을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심지어 중앙에 원이 하나 더 있는 것까지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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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결정적인 증거는 바티칸 광장이 주피터 신전과 아르테미스 신전을 중심으로 우상숭배를 일삼던 로마의 제라시 성전 광장과 그 형태가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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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또 있습니다. 바티칸의 수많은 건축물과 구조물 가운데 사탄을 상징하는 용(뱀)의 상징이 난무한다는 사실입니다. 독수리는 기독교 안에서도 선지자를 상징하는 등의 긍정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의 경우에는 사탄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처럼 모양이라도 버려야할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용입니다. 태양신이 사탄을 가리키듯 용도 사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역사상 수많은 교황과 추기경의 문장이나 무덤 등에서 날개달린 용의 문장을 아주 광범위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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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녕 이 모든 것이 다 우연이란 말입니까? 어떤 의도도 담겨있지 않단 말입니까? 진화론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처럼 저절로 생겨난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교황청의 지시에 따라 체계적으로 설계되고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비용을 들여 만든 건축물과 구조물의 문양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냥 지어졌단 말입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이집트를 비롯하여 바벨론 문명의 영향을 받은 태양신 숭배 계열의 종교들에서는 그것과 거의 흡사한 문양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Thomas Imman, Ancient Pagan And Modern Christian Symbolism (Bristol, 1874), 34.]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태양신 숭배사상을 기독교적인 색채로 위장한 것이라면 과장인가요?


   바벨론 문명의 재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교 로마에서 복음진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지혜의 차원으로 접근한다면 그 당시 로마교회의 행태를 무조건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바벨론 밀교에서 기원한 태양신 숭배 및 어미여신 숭배가 너무나 강하게 만연하던 당시의 로마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접촉점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리고 고심 끝에 당시의 이교도들이 보다 쉽게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도록 가급적 태양신 숭배 및 어미여신 숭배와 비슷한 모양새를 취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현대교회가 불신자들이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도록 열린 예배를 비롯한 각종 문화사역을 통해 문턱을 낮추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적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 역시 복음 전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야말로 팔색조처럼, 카멜레온처럼 처신했기 때문입니다.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0-23).


   다만, 관건은 진리의 영역과 지혜의 영역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데에 있습니다. 만약 이 양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무작정 문턱만 낮출 경우 언제든지 야합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엄격하게 이 기준을 지켰습니다. 아무리 카멜레온처럼, 팔색조처럼 스스로를 변모시켰을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혜의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진리의 영역에 관한 한, 목에 칼이 들어올지라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로마교회는 어떠했을까요? 적어도 아직까지 초대교회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던 초창기에는 사도 바울처럼 양자를 제대로 구분하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톨릭 백과사전』 제15권 460페이지에 따르면, 그동안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마리아가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한 주후 4세기 초, 트레이스와 아라비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사람들이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면서 제물까지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저명한 교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315-40)는 그것을 비난하면서 “마리아를 존경할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를 숭배해서는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초창기만 해도 로마교회에서는 지혜의 영역과 진리의 영역을 제대로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양자 간의 벽은 급격하게 허물어져버렸고 그 이후, 무려 1,000년 동안 변질의 역사가 끊임없이 진행되어왔습니다. 그것의 결산이 바로 외경의 정경화입니다. 그동안의 변질이 고스란히 반영된 천주교의 신학과 교리를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진리로 천명하고 그것의 합리화를 위해 외경을 정경화 시켰던 것입니다.


 작성자:레마위버

[2012-07-29] "주는 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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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9]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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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신자가 되려면/ 오스왈드 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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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신자가 되려면


디모데후서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성숙한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은 예수님과의 진정한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항상 온 맘과 뜻을 다해 예수님과 진정한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쉽지 않다.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주께서 원하시는 영적 훈련에 동참하게 된다.


영적 훈련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생명으로 살면서 하늘의 무한한 은혜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신자의 훈련은 자신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장되시는 예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훈련한다. 신자들이 영적 훈련 과정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신자들의 단 한 가지 목적,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기 위해 훈련받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군인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군인이 될 자격이 없는 것처럼, 주님의 성숙한 신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주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며 그분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의 관심이 예수님 대신에 소위 “봉사”에 있게 되면서 영적 훈련의 자리에서 벗어난다.


훈련된 삶이란 세 가지를 의미한다. 주님의 최고 목표를 나의 목표로 삼는 것,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것, 마음과 뜻을 다하여 말씀과 성령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충동과 감정을 철저하게 다스려져야 한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깨달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울리는가를 항상 철저하게 점검하고 그렇지 않으면 당장 버려야 한다.



삶속에서 드러나는 바른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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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드러나는 바른 영성


"기도와 이적 같은 것들이 영성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근래에 많이 회자되면서도 정확한 의미를 찾기 어려운 단어를 하나 든다면 영성이란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성(spirituality)이란 단어를 뜻으로만 본다면 ‘영혼의 품질’, ‘영혼의 성향’ 혹은 ‘영적 센스’를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영적인 존재(homo spiritualis)이며,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영성을 갖고 있다는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떤 것이 영적인 성향이고, 나아가 어떤 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른 기독교적 영성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용어는 오랫동안 사용되어왔으며, 그 동안에는 주로 수도원이나 성직자들 중심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보통 사람들도 일상적인 대화에서 영성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근래에는 영성신학이라는 분야도 등장했고, 출판사 CUP에서는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는 책을 번역· 출간했는데, 여기에 보면 기독교 영성의 다양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공동체 영성, 기도 영성 등 때로는 영성이란 말이 아무 데나 붙어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으로 사용되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영성이란 종래에 사용해 오던 신앙경건 혹은 믿음이란 말과 거의 동의어인 듯이 보이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점이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무엇이 영성인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우리 주님께서 가장 깊은 영성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어떤 면이 영성의 기준일까요? 혹자는 예수님의 인격 혹은 예수님의 삶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요. 그것은 정답이긴 해도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인격이나 삶의 어떤 면 혹은 특성을 영성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 질문은 영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래의 질문보다 더 어려운 질문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말의 정확한 의미를 정의하기 곤란할 때는 일련의 부정을 통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뭐가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설명인가를 장황하게 늘어놓다보면 결국 남은 것이 삼위일체에 대한 정답이 되는 것처럼 뭐가 진정한 영성이 아닌가를 찾다보면 남은 것이 진정한 영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영성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흔히 혼동하는 잘못된 영성에 대한 개념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설교와 영성의 관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설교를 잘 하는 사람은 영성이 탁월할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설교는 영성과 큰 관련이 없습니다. 설교를 잘 하는 사람들 중에도 일상적인 삶이 예수님과 전혀 다른 분들이 많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설교를 잘하는 것은 타고난 은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설교를 잘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지적인 능력, 타고난 은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 내용을 잘 파악하고 사람들에게 이를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정보 처리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말 할 필요도 없이 청중들을 울고 웃기는 능력은 타고난 개그맨 은사일 뿐 영성과는 무관합니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만 설교를 잘하는 데는 영성과는 무관한 요소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설교와 더불어 탁월한 글을 쓰는 것도 영성과 큰 관련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모습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도 글은 얼마든지 잘 쓸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자기 자신조차도 자기가 쓴 글에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글 쓰는 사람의 영성이 그가 쓴 글의 감동에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와 같이 글을 잘 쓰는 것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고, 또한 오랜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영성과 관련하여 감동적인 설교나 탁월한 필재보다 더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기적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병자를 낫게 하며, 능력을 행하는 이들은 대단한 영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예수님도 많은 능력을 나타내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 흔히 영적 능력은 영성과 무관한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병은 잘 고친다고 하는데 인격을 보면 예수님과 촌수가 먼 사람들이지요. 특히 예수님과는 달리 자신이 얼마나 많은 환자를 고쳤는지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의 영성은 거의 파산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기적을 많이 일으킨 분들 중에는 결국 자고(自高)해서 기적 때문에 도리어 영성이 황폐해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는 어떻습니까? 그나마 기도는 영성과 상당한 관련이 있는 듯이 보이며, 예수님도 많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에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영안 혹은 영적 센스가 탁월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영성이 깊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자기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자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제대로 된 영성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했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면서 다니는 사람들, 아무리 바빠도 자기는 하루에 적어도 몇 시간은 기도한다고 떠들면서 다니는 사람들은 영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성경 읽는 것은 어떻습니까? 신약에 예수님께서 성경을 많이 읽으셨다는 얘기는 없지만 구약 성경에 대한 예수님의 지식이 해박한 것으로 미루어 성경을 많이 읽으셨음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많이 읽는 것도 영성과 관련은 깊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영성이 깊은 분은 성경을 많이 읽지만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반드시 영성이 깊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특히 자기가 읽고 싶은 곳만 읽거나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만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더 편견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한 예로 조지 부시 같은 사람은 날마다 성경을 본다고 하는데 그의 정책이나 언행을 보면 그는 날마다 ‘내가복음’만 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선행은 어떨까요?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선행을 많이 하셨으니 선행은 영성의 한 부분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고 반드시 영성이 탁월할까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행은 설교나 글 쓰는 것보다는 영성과 관련이 깊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영성의 절대적인 잣대는 아닙니다. 영성이 있는 사람은 선행을 하지만 선행을 한다고 영성이 탁월한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영성이라는 모티브가 아니더라도 선행을 할 수 있는 내적, 외적, 때로는 사회적 인센티브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도, 글도, 이적도, 기도도, 성경 읽기도, 선행도 영성의 궁극적인 잣대가 되지 못한다면 영성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영성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성경을 따라, 다시 말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누적되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을 영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신 예수님의 모습은 우주에서 일어난 모든 순종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열매를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궁극적으로 영성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 자신의 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중심을 살피는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도 정확하게 말 할 수 없습니다. 


이후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는 사람이 진실한 영성을 가진 사람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내적, 외적 증거는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 그래서 성령의 열매가 드러나는 삶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의 연륜이 성숙한 인격으로 드러날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영성이 깊은, 성숙한 인격의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승훈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

다시 복음앞에/ 옥한흠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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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러브레터

2012년 8월 5일 주일 주보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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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카라과 단기선교
8월 9일부터 15일까지 니카라과 단기선교팀의 사역을 위해 기도와 지원 바랍니다.
도네이션은 오늘까지 받고, 릴레이 금식기도는 계속됩니다. 
선교팀: 윤바른 전도사, 김주언, 정승일, 허윤정, 한은수, 김 혁 이상 6명
* 메시야 평생교육원 교사회   
오늘 오후 1:30에 본 교회 평생교육원 교사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8월 11일(토) 5:00에는 전체 교사회가 있습니다.
* 2012 메시야잔치 준비위원회 & 심야기도회 & 노방전도
오는 수요예배 후에 새가족실에서 메시야잔치 준비위원회로 모이겠습니다.
또한 매주 금요기도회를 마친 후 10시부터 12시까지 메시야잔치를 위한
심야기도회로 모이겠습니다. 그리고 각 구역은 배정 받은 전도 지역에서
구역장의 인도에 따라 노방전도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 임직자 학교  
이번 주 토요일(11일) 7시에 임직자 학교 마지막 훈련이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도폭발 무장사역  
다음 주일(12일) 전도폭발 무장사역이 1시에 중보기도실에서 있습니다.
1기부터 6기까지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 시찰회  
14일(화) 오전 10:30에 본 교회에서 버지니아 시찰회가 있습니다.
* 탁구 레슨   
내일(6일) 오후 4시에 친교실에서 탁구 레슨이 있습니다.

* 교역자 동정
* 휴가: 강영옥 전도사 (8월 6일~10일)
* 휴대전화 번호 변경: 송동길 전도사 (703-945-5156)
* 교우 동정
* 한국방문: 김정숙(A) 권사, 김정숙(B) 권사, 김진영(B)집사,  오석영 청년, 윤용상 집사

[2012-08-05] "지혜의 근본"

[2012-08-05] "빛으로 살아가리라"

상상을 초월하는 천주교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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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럼버스 기사단(Knights of Columbus)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천주교 단체로서 1882년 미국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자선사업, 협동, 박애, 애국심의 기치를 내세우며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콜럼버스 기사단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필리핀, 괌, 사이판, 일본, 쿠바, 폴란드 등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콜럼버스 기사단은 대내적으로는 종교재판을 주도한 예수회와 동일선상에 있는 바티칸의 하수조직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맹세문이 1913년 2월 15일 미국 의회 제62회 회의록 3,215쪽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 원문은 미국국회 도서관 소장문서 66-43354로 등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맹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Knights of Columbus oath
콜럼버스 기사단의 선서

 

 

   I will place Catholic girls in Protestant families that a weekly report 

may be made of the inner movements of the Heretics. That I will provide

myself with arms and ammunition that I may be in readiness when the 

word is passed or I am commanded to defend the church either as an 

individual or with the militia of the Pope.

 

   ? 나는 개신교도 사이에 카톨릭 종교의 여자들을 투입시켜 매주 그 이단자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보고서를 받고 내 스스로 무기와 총들을 항상 준비해 있으며 

명령이 전달되었거나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명령을 받았을 시 개인이나 

교황의 군대를 동원해서 명령을 수행한다.”

 

 

   In testimony hereof, I take this holy and blessed sacrament of the 

Eucharist and witness the same further with my name written with 

the point of this dagger dipped in my own blood and sealed in the face 

of this holy sacrament.

 

   ? 여기서 맹세하기를 나는 거룩하며 은혜로운 성체 성사를 받들어 상체 성사 

안에 저장된 단도로 피를 내어 채운 내 자신의 피를 가지고 쓴 내 이름 앞에 

맹세한다.

 

 

   I do further promise and declare that I will, when opportunity 

presents make and wage relentless war, secretly and openly, against 

all heretics, Protestants and Masons, as I am directed to do, to extirpate 

them from the face of the earth, and that I will spare neither age, sex, 

nor condition.

 

   ? 더 나아가 나는 약속하고 맹세하기를, 일단 명령을 받으면,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모든 이단자들과 개신교도들과 메이슨들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하기 

위해 공개적으로나 은밀하게 무자비한 전쟁을 벌일 것이다. 불명예스러운 이단자

들을 척살하기 위해서라면 나이나 성별이나 다른 조건들에 전혀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And that I will hang, burn, waste, boil, flay, strangle, and bury alive 

these infamous heretics; rip up the stomachs and wombs of their 

women, and crush their infants' heads against the walls in order to 

annihilate their execrable race. That when the same cannot be done 

openly I will secretly use the poisonous cup, the strangulation cord, 

the steel of the poniard, or the leaden bullet, regardless of the honour, 

rank, dignity or authority of the persons, whatever may be their 

condition in life, either public or private, as I at any time may be 

directed so to do by any agents of the Pope or Superior of the 

Brotherhood of the Holy Father of the Society of Jesus.


   ? 나는 이들 이단자들의 목을 졸라 죽이고 태워죽이고 말려죽이고 끓여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질식시키고 생매장할 것이다. 열등한 종족들을 멸절시키기 위해 

여자들로부터는 창자와 자궁을 드러내고 그들의 신생아들의 머리를 벽에다가 쳐 

박아 박살낼 것이다. 공개적으로 이런 일을 할 상황이 되지 못한다면 비밀리에 

독약이 든 컵이나 교살용 노끈이나 강철 단검이나 납으로 된 총알을 은밀하게 

사용하여 척살할 것이다. 어떤 때이건 내가 교황의 대리인이나 예수회의 상부로부터 

명령을 하달받기만 하면 사냥감의 명예나 권위나 지위나 기타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반드시 처단할 것이다.

  

   Should I prove false or weaken in my determination, may my 

brethren and fellow militia of the Pope cut off my hands and feet, 

cut my throat from ear to ear, may my belly be opened and sulfer 

burned therein with all the punishment that con be inflicted upon me 

on earth and my soul shall be tormented by demons in eternal hell 

forever. That I will in voting always vote for a Knight of Columbus 

in preference to a Protestant, especially a mason.


   ? 내가 내 확신에 대해 부정이나 우유부단하게 될 때 내 형제나 교황의 군사는 

내 손과 발과 내 입을 귀에서 귀까지 째고 배를 가르며 염산으로 나를 태우고 

지구상의 모든 형벌을 가함받고 나의 영혼은 악마에게 고통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빠질 것을 안다. 컬럼버스의 기사로서 개신교들이나 특별히 메이슨을 

향하여 맹세한다.

 

 

 

   이 맹세문과 관련하여 바티칸에서는 개신교 광신자들이 천주교를 음해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자료라고 반박했으며 천주교 친화적인 언론사에서도 이를 옹호하는 기사도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에 대한 공신력 있는 자료들을 충분히 검토해본 결과 이 맹세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천주교가 종교재판을 통해 개신교도들에게 저지른 만행은 위 맹세문과 정확하게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앞에서 기술한 바벨론과 관련된 내용들이 제아무리 객관적인 자료들로 뒷받침되고 있을지라도 죄다 개신교의 천주교에 대한 악의적 모함이라고 일축하며 무조건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기 때문에 신화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신화로 치부할 수 없는, 불과 수백 년 전의 그들의 행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중들에게 심어진 좋은 이미지와는 달리 예수회는 중세 말, 교황권의 부정과 죄악상을 고발하며 일어난 종교개혁을 박해하기 위한 종교재판을 부활시킬 목적으로 수도사 로욜라(Ignatius de Loyola)가 창설한 악명 높은 수도회입니다. 로욜라가 1542년에 설립한 종교재판소는 이른바 세계사 속에서 ‘종교암흑기’리 불리는 16세기부터 18세기 말 교황권이 몰락하기까지 무려 5천만 명 이상을 온갖 잔인한 고문과 화형으로 학살했습니다. 단지 천주교로의 개종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개신교 크리스천들을 죽였습니다.

 

   교황청의 손에 의해 순교한 크리스천들의 숫자는 무려 5천만에서 8천만 사이에 달한다고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교황의 거짓 주장들을 반대하고 구원과 진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고귀한 영혼들은 이단자라는 낙인이 찍혀 로마교회(천주교)에 의해 소름끼치는 박해와 환란을 당했던 것입니다.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서울:도서출판예루살렘, 2009), 98-99.] 5천만 명이라면 남한인구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사실 천주교 측에서도 과거에 그들의 교회가 저지른 박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새 가톨릭 백과사전』(New Catholic Encyclopedia)은 “현대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종교 재판, 특히, 중세의 막비지에 스페인에서 자행했던 종교 재판은 교회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기록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Ibid., 118.]


   다만, 천주교 측에서는 5,000만 명이라는 수치가 지나친 과장(2,800만 명 정도로 추산)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개신교 보수진영에서는 이것도 많이 축소한 것(6,800만 명 이상)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 수치는 대척점 사이의 평균 정도라는 겁니다. 실제로 교황권이 존재한 기간 중 해마다 평균 4만 명의 종교적 살인이 자행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John Dowling, History of Romanism, 541-542.]


   역사를 바로 아는 프로테스탄트라면 로마교회가 인류 사회에 존재했던 어떤 단체보다도 무고한 자를 많이 죽였음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교회에 의해 희생된 자의 수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W.E.H.Lecky, History of the Rise and influence the Sprit of Rationalism in Europe, vol.2, 1920 ed, 32.]


   그 당시의 자료가 워낙 철저하게 훼손된 탓에 바티칸이 죽인 개신교도들의 숫자가 5천만 명보다 더 적은지 더 많은지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개신교도들을 고문하고 죽였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죽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죽이느냐가 문제입니다. 그 악명 높은 히틀러조차도 바티칸이 개신교도들을 죽이듯이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종교개혁 이전에도 바티칸에서는 천주교의 타락에 항거하여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필설로 형언키도 힘들 정도로 참혹한 고문에 이은 살인을 자행해왔습니다.


   교황은 이단을 제거하고 정통신앙을 수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교구마다 종교재판소를 설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공의회의 결정이 내려지면 세속군주들은 무력을 사용하여 이단자를 처단했습니다. 1179년에 모인 제3차 라테란공의회를 비롯한 몇몇 공의회들은 세속군주들이 무력을 동원하여 이단을 탄압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교회의 종교재판법은 1184년 교황 루시우스 3세가 제정했습니다. 모든 교구가 최소한 1년에 한번 이상 교인들을 조사하여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를 색출하도록 했습니다. 이단자를 보호하는 사람은 불고지죄의 책임을 물어 이단자와 동일한 처벌을 받게 했습니다. 제4차 라테란공의회(1215)는 이단들을 진멸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수도사들도 감독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도록 했습니다. 1229년의 툴루스 종교회의의 결과에 따라 십자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의 뒤처리를 위한 종교재판소가 개설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강제개종을 위한 무시무시한 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로마교회의 교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의 권력을 인정하고 철저한 통제를 받아들이며, 교황의 정책을 영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조차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성직주의와 교황권력에 항거하는 사람은 생존이 불가능했습니다. 서방교회는 이단자를 징벌하는 십자군을 일으켰습니다. 팔레스틴으로 쳐들어간 십자군이 이교도를 진멸하는 것처럼 새로운 발상이나 신앙을 가진 자국 백성들을 징치했습니다. 교수형이나 화형에 처하거나 팔다리를 찢고 물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교회는 새로운 사상의 씨까지도 말리려고 했습니다. 이단색출 정책을 강격하게 지지하던 버나드조차 “이단자들은 칼에 의해서가 아니라 설복에 의해 개종시켜야 한다.”고 외칠 정도였습니다. [최덕성, 『종교개혁전야』(서울:본문과비평사이, 2003), 59-61.]


   1252년 교황 이노센트 4세가 고안하여 발표한 《박멸에 관하여》(Ad Exstirpanda)라는 문서는 이단자들(교황청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을 잡아서 “독 있는 뱀을 누르듯 눌러서 짓뭉개라.”고 선동합니다. 이 문서는 이단자들에 대한 고문을 사용할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으며, 이단자들을 곱게 죽이지 말고 화형 시킬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이단을 한 명이라도 죽이는데 성공한다면 그들의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약속까지 하면서 이단사냥을 독려했습니다. 이 교서는 그 이후 종교 재판소의 기초 문서로 전수되어 몇몇 교황들, 즉, 알렉산더 4세(1254-61), 클레멘스 4세(1265-68), 니콜라오 4세(1288-92), 보니파시오 8세(1294-1303) 등이 쇄신하거나 강화시켰습니다. [랄프 우드로우, 안금영 역, 『로마가톨릭주의의 정체』(서울:할렐루야서원, 1989), 195.]


   12세기 말까지 벌금, 투옥, 노예 봉사, 유배, 재산 압수, 공민권 박탈, 교수형, 화형 등 이단에 대한 광범위한 형벌들이 있었습니다. 고문은 원래 민사 재판소가 행했으나 1252년부터는 교황 이노센트 4세의 공인에 따라 종교 재판소에서 본격적으로 고문을 집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받다가 처참하게 화형에 처해졌으며 이단으로 유죄 선고된 자들의 시체는 사후에도 파헤쳐 불살라졌습니다. 또한 그 후손들의 재산은 몰수당했습니다. 종교 재판관들은 실로 야만에 가까운 가혹한 집행을 행하였습니다. [J. G. 로우, 『아메리카나 백과사전』(University of Western Ontario), 15권, 191-194.] 이러한 로마교회의 개신교 박해 관련 발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115.]

 

 

   “이단자란 카톨릭 교회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가르치는 특정한 진리를 

믿지 않으려고 고집스럽게 버티는 침례 받은 신자이다… 예를 들면 다양한 개신교 

분파들이다… 개혁주의인 프로테스탄티즘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단들의 

총집합이다. 물론 그 이후에 일어났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영혼들을 파괴할 수 있는 

이단들의 본산이다.”

 

   “공공연히 이단임을 공언하고 말이나 본보기로 다른 사람들을 그릇되게 인도하려

고 시도하는 자들은 절대적으로 말하노니, 출교뿐만 아니라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이다.”

 

   “교황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프랑스의 선을 위하여 위그노교도가

마당히 처형될 것을 원했다.”(교황 그레고리 1세)

 

   “지난 1200년 동안에 침례교도들이 칼로 끈어버림을 당하는 처절한 고통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모든 개혁자들보다 더 많은 수효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트렌트 공의회 의장 호시우스 추기경, 1524년)

 

   “옛날 무서운 알비젠스 이단을 몰아내신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우리들의 간청에 

감명되시어 오늘의 오류도 없이 하실 것입니다.”(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1937년)

 

   “교회는 신성한 권위에 의하여 이단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감금하고

화형을 선고할 수 있다… 이 시대에 가장 무서운 형벌들과 사형까지도 내릴 권리가 

교회에 있다… 그러므로 이는 근절되어야 한다.”(교회 공범 2권, 142)

 

 

   바티칸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고문방법과 고문도구를 개발했습니다. 그들로부터 일단 이단으로 규정된 성도는 온갖 종류의 끔찍한 형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특히,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막달린 칼리지 특별연구원이 되어 교회사를 연구했던 존 폭스의 『기독교 순교사화』(생명의 말씀사)에는 1229년 이후 바티칸에 의해 자행되었던 무시무시한 악행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비단 교회사 자료뿐만 아니라 세속사 자료에서도 바티칸이 개신교도들을 얼마나 끔찍하게 고문하고 죽였는지에 대한 내용이 곳곳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랄프 우드로우, 『천주교의 유래』(인천:그리스도예수안에, 2011), 148-154. /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99-113.]

 

   바티칸은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장 심한 고문과 고통을 가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고문법을 고안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긴 평판의 고문대(rack)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뒤로 눕힌 다음, 사지를 결박한 상태에서 끈을 잡아당기는 고문기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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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의 사제들은 이 기구를 이용하여 고소당한 사람의 손과 발을 묶고 뒤로 눕힌 뒤 밧줄로 사지를 감아 죄어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면 고문당하는 사람의 사지가 찢겨져 나가면서 극심한 고통이 가해졌습니다. 이는 실로 능지처참과 비슷한 형태의 악랄하고도 끔찍한 고문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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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바티칸의 고문자들은 무거운 집게로 손톱을 뽑아내기도 했고, 눈동자나 성기, 항문과 같은 신체의 민감한 부분들을 불에 달궈진 꼬챙이로 뜨겁게 지져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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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리한 칼과 송곳들이 달린 롤러 위에 이단자들을 올려놓고 그 위로 롤러를 굴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 뼈마디를 부수기 위해 엄지손가락 고문기구를 사용했으며 다리와 발가락을 짓뭉개기 위해 ‘스페인 부츠’로 알려진 고문기구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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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시대의 고문기구를 대표하는 것은 소위 ‘철갑처녀 고문기’였습니다. 이는 사람의 몸에 딱 맞는 크기로 제작된 관의 내부에 철침이 가득히 박혀 있는 고문기구였습니다. 사람을 집어넣고 문을 닫으면, 온몸에 굵직굵직한 철침이 박혀서 출혈과다로 서서히 죽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캐비닛의 형태였으나 후일 마리아의 형상으로 의인화되면서 ‘철갑처녀 고문기’(Iron maiden)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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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르레를 이용한 고문도 사용되었습니다. 손을 등 뒤로 묶은 후 그 손을 다시 밧줄로 묶은 다음, 도르레를 사용하여 몸뚱이를 일단 위로 들어 올립니다. 그 이후에는 떨어뜨리기도 하고 갑자기 줄을 확 당겨서 어깨의 관절을 골절시키거나 신체의 다른 관절들을 탈골시킴으로써 극렬한 고통을 가하는 고문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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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 요람이라는 고문기구도 사용되었습니다. 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의 뾰족한 부분에 끈으로 묶인 대상자의 항문이나 여성의 성기가 위치하도록 앉힌 다음 줄을 천천히 풀어서 체중에 의해 서서히 파고들게 하여 극심한 고통을 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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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칸의 고문자들은 희생자들의 옷을 벗긴 후에 단단한 줄로 그들의 팔을 등 뒤로 묶었고 발에 큰 추들을 달았습니다. 그런 다음, 도르래를 사용하여 그들의 몸을 공중에 매달거나 혹은 떨어뜨렸다가 갑자기 들어 올림으로써 신체 부위의 관절들이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고문을 실시하는 동안 사제들은 십자가를 들고 이단자들이 자기들의 주장 혹은 교리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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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의 가르침을 거절한 사람들의 귀와 입 속에 끓는 납을 부어넣기도 했습니다. 눈알을 도려내는 사례도 있었고, 채찍으로 온몸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긴 대못들이 죽창처럼 박혀 있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려졌으며, 핀셋에 꽂힌 박제곤충처럼 못에 온 몸이 꿰뚫린 채 처참하게 죽어갔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서 떨어진 살 조각과 소변과 배설물들로 인해 질식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종교재판소에서 고문을 당하는 희생자들의 경우 야간에는 마룻바닥이나 벽에 쇠사슬로 묶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피로 가득 찬 고문실 안에 서식하고 있던 쥐나 해충의 먹이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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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에서만도 종교재판에 의하여 고난당한 사람들 가운데 산 채로 화형당한 사람이 31,912명으로 헤아려졌고, 복종하도록 강요된 참회자가 291,450명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알비젠스인들에 대한 대학살에서는 백만 명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교황 인노센트 3세가 1208년 알비젠스인과 왈덴스인의 박멸을 위해 일으킨 십자군 당시 30년 동안에 무려 900,000명의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살해당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천주교 신자인 알바 공의 지시에 따라 36,000명이 집행자들에 의해 신속하게 사형에 처해졌는데 알바 공은 이러한 행위를 자랑했습니다. 찰스 5세의 치하에서는 50,000명의 프랑드르인들, 곧 지금의 벨기에의 서부, 네덜란드 남서부, 프랑스 북부를 포함한 많은 지역의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교수형과 화형과 생매장의 형태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Guinness, Key to the Apocalyps, 92-93. / Albert Barnes, Notes on Daniel, 328.]


   1209년 베지에르즈(Beziers)는 이단자들을 박멸하는 운동에 가담하면 연옥을 거쳐 즉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교황의 말을 굳게 믿은 사람들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도시에서 6,000명이 칼로 살육되어 거리에는 피가 강같이 흘렀다고 합니다.


   1211년 라바우어(Lavaur)에서는 총독을 교수대에서 처형하였고 그의 아내를 우물 안으로 쳐 넣어서 돌로 짓뭉개버렸습니다. 약 400명은 산 채로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단사냥꾼들은 아침에 대미사에 참석한 뒤에 다른 지역의 고을들을 점령하기 위해 진군했습니다. 이 포위 공격으로 인해 10만 명이 넘는 알비젠스(Albigenses) 교도들이 학살당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시체는 산더미처럼 쌓아올려진 상태에서 그대로 불태워졌습니다.


   1400년 알프스 프라겔라(Pragela) 골짜기에 은신했던 왈덴스 교도들이 로마교회가 보낸 토벌군에 의해 기습을 받아 짓밟히고 살해당한 뒤, 피하여 도망친 사람들은 엄동설한에 심산유곡에서 수도 없이 얼어 죽었습니다. 1488년 교황 이노센트 8세의 왈덴스 교도 박멸령에 따라, 프랑스 군대들이 알프스의 로이스(Loyse) 골짜기에 덮치자 왈덴스 교도들은 동굴로 피신했으나, 입구에 불을 놓아 3,000여 명이 질식해 죽기도 했습니다.


   1544년 롬바르드 사람 개신교도 프란시스 감바(Francis Gamba)가 밀라노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처형 장소에서 한 수도승이 그에게 십자가를 제시했는데, 감바는 그에게 “내 마음은 그리스도의 참 공로와 선하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분을 내 마음에 모시기 위해 무의미한 나뭇조각이 필요치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때문에 그의 혓바닥은 도려내졌으며 얼마 후에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메린돌(Merindol) 대학살 때에는 5,000명의 여인들이 창고에 가두어놓고 불을 질렀습니다. 누군가가 창문을 통해 뛰어내린다고 해도 그 아래에는 뾰족한 창들이 직립한 채로 그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공개적으로 비참하게 폭행을 당했으며 어린아이들 역시 그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부모들 앞에서 처참하게 살육을 당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절벽에서 밀려서 떨어졌고 옷이 벗겨진 채 거리를 질질 끌려 다니는 고통을 당하며 죽어갔습니다.


   1562년의 오렌지(Orange) 대학살에서도 유사한 방법들이 사용되었습니다. 교황 비오 4세는 이탈리아 군대를 파견하여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척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군인들은 이러한 교황의 명령을 잔인하게 수행했고, 사람들은 혹독하고도 다양한 고문에 따른 큰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원래 프랑스는 대표적인 천주교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도들이 급증하여 급기야 전체 국민의 3분의 1에 육박할 정도였는데 이들을 위그노 교도(칼뱅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개신교도)라고 합니다. 이 무렵에는 개신교도들 역시 제대로 무장을 했기 때문에 그전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개신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천주교의 군대와 용감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1570년 양자 간에 평화협정이 맺어지면서 각각을 대표하는 프랑스 왕 샤를 9세의 동생과 나바르 왕 엔리케 사이에 혼담이 오갔습니다.


   바로 이 혼담을 빌미로 로마교회는 개신교도들을 진멸하기 위한 사악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둘 사이의 혼인식은 성 바들로메를 추모하는 날에 치르기로 정해졌습니다. 여기에 참석하고자 찾아온 개신교의 지도자들이 무방비상태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콜리그니 장군은 총살되었고 잘린 머리는 교황청에 선물로 보내졌으며 몸통은 거리로 끌려 다녔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프랑스 내의 모든 개신교도들에 대한 학살령이 내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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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 소집된 천주교 시민군에 의해 탈출할 수 있는 성문이 굳게 닫히는 것을 시작으로 파리는 그야말로 생지옥으로 바뀌었습니다. 천주교 시민군들은 “프랑스와 천주교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개신교도들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파리의 모든 거리는 그들의 피로 질펀해졌습니다. 천주교 신부들은 “친척이나 친구들도 봐주지 말라!”고 그들을 독려했습니다.


   오렌스에서는 1,000명이, 로렌에서는 6,000명이 살해당했습니다. 펜나와 사마로브리지에서는 평화를 약속한 다음에도 각각 200명과 100명이 살해당했습니다. 멜디스에서도 200명이, 안티시도에서는 100명이, 오리언즈에서는 감옥에 투옥된 100명이, 리용에서는 800명이 살해당했습니다. 또한 로첼레에서는 무려 18,000명이 학살당했습니다.


   투린의 수장은 죽기 전에 배가 갈라지고 내장이 적출되어 강에 던져졌습니다. 브로이스에서 구이세 공작은 휘하의 군인들에게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개신교도들을 척살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수많은 여인들을 겁탈하고 살해했습니다. 안쥬에서도 수많은 여인들이 더럽혀지고 살해당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두 자매는 아버지 앞에서 추행당한 후, 동시에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논네에서는 안전을 조건으로 항복한 남녀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했습니다. 군인들은 사방에 불을 질러댔고, 숨어있던 곳에서 남편과 함께 끌려 나온 아내를 겁탈한 다음, 남편을 찌르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마티스콘 시에서는 개신교도들의 팔과 다리를 자르고 죽이는 것이 스포츠로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바레에서도 극악무도한 만행이 저질러졌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어 씹어 먹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밖에도 항복한 거의 모든 개신교도들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오거스토보나에서는 파리에서의 학살소식을 듣자마자 개신교도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문을 닫고서 야만적인 살상을 시작했습니다. 아바리콤, 트로이, 토울로우스, 로엔과 다른 많은 곳에서도, 온 나라 전체에서 그와 같은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불과 일주일 사이에 무려 8만 명 이상의 개신교도들이 프랑스 전역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세계사에서 가장 잔인한 살상행위로 손꼽히는 1572년 8월 24일의 바돌로메 제일의 대학살이 천주교의 사주에 의해 저질러졌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프랑스의 어린 왕 찰스 9세의 섭정 태후였던 캐더린은 강력해져가는 개신교도들인 위그노파를 제거하고자 위계를 사용했습니다. 혼인식을 빙자하여 그들을 한데 모아놓고 졸지에 살상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위고노면 모두 죽여!”라고 외치며 파리 시내에서만 일주일 이내에 8,000명을 살상했습니다. 두 달 동안 전국으로 확대한 살육을 통해 8만 명 이상을 죽였음은 가공할 만한 역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J. A. Wylie, The History of Protestantism, vol. I,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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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프랑스 왕은 많은 이단자들을 살육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돌아와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교황청은 이 소식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고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축하를 위해 장엄한 행렬과 더불어 성 루이스에 있는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황의 조폐소에 명령을 내려 이 사건을 기념하는 동전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동전에는 한 손에 칼을 쥐고 다른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있는 천사와 그 앞에서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도망치는 위그노 교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주후 1572년에는 위그노 교도들의 살육을 의미하는 'Ugonottorum Stranges'라는 글귀가 동전에 새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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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믿음 때문에 학살당했습니다. 스페인에서만 해도 종교재판에 의해 고난당한 사람들은 산채로 화형당한 사람이 31,912명으로 헤아려졌습니다 알비젠스 교도들의 대학살에서는 무려 백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수이트(예수회) 제도가 확립된 이후 30년 동안에 900,000명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주도면밀하게 살해당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알바공의 지시에 따라 36,000명이보통 집행자들에 의해 신속하게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찰스 5세의 치하에서는 50,000명의 프랑드르인들과 독일 사람들이 교수형과 화형과 생매장으로 살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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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로 현세적 통치자로서 전 세계의 독재군주가 된 로마 교황 치하의 대낮은 세상의 깊은 밤중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J.M. 캐롤 목사는 교황권이 신실한 성도들에게 자행한 그 소름끼치는 박해에 대하여 그의 책 『피흘린 발자취(The trail of blood)』에서 다음처럼 기술하고 있습니다.[J.M.캐롤, 『피흘린 발자취』(서울:혜남사, 1988), 52.]


   “나는 또다시 잔혹한 박해의 손길이 닥친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만약 암흑시대라 불리었던 1,200년 동안 5,000만 명의 사람들이 박해를 받아 죽었다고 하면 ? 역사는 확실히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이는 100년마다 평균 400만 명 이상의 비율로 죽은 셈인데, 이는 인간의 머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이 잔악한 핍박의 쇠망치는 순교의 피바다를 이루면서 바울파, 아놀드파, 헨릭파, 베드로-부르시안파, 알비젠스파, 왈덴스파, 그리고 재침례파의 사람들 위에 가해졌다.”


   “…외길로 되어 잇는 구라파의 일등 도로가에 30마일의 거리를 두고 이 신작로를 따라 두서너 자의 간격으로 화형의 말뚝이 하나씩 세워지고 그 뾰족한 말뚝 끝마다 순교당한 재침례교도들의 피 묻은 머리가 달렸던 것도 바로 이 시대에 일어난 일이었다. 인간의 상상으로서 이렇게 무서운 광경을 그려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Ibid., 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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